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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의 몰락…학교 시설 고친다고 나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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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부실교육이 부추기는 경제양극화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교육 양극화는 경제 양극화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고 경제 양극화를 초래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피사(PISA,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지표를 보면, 기초학력 미달 비율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큰 변화가 없다. 이와 달리 한국은 2012년(8%)보다 2018년(15%)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점수에 대한 가정배경 영향력’ 지수도 OECD 평균은 큰 변화 없는 것과 달리 한국은 2000년(22)보다 2015년(42.8) 두 배 이상 급증해 미국·영국·일본·홍콩·핀란드보다 훨씬 높아졌다. 국내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도 고2 기초학력 미달률이 국·영·수 과목별로 2016년 3~5%에서 2020년 6.8%~13.5%까지 급증했다.

이 지표들이 일관되게 가리키는 것은 최근 우리 교육의 극심한 양극화다. 다른 OECD 국가보다 한국이 기초학력 미달 증가율도 가파르고, 가정환경에 따른 교육 성과 격차도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교육 양극화에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 해마다 증가
브레이크 없는 교육양극화 심각

부모 재력이 성공 요인 1위 꼽혀
“노력해도 성공 어렵다” 인식 확산

학교보다 사교육에 매달리는 현실
교사·교부금 줄이는 게 과연 옳나

미국과 일본에선 노력과 재능 우선

특히 성공 요인으로 ‘노력’의 영향력이 매우 낮다는 인식과 사회 이동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재능과 노력을 성공 요인으로 보는 ‘메리토크라시(노력하는 만큼 보상받는다는 뜻)’의 몰락이다.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의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 방향’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이 인식하는 청년의 성공 요인에서 미국은 ‘노력’이 1위, 중국과 일본은 ‘재능’이 1위인 데 비해, 한국만 ‘부모의 재력’이 1위였다. 한국의 2위는 인맥, 3위는 재능이었으며 ‘노력’은 순위권 밖이었다.

세대 내 이동성에 관한 인식에서 부정적 응답 비율은 한국 57.2%, 일본 28.3%, 미국 22.9%, 중국 17%였고, 세대 간 이동성 인식에서 부정적 응답 비율이 한국 45.9%, 일본 39.1%, 미국 17%, 중국 9.8%였다. 우리 사회가 경쟁이 심해서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처럼 보이지만, 노력과 능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인맥을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보는 인식은 실상 능력주의 몰락과 계급주의 부활을 경고하는 매우 심각한 시그널이다.

유아교육 단계부터 양극화 싹터

우리 교육의 양극화는 유아교육, 초중등교육, 고등교육 단계별로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가구 소득수준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및 참여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구 소득수준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및 참여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첫째, 유아교육 단계에서는 유아 교육기관 선택에 의한 양극화가 퍼지고 있다. 유아 교육기관은 국가지원금을 받는 유치원·어린이집이 있고, 지원이 전혀 없는 학원(영어유치원·놀이학교)이 있다. 유치원·어린이집은 지난 십여 년간 국가 지원을 점진적으로 늘려서 이제는 국공립이든 민간이든 지원금을 받고 규정에 따라 운영하기 때문에 학부모 부담이 거의 없게 됐다. 반면 영어유치원과 놀이학교로 불리는 학원은 국가지원금이 전혀 없어서 연간 1000만~2000만원의 교육비를 고스란히 학부모가 부담한다. 국가지원 운영비보다 훨씬 비싼 비용의 결정적 차이는 학급당 정원이다.

유치원·어린이집의 만 4세 이상 학급당 정원은 20~30명이지만, 학원인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의 학급당 정원은 6~12명이다. 영어유치원은 한 반에 원어민 교사와 한국인 교사 둘이 들어가는 투담임(2인 담임) 체제라 교사·학생 비율은 더 높다. 교사·학생 비율이 교육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느 단계나 마찬가지이나 유아 교육기에는 더욱 결정적이다. 고교나 대학에서는 탁월하게 잘 가르치는 교수자 1인의 대형 강의도 효과적일 수 있으나, 유아 교육기에는 탁월한 교사가 20~30명 유아를 상대하는 경우보다 보통의 교사가 6~12명을 다루는 것이 압도적으로 효과적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가장 최근 조사인 2017년 자료에 의하면 영유아 사교육비는 연간 3조7000억원이었다. 양극화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사교육 매개로 양극화 고착화

둘째, 초중고 단계에서는 사교육으로 매개되는 양극화가 지배적이다. 초중고 성적과 사교육의 상관 통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역대 최고를 경신한 초중고 사교육비(23조4000억원, 통계청)의 가장 큰 원인은 ‘학교수업 보충·심화’다. 공교육이 미흡해서다. 학교가 못 가르치고 안 가르쳐서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내몰린다. 학교의 가장 주요 기능을 사교육보다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어떤 교육전략이 효과적일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어떤 교육전략이 효과적일까?.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개혁에 성공한 학교에서는 선발 효과가 아닌 학교효과가 나타나면서 사교육이 줄어도 학업성취가 더 나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즉 초중고 단계에서의 양극화는 표면적으로는 사교육이 범인인 것처럼 보이나 실상 진범은 부실한 공교육이다. 학비가 비싼 국제학교나 대안학교로 탈출하지 않는 이상 공교육은 의무 무상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교육기관 선택 여지가 별로 없다. 따라서 초중고 단계는 공교육의 부실로 인해 사교육을 매개로 양극화가 굳어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정부의 대학 통제가 양극화 가속

셋째, 대학교육에서는 정부 통제형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대학 서열은 단순히 명성순이 아니라 학생 1인당 지출되는 교육비 순서라는 점이 드러난 바 있다. 정부는 대학의 등록금을 14년째 동결시켰고 정원도 늘리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대학을 평가해 지원금을 차등 지원해왔다. 등록금과 정원이 동결된 상태에서 정부지원금을 적게 받는 대학은 아무리 혁신하고 거듭나려고 해도 교육의 질 제고가 어렵다.

따라서 하위권 대학 진학자들은 질 낮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졸업 후 낮은 역량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규제와 차등 지원금 정책의 폐해가 고스란히 하위권 학생에게 가는 것이다. 대학교육은 정부지원금이 대학의 패자 부활을 차단해 양극화를 고착화하는 정부 통제형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가장 좋은 교육은 학생에 피드팩

모든 단계에서 경제력이 교육 양극화를 초래하지만, 정책이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기도 한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교육전략으로 가장 비용 효과적인 것은 개별 학생에게 피드백해주는 것이다. 학교 시설 개선은 실질적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줄이는 것은 시설 개선보다 3배 효과적이고, 학생에게 직접 피드백을 해주는 것은 시설 개선보다 9배 이상의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정부 각 부처는 모두 가장 효과 없다는 정책을 주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에 2025년까지 18조5000억원을 투입해 전국 노후 학교 건물 2835개 동의 시설 개선을 추진한다. 기획재정부는 학생 수 감소를 명분으로 교육교부금을 줄이고, 행정안전부는 교사 정원을 감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런 방향은 무엇을 의미할까? 공교육에서 교사 줄이고 시설 투자에 방점을 두는 정책은 대학별 차등 지원금처럼 하위권의 패자 부활 사다리를 더 끊는 것이고 양극화를 가속하는 방향이다.

방과 후 수업보다 사교육 쿠폰이 효과적

양극화를 비판하면서 제시하는 대안이 실상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경쟁을 완화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하자면서 “교육과정 범위를 줄이자” “시험을 없애자” “어려운 문제를 없애자” 등 빼기 교육을 주장한다. 공교육에서 이런 빼기 교육을 해도 고소득 상위권은 사교육에서 수시로 레벨 테스트로 진단하고 미흡한 부분 보완하면서 빼기 없이 더하기 교육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교육 접근성이 떨어지는 저소득층 및 하위권만 빼기가 된다. 빼기 교육은 전형적인 양극화 심화 정책이다.

성장과 분배는 상충하는 개념으로 인식되지만, 교육에서만큼은 분배에 제대로 투자할수록 학생 역량이 향상돼서 사회 전체의 성장에 기여한다. 전국민지원금보다, 학비 무상보다, 오히려 사교육 쿠폰 지급 등을 통해 내 아이의 수준에 더 잘 맞는 질적으로 우수한 사교육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실질적인 도움일 수 있다.

획일화와 규제로 억압해서 질적 융성이 일어난 역사는 없다. 방과 후 수업보다 우수한 사교육 선택 쿠폰을 준다고 해서, 정부가 개발한 디지털 텍스트북보다 질 높은 민간 인공지능(AI) 학습 프로그램 구매를 지원한다고 해서, 사교육과 민간 개발을 부추기는 거 아니냐고 매도하지 말자. 공적 지원 없어도 그들은 민간 영역에서 경쟁 때문에 어차피 발전한다. 국가의 지원으로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면 선택받기 위해 퀄리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결국 교육의 질이 높아진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서울대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연구교수, 일본 홋카이도대 초빙특임교수를 지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대한민국의 시험』을 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