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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기의 소통카페

광장의 소통, 밀실의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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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

20대 대통령 선거가 정권교체를 선택하며 막을 내렸다. 비호감·네거티브·고소고발·진영·세대대결의 진흙탕 선거라는 비판이 무성했지만 선거는 단연코 자유민주국가의 위대한 제도이다. 무소불위의 승자독식, 후안무치의 이권 카르텔로 변하는 정권을 심판하고 후보자와 정당의 수권 비전을 평가할 수 있는 시민임을 재발견하고 체감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최종 승리자가 된 이유로 농업혁명, 인지혁명, 기술혁명(『사피엔스』)을 들었지만 선거제도를 추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99%의 투표율에 99.9%가 찬성했다는 괴물 같은 선거와는 다른 직접·보통·평등·비밀의 원칙이 지켜지는 선거이다. 죽음이 어른거리는 폭력과 공포의 위협 속에서 치르는 독재국가의 위선적인 선거와는 다른 진짜 선거이다.

대통령 책무는 국민과의 소통
고립된 공간에 머물지 않아야
끊임없는 경청과 설득 필요해
다양한 정보 모아야 국정 원활

소통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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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발의 차이로(0.73%포인트 24만7000여 표) 당락이 결정된 결과의 함의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한국 정치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점도 많을 것이다. 당선되고 나면 유권자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권력에 안주하는 대부분의 정치인에게 한 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유권자도 한 표의 힘을 절감하는 기회였다. 어떤 정권이든 선거를 통해 교체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국정을 독점하고 배타적 인사로 나라의 안정감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방지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다원주의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계층, 지역, 세대와 관계없이 모두 공정하게 대우받도록 하겠다” “대한민국은 모두가 하나이며,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며 국민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헌법정신, 의회 존중, 야당과 협치 등의 정치적 측면의 혁신 못지않게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국민 분열이 극심한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허심탄회한 소통이 최우선의 공공선임을 밝힌 것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경청하는 것인가를 배웠다” “기자 여러분과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 “참모들의 뒤에 숨지 않는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기자 여러분도 질문을 자주 던져서” 자극을 달라고 요청했다. 참 그리운 말이다. 동시에 국민과 대화에 소극적으로 일관한 대통령을 경험한 국민으로서는 앞으로 지켜볼 말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소통 철학에 따라 청와대는 밀실이 될 수도 광장이 될 수도 있다. 밀실은 외부와 정보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폐쇄 지향의 고립된 공간(close system)으로, 창문은 닫혀 있고 환기가 되지 않아 곰팡이가 피게 된다. 세상의 이야기에 둔감하니 자신이 믿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광장은 외부와 정보교류가 원활한 개방지향의 열린 공간(open system)으로 창문은 열려있고 햇빛이 비추어주니 곰팡이가 필 수 없다. 쌍방향 소통으로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므로 정보의 폐허가 아닌 정보의 창조를 이룰 수 있다.

광장의 소통을 실행하면 청와대의 국민소통에 대한 직무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소통수석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미화하고 무리한 정책을 어떻게든 옹호하는 행위를 국민소통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뜻을 알리는 것 못지않게 국민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역할도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선거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를 발표하다가 “낙선하신 분과 그 지지자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는 대목에서 울먹이느라 발표를 중단하고 퇴장했다가 재입장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공적 영역의 사안과 사적인 자신의 태도를 분간하는 공직자로서 본분에 충실한 대변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소통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정보로 전달하고, 홍보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 함께 의미를 공유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경청하고 설득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국민을 향한 이런 소통이 공개적이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공론장(『공론장의 구조변동』, 하버마스)을 형성하는 것이다. 국민 통합은 국민을 편 가르지 않고 국민을 찾아가는 소통에서 시작된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커뮤니케이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