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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홍준의 문화의 창

꽃차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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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대통령 선거 열풍이 끝나고 나니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봄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고 시차를 두고 꽃차례로 피어난다. 화신은 언제나 동백꽃부터 시작된다. 엄밀히 말하면 동백은 봄꽃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겨울 꽃이다. 제주도에는 눈 속에서 꽃피우는 설동백도 있다. 그래도 동백은 봄꽃의 상징이다.

동백나무는 집단을 이루는 속성이 있어 거제도, 오동도를 비롯하여 한려수도와 다도해의 섬들은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널려 있다. 동백은 윤기나는 진초록 잎새마다 탐스러운 빨간 꽃송이가 얼굴을 내밀 듯 피어나 복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동백꽃은 반쯤 질 때가 더 아름답다.

봄의 전령은 동백, 매화, 산수유
붉은꽃, 하얀꽃, 노란꽃의 꽃차례
유적지의 꽃이 한층 더 아름답다
춘래불사춘이라도 봄은 다시 온다

보길도 고산 윤선도의 원림인 세연정에 떨어진 동백꽃이 둥둥 떠 있을 때, 다산 정약용이 유배시절 즐겨 찾았던 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 숲속 자그마한 승탑 주위로 떨어진 동백꽃이 가득 널려 있을 때는 가히 환상의 나라로 여행 온 것 같다.

봄꽃은 생강나무, 산수유, 매화가 거의 동시에 피면서 시작된다. 생강나무는 산에서 홀로 자라고, 산수유는 마을 속에 동네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매화는 정성스레 가꾸어지기도 하고 밭을 이루며 재배되기도 한다. 돌담길이 정겨운 구례 산동마을에 노목으로 자란 산수유가 실로 장하게 피어나고, 광양 매화마을은 일찍부터 매화 축제를 열고 있어 꽃소식은 섬진강에서 올라온다.

지난해 만개한 전남 구례의 화엄사 홍매. [중앙포토]

지난해 만개한 전남 구례의 화엄사 홍매. [중앙포토]

어디에 핀들 마다하리오마는 매화의 진짜 아름다움은 노매(老梅)에 있다. 노매는 아름다운 늙음의 상징과도 같다. 수령이 300년에서 500년 이상 되는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순천 선암사의 무우전매, 구례 화엄사의 매화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율곡매는 몇 해 전부터 앓고 있는데 이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안타까운 진단이 내려졌다.

특히 오래된 사찰의 노매는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를 그려 본다. 그래서 절집의 진정한 자산은 노스님과 노목이라고 한다.

남쪽에서 이렇게 봄꽃이 시작될 때 서울 도심 에선 한동안 단독주택의 정원수로 많이 심겨진 목련꽃이 탐스럼게 피어나며 봄을 알린다. 그러고 나면 이내 전국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고 이어서 벚꽃이 만발하면 그때가 봄꽃의 절정이다. 올해의 벚꽃 개화 시기는 부산과 여수가 3월 24일, 서울이 3월 28일로 예고되어 있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라고 거부감을 갖기도 하지만 실제로 일본이 공식적으로 지정한 국화는 없다. 꽃은 어디에 있어도 꽃일 뿐이다. 나는 벚꽃 중 산벚꽃을 아주 사랑하여 경주 남산답사는 언제나 진달래와 산벚꽃이 함께 피는 때에 맞추어 갔다. 본래 나무에 ‘개’자가 들어가면 개복숭아, 개살구처럼 열매가 부실함을 말해주지만 산(山) 자가 들어가 있으면 산벚꽃, 산동백, 산목련처럼 꽃송이는 작고 홑꽃이어서 오히려 청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때 농촌 마을에서는 유실수의 꽃잔치가 벌어진다. 하얀 살구꽃과 배꽃, 연분홍 복숭아꽃, 빨간 명자꽃. 그리고 뒤늦게 사과꽃이 피면 봄꽃의 축제가 끝나고 서서히 신록의 계절로 넘어간다. 그 무렵 산과 들엔 이팝나무, 백당나무, 미선나무, 조팝나무, 때죽나무, 귀룽나무들이 한결같이 하얀 꽃을 피우며 봄을 전송한다.

이처럼 봄꽃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해마다 꽃차례로 피어나고 있지만 누구나 봄꽃 축제를 만끽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영남대 교수 시절 어느 봄날 동대구역에서 새마을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하필이면 내 기차 칸은 어느 여고 동창생들이 졸업30주년 홈커밍 행사로 경주를 여행하고 귀경하며 72석 중 내 자리만 빼놓고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부끄럼 감추고 내 자리에 앉아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추풍령고개를 지날 때 곁에 있던 분이 나직이 내게 물어왔다.

“저 멀리 듬성듬성 보이는 하얀 꽃이 무슨 꽃입니까?”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고 “자두꽃이네요”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 분은 “어머, 자두꽃이 저렇게 복스럽게 피는군요”라고 하더니 한마디를 더했다. “아. 나이가 드니 이제 꽃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그렇다. 꽃은 나이가 들어야 그 아름다움의 진수를 알게 된다.

그러나 인간사에는 기쁨보다 어려움이 많은 법,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꽃이 피었는지 말았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이 태반일 것이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른 자영업자, 부모님 우환으로 병원 문이 닳도록 드나드는 자식들, 입시에 떨어져 재수하고 있는 수험생들, 그리고 깊은 상실감으로 마음의 위로가 필요한 분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는 이 분들에게 꽃은 오늘의 축제는 아닐지언정 내일의 희망은 될 수 있다고 위안 드리고 싶다. 송나라 애국시인 육방옹(陸放翁)은 ‘산서 마을을 노닐며(遊山西村)’라는 시에서 꽃의 희망을 이렇게 노래했다.

‘산은 첩첩, 물은 겹겹, 길이 없다고 의심되지만/ 버들잎 푸르고, 꽃들이 밝게 피어나는 또 하나의 마을이 있으리.’

산중수복의무로(山重水復疑無路)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