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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획 시론

성공한 대통령 되려면 ‘통합 인사’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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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새 대통령에 바란다 ①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9일 밤 제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보며 잠을 못 이룬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대선은 초접전이었다. 0.73%포인트의 득표율 차이로 승패가 갈린 이번 대선 결과를 보면서 정치인들은 ‘한 표’의 무게를 새삼 절감했을 것이다.

승리한 쪽에서는 외부 상황이 아무리 유리해 보여도 권력을 되찾아 오는 일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고, 패배한 쪽에서는 오만하고 방심하면 언제라도 민심이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정권 교체’
진영 넘어 역량 있는 인재 구하고
외부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

거대 담론 없이 지나간 선거였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의 키워드는 ‘정권교체’였다고 생각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거의 예외 없이 상대적으로 높은 정권교체에 대한 응답률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5년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여의도의 정치 문법도 모르고 정치 셈법도 모르는’ 정치 신인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결국 ‘바꾸자’는 민심이 이번 선거판을 결정했다.

하지만 변화를 요구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모든 걸 부정하고 바꾸려고만 하는 태도는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선거 직후 승리한 쪽에서 범하기 쉬운 실수가 과거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는 태도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권력을 잡은 보수 세력은 그 이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칭했다.

선거 구호로는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집권 후 그 구호는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10년의 세월 동안 우리 사회는 변화해 올 수밖에 없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 여건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집권 세력이 보기에 이전 10년이 불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해도 그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파적·이념적 편견과 승리의 오만이 인식의 왜곡을 불러왔다.

대선에서 531만 표 차이로 압승한 이명박 정부는 승리에 도취했고 이전 정부에서 협상 중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충분한 검토 없이 뒤집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일부 세력의 불안 심리 자극과 그로 인한 촛불 집회로 인해 새 정부는 임기 초반 석 달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자원외교를 통째로 부정했지만, 요소수 사태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그 정책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파적·이념적 편견을 버리고 변화된 현실을 직시하는 실용적인 자세를 지녀야 한다.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해도 과거에 대한 전면적 부정은 비현실적이며, 기존 정책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설익은 대안이 제시돼도 안 된다.

0.73%포인트 차이로 나뉜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돼 있는지 잘 보여줬다. 치열하지 않은 선거는 그전에도 없었겠지만, 이번만큼 두 진영이 사생결단하듯 다툰 선거는 드물었다. 상대편에 대한 혐오와 비방이 도를 넘었고, 지역·이념·세대에 더해 성별 갈등까지 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이후 당선자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합일 수밖에 없다. 통합의 출발은 인사(人事)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캠프·진영을 넘어 역량 있는 인재를 널리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선자는 선거 기간 중 당이나 캠프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핵심 공직에 대한 인사가 그간 ‘신세 진 것’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동안 보아온 대로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던 건 임기 초기에 선거 캠프를 비롯한 특정 집단에 집중된 끼리끼리 식의 폐쇄적 인사 때문이었다.

통합의 정치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국민 절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 진영이나 캠프와 무관하게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폭넓게 기용해야 한다. 이런 포용과 개방의 정치는 172석의 거대 야당에 맞서야 하는 여소야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윤석열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경청해야 하는지 배웠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당선 이후에는 경청해야 할 절박함이 선거 때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귀를 열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밖에서는 잘 보이던 산의 모습도 산속으로 들어가면 안 보이게 마련이다.

정치적 조언이 이른바 소수의 ‘윤핵관’에 국한된다면 대통령의 판단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소수 측근에 의존하지 말고 여당과 수시로 소통하고 많은 이들과 만나면서 외부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사실 ‘윤석열 지지’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과거 무조건적이라고 할 만한 절대적 지지를 받은 김영삼·김대중 또는 노무현과 윤 당선인의 경우는 다르다는 말이다. 제대로 알고 찍은 게 아닌 만큼 앞으로 잘할 것인지 지켜보겠다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더 긴장하고 늘 경청하면서 통합과 소통의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