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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세 추성훈 복귀전 상대는 '괴짜 챔피언'…"하얗게 불태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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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의 복귀전에서 챔피언 출신 아오키 신야와 맞붙는 추성훈. [사진 원챔피언십]

2년 만의 복귀전에서 챔피언 출신 아오키 신야와 맞붙는 추성훈. [사진 원챔피언십]

"두려운데, 이상하게 설레요. 홀로 케이지에 서 본 사람만 아는 감정이에요."

종합격투기 복귀전을 앞둔 추성훈(47·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차분하게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베테랑답게 시종일관 여유가 넘치는 말투였다. 추성훈은 오는 26일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원챔피언십 대회 종합격투기 라이트급(77㎏급) 경기에서 아오키 신야(39·일본)와 맞붙는다. 아오키는 원챔피언십 라이트급 챔피언을 두 차례나 지낸 강자다. 최근 4연승 중이다. 현재 랭킹은 3위.

추성훈에겐 2년 만의 복귀전이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2020년 2월 셰리프 모하메드(이집트)와 대결이었다. 당시 1라운드 KO승을 거뒀다. 일본 도쿄에서 훈련 중인 추성훈과 7일 전화 인터뷰했다.

2년 전 경기에서 추성훈은 화끈한 타격으로 KO승을 거뒀다. [사진 원챔피언십]

2년 전 경기에서 추성훈은 화끈한 타격으로 KO승을 거뒀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47세의 나이에도 근육질 몸매를 유지 중이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47세의 나이에도 근육질 몸매를 유지 중이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훈련했다. 친한 격투기 후배 김동현(UFC 웰터급 전 랭킹 6위)을 파트너로 한국에서 훈련하려 했는데, 코로나 확산으로 이동이 어려워 무산됐다. 일본 동료 선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81㎏급 금메달리스트다. 2004년 은퇴 후 격투기로 전향했다. 유도 선수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타격 능력이 출중해 승승장구했다. 2009년 '격투기의 메이저리그' UFC에 진출해 전성기를 달렸다. 지든 이기든 화끈한 난타전을 벌여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 'UFC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도 선수 출신 파이터 톱10'에 선정되기도 했다. 원챔피언십에는 2018년 입성했다.

추성훈은 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은퇴 후 격투기로 전향했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은퇴 후 격투기로 전향했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탁월한 패션 센스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방송인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중앙포토]

추성훈은 탁월한 패션 센스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방송인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중앙포토]

1975년생 추성훈은 만 47세다. 격투기 선수로는 할아버지 격이다. 식스팩이 선명한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고 있지만, 힘과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 반면 방송인으로는 여전히 전성기다. 뛰어난 패션 감각과 재치있는 입담으로 일찍부터 한·일 방송가를 누비던 그는 딸 추사랑(11)과 함께 출연한 예능 프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방송가와 광고계의 출연 제의가 이어졌다. 최근엔 '미운 우리 새끼' '도시어부3' '안싸우면 다행이야' '편스토랑' 등에 출연했다.

그에게 방송 대신 격투기를 택한 이유를 물었다. 추성훈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아버지 추계이(71) 씨는 재일교포 유도 선수 출신이다. 운동 선배이자, 인생의 멘토다. 추성훈은 "아버지는 항상 '인생의 갈림길에선 평탄한 길 대신 험한 길을 택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쉽고 편한 길을 걸으면 나태해지고, 목표 의식도 사라진다. 반면 어려운 길을 헤쳐가면 단련되고 성장한다. 방송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지만, 지금 택해야 하는 건 어렵고 힘든 격투기 선수의 길"이라고 설명했다.

추성훈은 "최근 신인 시절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최근 신인 시절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사진 원챔피언십]

그러면서 "스포츠에서 열정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20~30대 때는 경기에 반드시 이겨서 큰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지금은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동기 부여와 목표 의식이다.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신인 시절 열정이 되살아났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직 케이지'라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요즘 예능 프로에서 맹활약 중인 김동현에 대해선 "동현이가 나를 따라 방송에 출연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프로 방송인이 다 됐다. 맨날 '형님 덕분에 방송 잘하게 됐다"며 말로만 고마워한다. 나중엔 동현이 덕에 방송 출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농담했다.

아오키 신야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괴짜 파이터로 유명하다. [사진 원챔피언십]

아오키 신야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괴짜 파이터로 유명하다. [사진 원챔피언십]

수년 전부터 추성훈을 도발했다. [사진 원챔피언십]

수년 전부터 추성훈을 도발했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여덟살 어린 아오키와 악연이다. 아오키는 2008년부터 추성훈에게 '한판 붙자'며 도발한 '괴짜 파이터'다. 둘의 대결은 체급이 달라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추성훈을 자극했다. 지난해엔 경기장에서 만난 추성훈을 향해 "왜 대결을 피하냐"며 소리쳤다. 결국 웰터급(84㎏급) 추성훈이 체급을 라이트급을 한 단계 내리면서 맞대결이 성사됐다. 추성훈은 이전 경기보다 몸무게 7㎏을 더 빼는 불리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복귀전이 부상으로 미뤄지면서 팬과 원챔피언십에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다시 경기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수락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체급과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오히려 잘됐다. 내 나이에 챔피언급 선수 붙기 어려운데,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다. 핑계를 대며 피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추성훈이 체급을 내리면서 아오키 신야와 대결이 성사됐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이 체급을 내리면서 아오키 신야와 대결이 성사됐다. [사진 원챔피언십]

지옥훈련을 마친 추성훈(왼쪽). [사진 추성훈 인스타그램]

지옥훈련을 마친 추성훈(왼쪽). [사진 추성훈 인스타그램]

추성훈은 매일 웨이트트레이닝(오전)-스파링(오후)-러닝(저녁·이상 2시간씩) 세 차례 훈련하는 혹독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식단도 철저하게 지킨다. 평소 90㎏인 체중에서 13㎏을 감량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시 세끼 퍽퍽한 닭가슴살만 먹는다.

추성훈은 "20대 땐 짧은 기간 내 원하는 만큼 감량했는데, 나이가 드니 쉽지 않다.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을 먹지 못하는 게 고역이다. 그땐 경기하겠다고 한 것을 잠깐 후회한다"며 웃었다.

추성훈은 훈련이 고될 때마다 딸 추사랑을 보며 힘을 낸다. [중앙포토]

추성훈은 훈련이 고될 때마다 딸 추사랑을 보며 힘을 낸다. [중앙포토]

톱 모델 출신 아내 야노 시호는 추성훈의 든든한 후원자다. [중앙포토]

톱 모델 출신 아내 야노 시호는 추성훈의 든든한 후원자다. [중앙포토]

추성훈은 지칠 때마다 가족을 떠올리면 힘이 솟는다고 했다. 그는 2009년 일본 톱 모델 야노 시호(46)와 결혼했다. 야노는 남편의 든든한 후원자다. 추성훈은 "아내는 나를 믿어주고 밀어주는 편이다.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응원해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딸 사랑이는 추성훈의 '비타민'이다. 그는 "'아빠가 곧 경기할 것 같아'라고 말한 뒤부터 사랑이가 말을 안 한다. '아빠가 싸우는 게 싫다'는 표현이다.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봐 요즘은 '아빠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만 말한다. 그 이상 얘기하면 울음을 터뜨릴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야노 시호는 남편 경기에 진 날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중앙포토]

야노 시호는 남편 경기에 진 날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중앙포토]

야노 시호(왼쪽)과 추사랑. [사진 야노 시호 인스타그램]

야노 시호(왼쪽)과 추사랑. [사진 야노 시호 인스타그램]

전문가들은 추성훈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분석한다. 아오키는 그래플링(메치기·태클)이 주무기인데, 추성훈이 경기 초반 펀치로 압도할 경우 이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추성훈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는 "아오키는 강한 상대다. 체급까지 내린 내가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의외'라고 하자, "이젠 아픈 건 아프고, 힘든 건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나이가 됐다. 자존심만 내세울 순 없다"며 껄껄 웃었다.

아저씨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추성훈의 꿈이다. [사진 원챔피언십]

아저씨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추성훈의 꿈이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경기용 바지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같이 새긴다. [사진 원챔피언십]

추성훈은 경기용 바지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같이 새긴다. [사진 원챔피언십]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은 없다. 추성훈은 "신인 시절 강한 상대일수록 투혼을 발휘했다. 케이지에서 모든 것을 불태우겠다. 내 경기를 보며 또래 40~50대 아저씨들이 '저 나이에도 도전하고 꿈꿀 수 있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성훈은 경기용 반바지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동시에 달고 뛴다. 이를 두고 일부 팬은 '양다리'라고 비난한다. 재일교포 추성훈은 유도 선수 시절이던 1998년 한국으로 와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파벌 탓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판단해 3년여 만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1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추성훈은 이번에도 같은 옷을 입을 거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을 다 품고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번이 은퇴 경기냐'고 물었다. 추성훈은 "이제 시작이다. 내 꿈은 50대 아저씨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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