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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인수위마다 입 꾹 닫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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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 두 번째부터)과 안철수 인수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식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 두 번째부터)과 안철수 인수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현판식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들이 언론에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분과별 업무보고가 한창이지만, 인수위원들은 언론의 취재에 아예 응하지 않거나 “보도자료가 나오니 그걸 봐 달라”는 원칙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 한 인수위원은 ‘그럼 보도자료를 보고 추가질문을 해도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 문자를 보냈다. 다른 인수위원은 기자들에게 ‘복붙(복사+붙이기)’ 형식으로 “취재에 응할 수 없다. 인수위가 끝나고 식사라도 대접하겠다”는 내용의 양해 문자를 돌리기도 했다.

인수위원들의 철통보안 태세는 인수위 첫날부터 예견됐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18일 첫 전체회의 모두발언에서 “위원들의 개별적인 의견은 자제해달라”며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은 22일에는 간사단 회의에서 “인수위에 들어왔다고 외부에 자랑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며 국민께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분과 내에)만약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경력은 바로 지금 여기서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주지시켜달라”며 경고 수위를 높였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역시 함구령에 가세했다. 22일 간사단 회의가 끝난 직후 참석자들에게 “유출자는 반드시 색출해 인수위에서 사퇴시키겠다. 이건 범죄 행위이고 감찰해 형사 고발 조치 하겠다”며 고강도 발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이날 인수위 전문위원ㆍ실무위원 명단이 언론에 통째로 유출된 데 대한 경고였다.

인수위가 ‘철통보안’을 강조하는 데는 “위원들이 개별적으로 (특정 정책을)검토해보겠다는 말만 해도 정책이 변경 또는 폐기되면서 사회의 혼란이 많이 온다”(18일 안 위원장)는 분석이 깔려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인수위원이 개인 의견을 섞어서 설익은 정보를 언론에 말하면 침소봉대가 돼 혼란이 온다는 게 윤 당선인과 안 위원장의 판단”이라며 “첫날 회의에서 과거 인수위 참여 경험이 있는 인사들도 이런 점을 조심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고 전했다.

과거 인수위에서도 인수위원들에 대한 언행 조심 지시는 매번 있었다. 김대중 인수위에선 인수위원들이 김영삼 정부의 각종 비리의혹 색출에 나서자 김대중 당선인이 직접 인수위원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급기야 “인수위원장의 직인이 찍혀야 공식문서로 인정될 것”이라며 개별 위원의 의견 표출을 막았다. 노무현 인수위는 아예 “언론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2013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홍기택 인수위원이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2013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홍기택 인수위원이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불통 인수위’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박근혜 인수위에선 특히 정보를 주지 않으려는 인수위원들과 취재를 시도하는 기자들의 추격전이 잦았다. 당시 경제1분과 홍기택 인수위원은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위원들을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비닐봉지에 든 귤을 일일이 나눠줬다. 현안 질문을 막으려는 궁여지책이었다. 김현숙 여성문화분과 인수위원이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을 피해 회의장으로 뛰어들어가다가 구두 한 짝이 벗겨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새 정부 5년의 국정 밑그림을 그리는 자리인 데다, 정부의 ‘첫 얼굴’ 격인 만큼 인수위원들의 작은 실수가 상대 당의 공격대상이 될 가능성도 높다. 앞서 이명박 인수위 당시엔 허중수 인수위 기후변화에너지TF 팀장 등 인수위 관계자들이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로부터 강화도의 한 식당에서 ‘장어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즉각 사퇴했다. 박근혜 인수위 때는 장순홍 교육과학분과 인수위원이 소관부처 산하기관 차량을 수차례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 야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기도 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검증 단계부터 70여개의 강도높은 질문으로 인수위원들을 검증한 것도 결국 끝까지 물의를 빚지않고 인수위 활동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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