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산소통 들고 확진 임신부에 달려간 의사…길거리 출산 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달 15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새봄산부인과의원 조용호(53·사진) 원장에 보건소 직원이 다급히 전화를 걸어왔다. 이 병원에 다니던 만삭의 A씨가 코로나19에 확진됐는데 진통을 느껴 분만할 병원을 수소문했지만 갈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출산이 임박한 A씨는 구급차에서 아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진통 간격은 5분에서 3분으로 점점 줄었고 수화기 너머 보호자는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호소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119 구급대원과 의료진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119 구급대원과 의료진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초산이 아닌 데다 진통 주기가 짧아 금방 아이가 나올 수 있는 응급 상황이라 생각했어요.”
상황이 급한 데다 A씨의 첫째도 받았던 터라 조 원장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염 우려 때문에 다른 산모와 신생아가 있는 병원으로 오라는 말은 선뜻 나오지 않았다. 고민하던 조 원장은 보건소에 “분만할 공간만 만들어주면 가겠다”고 했다. 이어 간호사 1명과 함께 서둘러 채비했다. 보건소에는 산모를 위해 임시 분만실을 따뜻하게 해달라고 당부하고 의료용 가위와 배꼽 폐색기, 태아 심장 박동을 측정하는 도플러, 신생아 바구니 등 분만에 필요한 도구를 챙겼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5㎏짜리 산소통을 들고 보건소로 달려갔다.

조 원장이 보건소에 도착해서 방호복을 입고 나니 구급차가 도착했다. 준비된 침대에 소독포를 깔고 산모를 옮겼다. 보건소 간호사와 임상병리실장도 분만 과정을 도왔다. 조 원장은 “다행히 산모 상태가 괜찮았다”며 “1시간 정도 뒤 2.6㎏ 정도의 건강한 아이를 자연 분만으로 낳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출산 직후 A씨는 구미 한 대학병원 확진자 병상으로 옮겨졌고 아이는 안전하게 가족 품에 안겼다. 퇴원 후 A씨는 건강한 모습으로 조 원장을 찾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경북 구미시에서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임신부의 분만을 보건소에서 도와 화제가 된 조용호 새봄산부인과원장. 사진 본인 제공

경북 구미시에서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임신부의 분만을 보건소에서 도와 화제가 된 조용호 새봄산부인과원장. 사진 본인 제공

20년 경력의 베테랑인 조 원장은 “내 환자니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고, 보건소의 적극적 협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감염이나 의료사고를 걱정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잠깐 그런 생각도 스쳤지만 ‘길거리 출산’ 만큼은 막아야겠단 생각이었다”고만 했다.

이를 두고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훈장 줘야 할 모범 사례”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A씨 같은 임신부 확진자도 크게 늘고 있지만 이들을 받아 줄 특수 분만 병상이 모자라 곤란을 겪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에도 경기도의 확진 산모가 수백㎞ 떨어진 전북 남원으로 헬기를 타고 가 분만을 하기도 했다. 한 확진 임신부는 7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임신 38주차인데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서 “다니던 산부인과에서는 격리 해제 3일 이후부터 진료할 수 있고 1주일 이후 출산이 가능하다더라”며 난감해했다.

서울 시내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 뉴스1

정부는 분만이 임박하면 보건소로부터 병상을 배정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보건소 업무 폭주에 전화 연결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게 산모들의 얘기다.

현재 임신부용 특수 분만 병상은 수도권 57개, 강원 1개, 충청 7개 등 160개에 그친다. 부산처럼 한 곳도 없는 지역도 있다. 정부는 다음 주까지 분만 병상을 250여개로 늘리는 한편 8일에는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분만하는 경우 300%의 가산 수가를 얹어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 개원의(산부인과)는 “코로나 산모를 받겠다는 순간, 기존에 오던 임신부들이 발을 끊을 것”이라며 “낙인 효과 때문에 처음부터 환자를 새로 찾아야 하는데 500%를 줘도 큰 혜택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경북 구미시에서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임신부의 분만을 보건소에서 도와 화제가 된 조용호 새봄산부인과원장. 사진 본인 제공

경북 구미시에서 지난달 코로나19 확진 임신부의 분만을 보건소에서 도와 화제가 된 조용호 새봄산부인과원장. 사진 본인 제공

김동석 회장은 “혹시 모르니 격리 신생아실을 따로 둬야 하는데 공간도 문제고, 방호복을 입고 신생아를 돌봐야 할 별도 인력도 필요하다”면서 “산모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전담 병원에 이송해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고충을 전했다. 이어 "특정 병원을 통째로 비우고 확진 임신부들만 전담으로 받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 해당 병원이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게 충분히 보상하는 식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