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영의 인정불가

하버드, 정의, 그리고 능력에 대한 착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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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광채와 정의의 광채가 결합하여 한국인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론을 말하는 겁니다. 특히 공부하지 않는 보수는 샌델의 정의를 공정이나 운(運) 평등주의로 왜곡해 버립니다. 신재용 교수의 칼럼은 첫 문장부터 샌델의 주장을 심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45만명의 수능 응시자 중 3500명의 서울대 신입생을 제비로 뽑아야 한다고 샌델이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의 289쪽에 하버드나 스탠퍼드의 지원자 중 ‘능력’이 되는 학생들을 일단 ‘선별’한 다음 ‘제비뽑기’를 하자고 주장합니다. 전체 수험생 중 제비뽑기를 하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은 ‘능력주의’와 ‘운 평등주의’를 결합한 방안입니다. 칼럼이 주장하는 가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에 전체 내용은 산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정' 이슈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는 대학입시다. 매년 수십만 수험생과 학부모가 '전쟁'을 치른다. 지난해 11월 사설학원이 주최한 입시설명회 위엔 코로나 와중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중앙포토]

'공정' 이슈에서 가장 민감한 분야는 대학입시다. 매년 수십만 수험생과 학부모가 '전쟁'을 치른다. 지난해 11월 사설학원이 주최한 입시설명회 위엔 코로나 와중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중앙포토]

한국인들 대부분, 특히 보수는 정의를 공정으로 왜곡해 버립니다. 샌델은 공정이 차가운 계산의 문제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며 공정 대신 공동선에 기반하여 정의론을 펼칩니다. 현대의 정의론은 존 롤스가 활짝 문을 열었고 로버트 노직, 마이클 월저, 로널드 드워킨 등의 대가들에 의해 꽤나 복잡하고 다양한 담론으로 발전했습니다. 샌델은 정의를 행복(공리주의), 자유(자유주의), 미덕(공동체주의)의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누고 ‘정의의 다양성’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샌델은 공정보다는 공동선에 기반하여 정의를 개선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공정은 정의의 일부분이며 샌델은 공정으로만 정의가 성취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신 교수는 샌델 교수의 복잡한 정의론을 교육의 운 평등주의로 환원시켜 ‘능력’을 ‘운빨’로 왜곡하고 진보 교육계의 내로남불 비판으로 확장합니다. 샌델 교수의 아들도 옥스퍼드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하버드에서 가르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샌델의 내로남불을 공격합니다. 또 이 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 사태와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겨냥하며 문재인 정권의 비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진보 교육계와 문재인 정권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은 인정합니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최대 쟁점은 정시·수시 논쟁이었고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는 교육 지옥을 해체하라는 촛불 혁명의 요구를 저버리는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 정권은 지금 망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렇다고 보수나 국민의힘 세력이 왜곡된 능력주의나 한국 교육문제에 대한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은 교육 지옥의 원인인 대학서열을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 우리의 사회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육개혁에 대한 일말의 의지도 없고 ‘5년 동안 교육 지옥에서 또 살자’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교육 지옥은 계속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교육공약에도 대학서열 해소방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능력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능력을 생각할 때 보통 두 가지 종류의 오류를 저지릅니다. 첫째, 능력을 인간의 능력으로 보는 오류입니다. 사실 한국인의 평균 지능지수(IQ)는 미국인의 평균 IQ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노벨상이 한 명도 없을까요? 그것은 대학과 과학기술의 인프라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곧 능력이란 인간 능력과 인프라 능력의 결합입니다. 미국대학이 한국대학을 압도하는 것은 인프라 격차 때문이며 이것은 서울대가 지방대를 압도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입니다.
둘째, 능력은 단일하다는 오류입니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 수십 년 전에 밝혔듯이 인간의 능력은 다양하고 단일한 척도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한국식 줄 세우기 교육은 인간의 능력은 단일하다고 가정하고 이를 단일한 척도로 측정하려는 잘못된 제도입니다. 능력은 교육 인프라와 결합한 것이며 다양하며 창조적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능력은 다양한 탁월성이자 성숙한 개별성입니다. 한국식 대학서열체제와 왜곡된 시험능력주의는 다양하고 탁월한 능력 개발을 방해합니다. 창조의 끝판왕인 노벨상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한국인에게 서울대가 아버지라면 하버드는 신입니다. 하버드조차 한때는 지방대였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19세기 중반 하버드의 교육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고 보스턴 시민들은 자식들을 하버드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믿기지 않는 일이죠.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독일대학들이 세계 최고였고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대학들은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지방대들이었습니다. 독일로 유학 간 미국 유학생만 1만 명에 달했습니다.
하버드의 조지 티크너 교수는 자신이 유학한 독일의 괴팅겐 대학을 모델로 1825년에 하버드 개혁안을 제출합니다. 하지만 하버드의 개혁은 40년 후인 1869년부터 시작합니다. 망하기 일보 직전에야 바뀌었습니다. 화학자 찰스 엘리엇은 독일 대학과 산업 등을 유럽에 직접 가서 2년 동안 연구하고 미국에 돌아와 미국 대학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육계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하버드 이사회는 35세의 엘리엇을 하버드 최연소 총장에 임명하는 파격을 단행합니다. 엘리엇은 그 이후 40년 동안 최장수 하버드 총장을 맡으며 지방대인 하버드를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시킵니다. 2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독일대학과 산업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미국대학에 드디어 당도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대학들은 망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근시안적이고 왜곡된 시험능력주의에 사로잡혀 교육개혁의 방향타를 잘못 잡고 있습니다. 대학이라는 인프라 권력의 강화 없이는 개인의 능력은 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전역에는 서울대 수준 이상의 대학이 60여 개 있고 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여 발전했습니다.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전국에 세워 지방소멸을 막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수 있게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교육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하버드의 광채에 눈을 부릅뜨고 교육의 내로남불 프레임을 넘어서야 합니다. 교육과의 과열된 관계에서 빠져나와 대학의 역사를 차갑게 바라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