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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이젠 젠더 평등도 셀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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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호 30면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여성정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여성가족부와 선거에서의 여성·장애인 할당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탓이다.

우리나라의 성별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는 2020년 기준으로 세계 153개국 가운데 108위다. 남녀 간의 차이를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항목별로 남녀 모두 수치가 낮은 르완다가 6위인 반면 전반적인 수준은 높으나 남녀 차이가 큰 편인 한국은 뒤로 밀렸다. 2018년 기준으로 109위인 유엔개발계획(UNDP)의 남녀평등지수(GDI)도 비슷하다. 인간개발지수(1에 가까울수록 좋음)가 남녀 모두 0.42인 부룬디가 6위다. 한국은 남성이 0.93인 반면 여성이 0.86에 불과(?)해 성별 차이 때문에 순위가 바닥권이다.

할당제의 족쇄 이대남에게만 채워
4050 ‘스윗남’부터 변화 의지 보여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지표야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아픈 구석도 있다. 지난달 7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내놓은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이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국가 중 꼴찌다. 성별 임금 격차가 31.5%, 주요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8.7%로 압도적으로 낮은 탓이다.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은 17%로 OECD 평균(29%)보다 한참 낮다. 여성계에서는 이런 유리천장을 무시하고 능력만 앞세우는 것이 과연 공정하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20대 남성(이대남)들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불평등은 4050세대가 수십 년 동안 저지른 일의 결과인데,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이대남에 대한 족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성평등을 위해 도입한 할당제는 젊은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한다. 2020년 여성 교수 할당제가 도입되면서 젊은 남성 박사는 국공립대에서 교수직에 지원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17.9%던 여성 교수 비율을 10년 안에 25%까지 끌어올리려면 당분간 여성만 뽑을 수밖에 없다. 지방의회 비례대표의 절반을 여성 후보로 내야 하는 할당제가 도입되자 2018년 6·13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비례대표 당선자의 97%가 여성이었다. 대부분 2~3인 선거구에서 여야가 한 석씩 나눠 가졌는데 비례 1번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도전하려는 젊은 남성 정치지망생들은 지역구에서 후보로 나서야 한다.

이대남들은 이런 상황을 공정하지 않다고 받아들인다. 서울지역 초등학교의 여교사 편중현상(2020년 기준 87%)을 해소하기 위해 2030년까지 남교사 비율을 25%까지 높이기 위해 당분간 남성만 뽑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취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공학 전공자를 주로 뽑는데 공대 졸업자 중 여성 비율은 아직도 25%에 불과하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들에게 불리한 점이 적지 않고, 앞으로도 경력 단절 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임신과 출산이 걸림돌이라면 남성에게도 여성과 같은 기간의 육아 휴직을 의무화하면 된다.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뷔페미니즘’이란 비판을 벗어나기 위한 여성계의 노력도 필요하다. 더 많은 여성이 공대에 지원하고, 지역구 의원 후보로 나서도록 독려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거쳐 여성 의원과 여성 임원이 늘어나는 것까지 역차별이라 주장할 이대남은 없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효도는 셀프’라고 한다. 시부모 봉양은 남편이 직접 실천하라는 뜻이다. 이대남들은 ‘젠더 평등’을 역설하는 4050세대를 ‘스윗남’이라고 부른다. 현실을 개선할 책임은 젊은이에게 미루고 자신은 듣기에 달콤한 말만 늘어놓는다는 의미다. 한 대학원생은 “태어나서 특혜라고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젊은 남성이 희생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유리천장을 부수려면 철밥통을 끼고 있는 586 정치인, 교수, 기업 임원부터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젠 ‘젠더 평등도 셀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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