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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없어서 처방 못한다" 키트 대란 이어 기침·감기약 품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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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은 지난주부터 코로나19 확진 환자에 쓰고 싶은 약을 처방하지 못하고 있다. 기침·가래약인 시네츄라, 코푸시럽 등이 동나서다. A 원장은 “약국에 왜 약을 못 갖다 놓느냐고 문의하면 약이 시장에 없어 못 구한다고 한다”며 “‘원장님이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데 약이 없어 환자에 못 쓰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최근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의약품 수요가 크게 늘면서 일부 유명 제품을 중심으로 감기약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재택치료 환자가 177만여명에 달하면서 호흡기전담클리닉과 호흡기 진료 지정 의료기관에서의 관련 약 처방이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제약사의 총 공급 물량은 정해져 있는데 확진자 급증으로 약 수요가 많아지면서 한시적인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했다.

15일 대전 유성구 월드컵경기장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PCR검사를 받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5일 대전 유성구 월드컵경기장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PCR검사를 받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A 원장은 “약국에 있다는 약 위주로 일단 처방하고 환자들에게는 시중에 약이 품귀라 충분히 약을 못 쓴다고 사정을 설명한 뒤 혹시 약이 잘 안 들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 있다”며 “상황이 이런데 정부는 뭐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성인용 약뿐 아니라 어린이 감기약과 해열제도 구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약이 모자란다는 회원들의 제보 사례가 넘친다”며 “오미크론의 증상이 경미하다고 해도 어린 아이들은 열이 4~5일 정도로 오래 가고, 해열제를 먹어도 잘 안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타이레놀(해열 진통제) 등 여러 약제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성분의 다른 제품을 처방해도 되지만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은 복제약을 구하려 해도 이마저 여의치 않다는 게 임 회장 얘기이다.

그는 “어린 아이들은 급성 폐쇄성 후두염(크룹)을 제때 처치하지 못하면 호흡곤란이 올 수 있도 있는데 약(성분명 부데소니드 등)이 부족히다”며 “중수본(중앙사고수습본부)에선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이라 하고 다른 병원에서 해열제를 이미 처방한 기록이 있으면 환자에 남은 걸 먹게 하라고 하는데 의사 입장에서 언제 그런 걸 따지고 있느냐”고 답답해했다. 임 회장은 “무기가 있어야 싸우는 것 아니냐”며 “정부서 남의 일처럼 볼 것이 아니라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처방은 나오는데 약이 없으니 약국도 애를 먹고 있다. 약사회 관계자는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왔는데 해당 약을 처방 못 하면 환자는 약국에 불만을 토로한다”며 “처방 의약품이 없을 때는 수정·대체조제를 하고 관련한 사실을 사후 통보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행정 업무도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식약처가 확진자 폭증으로 의약품 수요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도 대처가 늦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 문은희 식약처 의약품정책과장은 “코로나 치료에 필요한 모든 약으로 보면 그렇지 않을텐데 지역별, 특정 제품별로 일부 품귀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체들에 2월부터 증산 독려를 해왔고, 막연히 요청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 통계를 근거로 할 필요가 있어 최근 제약사에 의약품의 생산·수입·판매·재고량 등을 매주 전산으로 보고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코로나19 소아전용 의료상담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 서초구 한 의원에서 재택치료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8일 오전 코로나19 소아전용 의료상담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 서초구 한 의원에서 재택치료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 과장은 “업체들이 얼마나 생산, 출고했고 얼마나 남겼는지 모니터한 뒤 필요한 사항을 조치하려 하는 것”이라며 “생산량을 확대할 여지가 있는지 계획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생산량을 확대하기 위해 원료는 충분한데 주52시간 근무제 제약 때문에 곤란한 업체도 있어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해소하고 있다”며 “설비를 갑자기 증설할 수는 없겠지만 같은 설비 내에 일부 증산은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도 지난주 의료계에 공문을 보내 의약품 공급 부족 관련 협조를 요청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럽제가 많이 부족한데 소아 중에서도 조금 큰 대상자에는 시럽제 대신 정제(알약)를 가급적 처방해달라고 했다”며“약국서 약이 없을 때 수정, 대체조제 등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도 구했다”고 전했다. 또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등을 통해 처방 내역을 확인한 뒤 중복 처방인 의약품이 있으면 이를 감안해 처방할 것을 요청했다. 당국은 사용 단계에서 과한 가수요가 있는지도 따져볼 방침이다.

서울 시내 한 약국에 붙은 코로나 재택 가정 상비약 판매 안내문.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약국에 붙은 코로나 재택 가정 상비약 판매 안내문. 연합뉴스

그러나 진해거담제 등의 의약품은 단시간에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부족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약사회 관계자는 “생산 가능한 양이 있기 때문에 제조현장을 닥달한다고 해서 확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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