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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1호 숭례문에도 쓰인 금강송 군락지 한때 산불 뚫려…아찔했던 순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소나무 1000만그루' 군락지

8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금강송 군락지 인근에 소방·산림당국이 방어선을 치고 산불이 군락지로 넘어오지 않도록 막고 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8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금강송 군락지 인근에 소방·산림당국이 방어선을 치고 산불이 군락지로 넘어오지 않도록 막고 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8일 오후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국립소광리산림생태관리센터. 수령 200년이 넘는 소나무 8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 금강송 군락지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평소 금강송 군락지 탐방객들이 찾던 건물 앞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소방차들로 가득 찼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현장에서 불길은 직접 보이지 않았다. 다만 동쪽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저 너머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매캐한 연기로 가려져 흐린 날씨처럼 보였고, 그 사이를 산불진화헬기 수십 대가 쉴 새 없이 오갔다.

당초 산림당국은 금강송 군락지 인근에 방어선을 쳐두고 산불이 넘어오지 않도록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산불이 진행되는 이른바 ‘불머리’는 점차 금강송 군락지로 시시각각 다가오면서 8일 새벽에는 군락지에 불똥이 날아들어 옮겨붙기도 했다. 당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지는 않았지만, 옮겨붙은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더구나 8일 오후에는 일부 화선(火線·불길의 둘레)이 금강송 군락지 범위 내로 침범하는 일까지 벌어져 산림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8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금강송 군락지 탐방로 초입 인근 산 너머에서 산불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김정석 기자

8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금강송 군락지 탐방로 초입 인근 산 너머에서 산불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김정석 기자

최병암 산림청장은 이날 산불현장지휘본부에서 브리핑을 열고 화선이 금강송 군락지를 침범한 사실을 알렸다. 최 청장은 “(8일) 오전에 금강송 군락지에 불똥이 튀어서 진화 중이고 큰 피해는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화선이 가까이 있었기에 그 불똥이 튄 것이었다”며 “정확한 시간은 확인해봐야 하지만 화선이 조금 넘어온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청장은 “아침부터 이 지역에 대한 진화작업을 집중하고 있었고, 초대형헬기 2대 등 헬기를 더 늘려 산불 확산 차단에 매진하고 있다”며 “금강송 군락지는 소나무가 우거지고 빽빽해 진화 작업이 어렵고 그만큼 진화대원들의 안전도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 청장은 브리핑 직후 산불현장을 점검하기 위해 지휘본부를 떠나 금강송 군락지로 떠났다. 이후 4시간여 만에 다시 돌아와 “금강송 군락지 진입 불길을 거의 진화했다”면서 “큰 피해는 없어 보이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는 조사해 봐야 한다”고 했다.

최병암 산림청장이 8일 오전 경북 울진군 죽변면 산불현장지휘본부에서 산불 상황 및 진화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산림청

최병암 산림청장이 8일 오전 경북 울진군 죽변면 산불현장지휘본부에서 산불 상황 및 진화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산림청

금강송 군락지를 지키기 위해 산림당국이 총력을 쏟는 것은 수령 500년이 넘는 보호수 세 그루를 비롯해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어서다. 이 중 문화재 복원용 금강송은 1200여 그루다. 금강송 군락지가 포함돼 있는 산림유전자보호림의 면적은 3705㏊에 이른다

금강송은 금강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강원 강릉·삼척, 경북 울진·봉화·영덕 등에 자생하고 있다. 금강산의 이름을 따 금강송(金剛松)으로 불리며 춘양목, 황장목, 안목송 등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곧고 균열이 적으며 아름다워 200년 이상 자란 금강송은 국보 1호인 숭례문 복원을 비롯해 각종 문화재 복원에 쓰인다. 소광리 금강송은 국내 소나무 가운데서도 재질이 특히 뛰어나 최고급 목재로 꼽는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조선 숙종 때 금강송을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됐다.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만드는 등 국가 대사가 있을 때만 소나무를 베어냈다. 1959년 정부는 이곳을 육종보호림으로 지정해 민간인 출입을 금지했다. 82년에는 체계적 관리와 후계목 육성을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고 현재도 연중 입산이 통제돼 예약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경북 울진군 산불 사흘째인 6일 오전 북면 두천리에서 한 주민이 자신의 집 마당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소나무에 물을 뿌리고 있다. 뉴스1

경북 울진군 산불 사흘째인 6일 오전 북면 두천리에서 한 주민이 자신의 집 마당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소나무에 물을 뿌리고 있다. 뉴스1

산림당국은 금강송 군락지로 산불이 확산되지 않도록 저지선을 만들고 헬기를 대량 동원해 이곳을 우선적으로 방어할 방침이다. 장기전에도 대비하고 있다. 최 청장은 “2000년 동해안 산불이 10일간 이어졌고 마지막 날 비가 오면서 진압됐다”며 “진화 시점을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비 예보가 있는 일요일) 이전에 주불을 끌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산림당국에 따르면 8일 오후 5시 현재 울진·삼척 산불영향구역은 1만8421㏊로 집계됐다. 축구장 2만5800개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산불은 동해 쪽에서 점차 서쪽 숲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헬기 82대와 인력 4554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주택 278채를 비롯한 시설물 421곳에 피해가 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 343명이 마을회관과 체육시설 등으로 대피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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