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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사 반대 입김이 '외국인 주주' 흔들까…긴장하는 금융지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내 4대 금융지주사의 '수퍼 주총 데이'를 앞두고 금융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회장과 은행장 등을 비롯한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외국인 주주의 표심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대다수 이사 후보에 대한 반대표 행사를 권고하면서다.

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해 특정 지원자가 합격하도록 한 혐의로 4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온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이 11일 오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함 부회장은 “재판 결과를 주주들에게 더 상세히 보고하고 설명에서 주주총회를 무난히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에 영향력을 행사해 특정 지원자가 합격하도록 한 혐의로 4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온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이 11일 오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울서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함 부회장은 “재판 결과를 주주들에게 더 상세히 보고하고 설명에서 주주총회를 무난히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의결권 자문사는 수많은 투자처의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기관투자자에게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사정에 정통하지 않은 외국인 투자자는 ISS 등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ISS는 미국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의 자회사로, 세계 각국의 1700여개 기관투자자의 자문을 맡고 있는 1위 업체다.

올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곳은 오는 25일 열리는 하나금융지주 주총이다. 함영주 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하는 안이 상정돼 있다. 김정태 회장에서 함 부회장으로 10년 만에 수장이 바뀌게 된다. 이 안이 통과되려면 70% 넘는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주주의 찬성표가 절실하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ISS는 함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함 부회장이 채용 비리 사건 소송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의 불완전판매 관련 중징계 취소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게 주된 근거다.

채용 비리 사건은 지난 11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DLF 중징계 취소소송은 지난 14일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가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같은 사안으로 손태승우리금융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은 데다, 하나은행이 즉시 항소에 나서며 법리 다툼이 이어지게 됐다.

ISS는 하나금융 임원추천위원회의 허윤·이정원·양동훈 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에도 반대표 행사를 권했다. 사법 리스크가 있는 함 부회장을 회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이유다.

ISS가 모든 안건에 반대표를 권고한 건 아니다. 이달 말 회장직을 내려놓는 김정태 회장에게 하나금융이 특별공로금 50억원을 지급하겠다는 안건에는 찬성 의견을 내놨다. 이 안건에 대해 또 다른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는 반대 의견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주주의 표심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다.

4대 금융지주 외국인 지분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4대 금융지주 외국인 지분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선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와 달리 대다수 외국인 투자자가 상정된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ISS는 사법 리스크가 있는 경우 기계적으로 반대표를 권고하는 경향이 있는데 외국인 주주의 관심은 수익률”이라며 “수년 전부터 국내 금융지주사가 주주 친화적 배당 정책을 펼치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우호적인 지분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ISS는 지난해 주총 때도 신한금융과 우리금융 등의 이사진 연임 안건에 무더기 반대 의견을 권했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반대표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2020년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3년 연임 안 역시 주총 전 ISS가 반대를 권고했지만 오히려 외국인 우호 지분에 힘입어 통과됐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금융지주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중요한 투자처로 자리 잡으면서 주주들이 과거와 달리 ISS의 권고를 따라가기보다는 수익성을 자체 평가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며 “일단 기소가 되면 대법원의 무죄 판결 전까지 해당 경영자와 이를 추천한 이사에 대해 반대를 하라는 식의 권고는 주주들에게 오히려 불합리해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ISS가 반대 권고를 한 곳은 하나금융만이 아니다. 25일 우리금융지주 주총에 안건으로 상정된 이원덕 우리은행장 내정자의 비상임이사 선임에 대해서도 ISS는 반대를 권고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금융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30%로 작은 편이고 과점주주인 IMM프라이빗에쿼티과 키움증권 등(20.2%)이 지난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준 만큼 해당 안건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4일 열리는 신한금융 주총에서는 지분 8.78%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박안순·변양호·성재호·이윤재·허용학 사외이사를 재선임하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에 대한 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 이유다. ISS도 반대표를 권고했다.

그럼에도 신한지주는 재일교포 주주(15%)와 전략적 투자자인 BNP파리바(3.55%), 미즈호홀딩스(1.5%) 등이 우호 지분 역할을 해 해당 안건이 무리 없이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B금융 주총에서 노조가 추천한 김영수 전 수출입은행 부행장이 사외이사로 선임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은 노조 추천 이사와 사측의 이해가 충돌할 것을 우려하며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KB금융 노조는 2017년부터 사외이사를 추천해왔지만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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