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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강풍에 헬기도 부족했다…동해안 태운 울창한 침엽수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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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북면 산불 발생 사흘째인 지난 6일 수시로 바뀌는 풍향과 강풍 및 연무로 산불이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인근까지 번지고 있다. 사진 산림청=뉴스1

경북 울진군 북면 산불 발생 사흘째인 지난 6일 수시로 바뀌는 풍향과 강풍 및 연무로 산불이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인근까지 번지고 있다. 사진 산림청=뉴스1

나흘째 계속된 강원·경북 지역 산불의 원인으로 울창한 침엽수림이 지목되고 있다. 겨울 가뭄에 바짝 마른 나무가 윗부분까지 타며 화염이 길어졌고, 불이 강풍을 타고 주변으로 번졌다는 분석이다.

강원·경북, 침엽수림 32~42% 달해 

7일 산림청의 ‘산림임업통계연보(2021)’에 따르면 침엽수는 이번 대형 산불이 난 경북·강원 지역 내 상당한 면적으로 분포해 있다. 경북 지역 내 침엽수림은 55만6885㏊로 전체의 41.8%에 달한다. 강원 지역은 43만5189㏊로 32%를 차지하고 있다. 침엽수림은 활엽수림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불에 취약하다는 게 산림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소나무 솔잎엔 기름성분이 20% 함유돼 있으며, 송진도 불에 잘 탄다. 특히 이번 화재는 나무 윗부분까지 타는 ‘수관화(樹冠火)’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관화란 나무의 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만을 태우며 빠르게 지나가는 산불을 말한다. 수관화로 화염이 빠르고 길어지면서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올해 겨울 가뭄에 국토가 메마른 것도 산불 대형화에 한몫했다. 올 1·2월 전국의 평균 강수량은 6.1㎜로 1973년 이후 가장 적다. 평년(52㎜) 대비 9분의 1 수준이다. 여기에 강풍도 잦았다. 보통 초속 15m의 바람이 불때 불씨는 2㎞까지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3월 주요산불 발생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3월 주요산불 발생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가뭄, 강풍에 침엽수림 ‘불 쏘시개’

‘가뭄’에 ‘강풍’, ‘울창한 침엽수림’까지 더해지면서 산불이 삽시간에 번졌다는 분석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7일 오전 11시 기준 산불 피해면적은 1만9553㏊에 달한다. 축구장(0.714㏊) 2만7385개를 합친 면적이다.

전문가들은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침엽수림의 ‘밀도 줄이기’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연구과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의 간격을 6m 이상 확보하게 되면, 소나무숲에서 불이 잘 번지지 않는다”며 “밀도를 줄이는 솎아베기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숲의 밀도를 줄이는 방식과 함께 ‘내화수림’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내화수림 조성은 애초부터 불에 강한 수종을 식재해 산불 확산 가능성을 낮추는 작업이다. 산불의 특성을 반영해 6부 능선부터 9부 능선까지 띠 형태로 산불에 강한 나무를 심어 숲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대표적인 내화수목은 굴참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꼽힌다. 각종 주요시설물 주변에 대한 조경 시에는 최대 10m 이상의 완충지대를 조성한 뒤 내화수를 심는 방식 등도 거론된다.

동해안 산불 피해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동해안 산불 피해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곳곳서 산불…산림헬기 분산 역부족  

이번 산불 사태에는 고질적인 산림헬기 부족 문제도 제기됐다. 산불 진화에 가장 효과적인 산림헬기가 부족해 곳곳에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산림청이 보유 중인 산림헬기는 47대다. 일반적으로 산불의 골든타임은 30~50분이며, 지자체 진화헬기가 30분 내 도착해 초동대처에 나서면 헬기가 도착하는 시스템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산림헬기가 최소 51대가 돼야 초기 진화율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산림헬기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산불 현장에 투입되면서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강원 지역에 산불이 발생한지 나흘째를 맞는 7일 강원 삼척시 원덕읍 사곡리 인근 야산에 발생한 산불이 송전탑 아래까지 타올라 소방 헬기가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스1

강원 지역에 산불이 발생한지 나흘째를 맞는 7일 강원 삼척시 원덕읍 사곡리 인근 야산에 발생한 산불이 송전탑 아래까지 타올라 소방 헬기가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스1

기후위기 가속화…산불 시계 빨라졌나 

일각에선 올해 전국적인 산불을 놓고 “산불 시계가 빨라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연간 산불의 27.1%는 3월에 집중됐다. 하지만 올해엔 연초부터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 1~2월 전국 발생 산불은 22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배 늘었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강원 강릉·동해와 경북 울진·강원 삼척 지역 산불을 ‘기후재난’의 증거로 주장하고 있다. 녹색연합은 지난 6일 “울진·삼척 산불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적설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발생했다”며 “이는 기후위기 재난”이라고 주장했다. 기후위기에 산불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올해 사례만으로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건조한 날씨 속에서 논·밭두렁 태우기 등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전해철 중대본부장은 7일 담화문을 통해 “산림과 가까운 곳에서 허가 없이 논, 밭두렁을 태우거나 각종 쓰레기를 소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3월 화재 중 논·밭두렁 소각이 25.6%, 쓰레기 소각이 20.2% 등 소각으로 인한 산불이 45.8%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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