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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콩밭에"…선거구 획정 지연에 지방선거 후보들 노심초사

중앙일보

입력

“답답하고 한숨만 나오죠. 대선이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국회만 바라보고 있는 지방의원들 속은 타들어 갑니다. 서로 말은 못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 온 같은 정당 (광역)의원과 경선을 치러야 할지 모르고…, 지방이 없으면 중앙도 없다면서 실제로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6월 1일 치러지는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의원 정수가 감소할 위기에 처한 기초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난 1월 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있다. 연합뉴스

6월 1일 치러지는 전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의원 정수가 감소할 위기에 처한 기초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지난 1월 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있다. 연합뉴스

최근 충남지역 한 도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그간의 속내를 털어놨다. 지난달 중순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지만, 자신의 지역구에선 정작 등록한 (예비)후보는 한 명도 없다고 했다. 해당 의원의 지역구는 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2개의 선거구가 1개로 통합될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전국 17개 군(郡), 광역의원 축소 불가피

지방선거를 80여 일 앞둔 가운데 광역의원 정수가 감소할 위기에 놓인 전국 기초 지방자치단체장과 해당 지방의원들이 고심에 빠졌다. 인구가 적어 소멸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광역의원 수까지 줄어들면 지역간 불균형과 소외현상이 가속할 게 불을 보듯 뻔해서다.

지난 7일(24시)을 기준으로 충남지역 광역의원(도의원) 선거 38개 선거구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보자는 단 1명에 불과하다. 충북은 29개 선거구 가운데 예비후보 등록은 단 한 명도 없다. 강원도는 41개 선거구에서 6명, 경북은 54개 선거구에서 9명이 등록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난 1월 4일 김태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4일 김태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뉴스1

앞서 지난 2018년 6월 헌법재판서는 광역의원 인구 편차를 4대 1에서 3대 1로 바꾸라고 결정했다. 이 방식을 적용하면 인구가 적은 군(郡)은 현재 2명이 광역의원이 1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헌재의 결정 이후 선거구 획정과 공직선거법 개정은 지난해 12월 1일까지가 법정 시한이었지만 이미 석 달을 넘긴 상태다. 2018년 지방선거 때도 예비후보 등록일을 넘겨 선거구가 획정됐다.

헌재, 2018년 인구 편차 '3대 1' 변경 결정 

현재 충북 영동과 옥천, 경북 청도와 성주·울진, 강원 영월과 평창·정선, 경남 함안과 창녕·고성·거창, 전남 강진과 장흥 등이 감축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인구 5만명(2021년 10월 기준) 이하로 일부는 인구 4만명 붕괴를 앞둔 상태다.

충남은 서천과 금산에서 2석인 도의원이 각각 1석으로 줄어든다. 대신 서산시와 당진시의 광역의원이 현재 2석에서 3석으로 늘어난다. 이런 방안이 확정되면 충남지역 15개 시·군 가운데 서천과 금산을 비롯해 25%가 넘는 청양과 계룡 등 4개 시·군이 1명의 광역의원만을 보유하게 된다.

지난 1월 4일 극회를 찾은 노박래 서천군수가 농어촌지역 광역의원 선거구를 현행대로 유지해달라며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서천군]

지난 1월 4일 극회를 찾은 노박래 서천군수가 농어촌지역 광역의원 선거구를 현행대로 유지해달라며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서천군]

충남도의회 김석곤 의원(금산1)은 “앞으로는 시골(농어촌)에 살면 각종 혜택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며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를 치를 때마다 후보자 모두가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는 데 실상은 정반대”라고 강조했다.

기초단체장, "비인구적 요소 반영해달라" 호소 

사정이 이렇자 박세복 영동군수 등 충북과 충남·경북·경남지역 기초자치단체장 13명은 지난 1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찾아 정개특위 김태년 위원장(더불어민주당)에게 “행정구역과 면적 등 비인구적 요소를 고려해 지역 대표성이 반영된 선거구를 획정해달라”는 공동건의문과 주민 서명부를 전달했다.

이들은 김 위원장에게 “광역의원 수가 줄어들면 지역발전에 필요한 예산확보와 현안 해결이 어려워지고 지역소멸도 가속할 것”이라며 “정개특위는 농어촌 소멸 방지를 위해 광역의원 정수를 이전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13명은 지난 1월 4일 선거구 개편 때 비인구적 요소와 농어촌 특성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동건의문을 채택했다. 연합뉴스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13명은 지난 1월 4일 선거구 개편 때 비인구적 요소와 농어촌 특성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는 공동건의문을 채택했다. 연합뉴스

국회 정개특위는 광역의원 수가 줄어드는 지역의 상황을 고려, 정원을 늘리는 방법과 의원 수 감소대상 지역을 이번 지방선거에 한해서 특례를 적용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국회가 선거구를 어떻게 쪼개느냐에 따라 선거구가 더 생길 수도, 없어질 수도 있어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역 정치권 "정치 신인들 불리, 후보자 검증 어려워" 

충남도의회 전익현 부의장(서천1)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할 입장에서 출마할 선거구조차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며 “선거구가 1개로 통합되면 (같은 지역의) 오랜 정치적 동지와 경쟁을 벌이는 상황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와 지역 정치권에서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정치 신인들이 불리하고 유권자 입장에서도 자신이 속한 선거구에 대한 정보와 후보자를 검증할 시간이 줄어드는 폐해를 우려하고 있다. 이른바 ‘깜깜이 선거’를 치르게 됐다는 게 후보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시장·구청장선거와 시·도의원 선거의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지난 2월 18일 경기도 수원시팔달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예비후보자 등록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시장·구청장선거와 시·도의원 선거의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지난 2월 18일 경기도 수원시팔달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예비후보자 등록 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광역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방안은 헌재의 결정을 부정하는 것으로 국민적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며 “지방자치와 지방정치 발전, 지역균형발전 등을 모두 고려해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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