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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 시뻘건 불길 속 금강송 지켰다…2년전 만든 '이 도로'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 오후 2시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중미골의 산불진화도로. 북쪽에 불길의 흔적이 보이지만 남쪽 금강송은 무사했다. 편광현 기자

23일 오후 2시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중미골의 산불진화도로. 북쪽에 불길의 흔적이 보이지만 남쪽 금강송은 무사했다. 편광현 기자

23일 오후 2시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대광천길의 산불 진화도로. 이곳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산 능선엔 까맣게 그을린 나무들이 보였다. 산 중턱엔 열기에 그을린 나무의 잎들이 푸른색을 잃고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지난 4~13일 사이 서울 면적의 41.2%(2만5003ha)를 태운 산불이 휩쓸고 간 흔적이었다.

하지만 진화도로의 남서쪽 금강송은 여전히 푸른 상태로 남아있었다. 금강소나무생태관리센터 측은 불길이 다가왔을 때 진화대원들이 재빠르게 이 도로에 방어선을 구축해 불을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년 전 산불 진화 목적으로 금강송 군락지 북동쪽을 약 7㎞ 감싸도록 만든 도로였다. 이번 산불에서 이 도로는 미리 대비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였다.

최근 10년간 산불 발생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최근 10년간 산불 발생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올해 울진·삼척 산불은 지난 2000년 동해안 산불보다도 규모가 컸다. 역대급 가뭄을 맞아 메마른 땅으로 불길이 빠르게 번져나갔다. 지난 22년간 국내 산불진화 역량이 커졌던 걸 고려하면 산불의 대형화가 우리의 대처보다 빠르게 진행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산불 예방·진화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대형 산불엔 대형 헬기

전문가들은 대형 산불이 확산하는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지금까지 국내 대형 산불은 해발 300~600m 고도에서 전개됐다. 2017년 5월 해발고도 890m인 강원도 삼척시 건의령이 그동안 산불이 발생한 가장 높은 지점이었다. 하지만 이번 울진·삼척 산불은 발생 5일째인 지난 8일부터 주불이 해발 800m가 넘는 산을 옮겨 다녔다. 특히 마지막 3일간은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응봉산까지 불이 번져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5일 이동식 저수조에서 물을 담는 화재진압헬기 모습. 산림청

지난 5일 이동식 저수조에서 물을 담는 화재진압헬기 모습. 산림청

높은 고도에 진입할 수 있는 공중 진화 장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산림청의 산불 관련 예산은 2012년 1045억원에서 2020년 2059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강한 바람이 불어도 높은 산지로 출동할 수 있는 초대형 헬기는 산림청에 6대, 소방청에 5대뿐이다. 문현철 한국산불학회장은 "이번 전국 산불 당시 작은 헬기들은 정비시간과 바람 때문에 제대로 출동하지 못했다. 그동안 정부에서 공중진화 능력을 갖추는 데는 소홀했던 셈"이라고 말했다.

"감시 인력·장비 3배는 늘려야"

산불 진화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산불 초동대처를 담당하는 산불감시원이 가장 중요한 인력으로 꼽힌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감시원은 1만2000여명이지만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전문인력인 산불전문 예방진화대 9600명과 산불 특수진화대가 435명은 대부분 기간제 계약직이다. 이들로는 국토의 64%에 달하는 산림을 전부 감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녹색연합은 강원 영동지역과 경북 동해안권의 산불감시 인원을 지금보다 3배 이상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산림청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산불방지 종합감시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산불감시인과 산불예방지역 거점 간 연계를 통해 산불감시체계를 정교화한다는 계획이다. 산불 감시카메라 1448대와 드론감시단 208명 등도 동원된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기후위기에 대비해 산불 감시원과 진화 조직이 원활히 소통하는 새로운 차원의 감시 체계가 필요하다. 다만 지금보다 더 많은 카메라와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일 울진 산불 현장의 나무가 까맣게 타버린채 남아있다. 편광현 기자

23일 울진 산불 현장의 나무가 까맣게 타버린채 남아있다. 편광현 기자

산에 오를 땐 '담배·가스버너 금지'

이번 산불을 통해 시민들의 산불예방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후변화로 산불이 커지고 있지만 작은 불씨를 산에서 만드는 건 대부분 인간이기 때문이다. 문현철 한국산불학회장은 "알프스 산맥 등 해외 산지에선 음식을 먹는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다. 등산길엔 가스버너,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인식부터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차광국 삼림청 산불예방계장 역시 "산림청의 예방·진화 정책도 산불에 대한 시민 의식이 함께 개선돼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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