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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재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많은 나라가 미국이 주도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섰다. 금융 거래는 물론, 각종 교역과 물류, 심지어 항공기의 입항도 금지했는데, 이런 경제 제재와는 별도로 미국의 소셜미디어 서비스들이 러시아가 전쟁과 관련한 허위정보를 확산하는 계정을 찾아 폐쇄하기도 했다. 푸틴은 이에 항의하면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BBC 등 각종 미디어를 러시아에서 차단하는 조처를 했다. 그런가 하면 영국 정부는 러시아 입장을 대변하던 러시아의 해외 미디어 채널 RT의 미디어 승인을 취소했다. 하루아침에 거대한 정보의 장벽이 세워진 것이다.

이를 두고 인터넷이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쪼개지는 ‘스플린터넷(Splinternet)’이 완전히 현실화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제 인터넷을 더 이상 ‘온 세상을 연결하는 그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를 우회할 방법은 존재한다. 가상사설망(VPN) 서비스를 이용하면 정부의 검열, 접속 차단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인 사이에서는 외국의 소식을 듣기 위해 VPN 가입이 무려 4300% 넘게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많은 VPN 서비스들이 비용 지불에 비자, 마스터 카드와 같은 국제적인 신용카드를 요구하는데, 금융제재와 함께 러시아인이 해외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당장은 VPN에 연결할 수 있어도 다음번 결제일이 다가오면 사용료를 지불할 수 없어 외부와 단절되는 사용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제재가 러시아인들의 푸틴의 프로파간다 안에 가둬두는,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