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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세모와 네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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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호 34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세모와 네모는 동그라미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한 듯하면서도 또 다르다. 잣대를 대고 각을 제대로 잡으면 보다 명확히 비교가 되지만 손으로 쓱쓱 긋거나 연필로 조그맣게 그려 각이 무뎌지면 구별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이처럼 도형이란 측면에선 분명 동그라미(○)와 다른 종류지만 실생활에서는 엑스(X)만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게 세모(△)와 네모(□)다. 게다가 동그라미도 크고 작은 동그라미에 좌우 타원형과 위아래로 길쭉한 동그라미까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지 않은가. 기하학도 ‘절대’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상대성을 감안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상대성이 강조되는 건 수학과 과학뿐만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안도 세모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네모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느 한 사람이 이 문제는 세모로, 저 문제는 네모로 판단하는 경우도 흔하다. 한번 정한 입장이 끝까지 지속되지 않고 수시로 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정 이슈에 대한 시각도 각이 선명한 세모나 네모였던 게 시간이 흐르면서 부드러운 동그라미로 바뀌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 인생사 자체가 그만큼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며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과 다름이 기본

국민 통합·화합의 초심 잊지 말기를

하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세모·네모와 동그라미의 차이를 하늘과 땅의 거리보다 더 멀게 재단해 버리고 있진 않은가. 세모의 마음과 네모의 마음이 조금씩 풀려서 둥근 마음이 되도록 설득하긴커녕 오히려 “왜 동그라미가 아니냐”며 비난만 하고 있진 않은가. ‘다름’과 ‘틀림’은 분명 다른 것임에도 세모와 네모는 틀린 답이라고 규정짓고 동그라미를 찍은 지지자들만 챙기고 있진 않은가. 민주주의는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게 기본인데,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았을 뿐인 여야 정치인들이 무슨 권한으로 세모와 네모의 유권자를 배척하고 있는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0일 당선 일성으로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화합과 타협의 정치를 하겠다는 뜻도 누차 밝혔다. 부디 임기를 마칠 때까지 지금의 초심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국정에 임할 때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을 늘 가슴에 새기길 바란다. 세모의 마음과 네모의 마음도 다 같은 국민의 마음이지 않나. 세모의 변이 오히려 엇나가면서 X자 세 개가 되는 불행은 한국정치사에서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전 세계에 스타 셰프 돌풍을 일으켰던 제이미 올리버는 2019년 그의 레스토랑이 모두 파산하자 “(이탈리아식 만두인) 라비올리 반죽처럼 유연하게 대처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결국 부러져 버렸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성취만 믿고 시장 트렌드의 변화를 무시한 데 대한 후회였다. 지금 대한민국도 치열한 국제 생존경쟁 시대를 맞아 내부 갈등에 모든 동력을 소진할 경우 한순간에 뒤처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세모와 네모가 함께하는 통합의 정치 없이는 오징어 게임의 ‘○△□’ 로고가 상징하는 약육강식의 비극만 초래될 뿐이다.

물고기는 물과 다투지 않고 숲속의 나무는 산과 다투지 않는다. 자신이 몸담은 터전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게 생존의 기본 조건임을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그라미는 물론 세모와 네모가 한 데 모인 ‘민심’이란 거대한 바다에 떠 있는 정치라는 배도 바다와 다퉈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진정 강해지고 싶다면 남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게 역사의 오랜 교훈이다. 영화 ‘말모이’의 대사처럼 지금이야말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 될 때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정치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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