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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전쟁에 반대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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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는 것은 일본 생활의 작은 낙이다. TV 출연도, 신문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 이 73세 작가는 2018년 여름부터 민간방송 도쿄FM에서 비정기적으로 ‘무라카미 라디오’를 진행한다. 보통 계절이 바뀔 때쯤,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들려주며 팬들과 소통하는 내용이다. 그런 무라카미가 지난 18일 특별 방송을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에 반대하는 뜻을 담은 ‘무라카미 라디오 특별판-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한 음악’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난 2018년 11월 4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에서 ‘하루키 라이브러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지통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난 2018년 11월 4일 일본 도쿄 와세다대에서 ‘하루키 라이브러리’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지통신]

“음악에 전쟁을 멈추는 힘은 아마도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 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그가 한 말이다. 그리고는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열한 곡을 소개하며 가사를 직접 해석해준다. “늙은 사람들이 멋대로 시작한 전쟁에서 젊은이들이 죽고 있다”는 말과 함께 제임스 테일러의 ‘네버 다이 영’으로 시작해, 밥 딜런의 ‘블로잉 인 더 윈드’, 도어스의 ‘디 언노운 솔저’와 존 레논의 ‘이매진’ 등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해 이렇게 말했다. “시끄러운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권위적인) 지도자들에게 얌전히 끌려가기만 하다 보면, 큰일이 생길 수 있다.”

무라카미는 예술가들의 정치적 발언이 드문 일본에서 종종 쓴소리를 해 온 작가다.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이나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에 대한 경고 등이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방식은 직접적인 성명이나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한 주장이 아니었다. 자신이 잘하는,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 믿는 음악과 글을 통해서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성명 같은 건 별로 믿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길게, 강하게 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악은 논리를 뛰어넘어 공감시키는 능력이 크다. 소설도 마찬가지다”라고.

글과 음악에 그렇게 큰 힘이 있느냐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죄 없는 이들이 고통받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관람’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나날이다. 이런 때일수록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를 기원할 수밖에 없다는 걸 무라카미 라디오를 들으며 깨닫는다. 그가 라디오에서 소개한 브라이언 윌슨의 ‘러브 앤 머시’ 가사처럼, “너와 네 친구들에게 오늘 밤 필요한 사랑과 자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