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재용이 고발한다

샌델 추종 진보진영, 서울대 신입생 제비 뽑으면 공정한 겁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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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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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온라인 대담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배경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비판하는 청년들의 집회 모습(2020년) 그래픽=김현서 기자

지난해 12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온라인 대담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배경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비판하는 청년들의 집회 모습(2020년) 그래픽=김현서 기자

내년부터 서울대 신입생 3500명을 45만명의 수능 응시자 중에서 제비 뽑아 선발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라는 서울대니까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넘은 응시자 중에서 제비를 뽑으면요?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대학입시를 둘러싼 우리나라의 비뚤어진 교육열은 좀 식게 될까요? 진보교육계가 우려하는 현행 대입제도하의 교육 불평등이나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가 해결될까요? 한번 좋은 대학 들어가면 평생이 보장되는, 시험성적에 따른 능력주의가 해소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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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밀리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와 2020년 베스트셀러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이며 하버드 브랜드 대표 주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에 목마른 한국인 사이에서 스타가 되었습니다. 2012년 방한 당시 연세대 노천극장 강연에 1만 5000명의 청중이 운집해 인산인해를 이뤘던 기억이 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도 공정·성장에 관해 화상 대담도 했었죠. 한국에서 공정 마케팅의 흥행보증수표로서 샌델 교수만 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흡사 전 세계인이 BTS에 열광하듯 한국인은 샌델 교수와 그의 저서에 열광합니다. 같은 학자로서 부러울 따름입니다.

샌델 내세워 능력주의 때리기 

최근 MZ세대와 공정, 그리고 보상에 대한 책 『공정한 보상』을 집필하면서 『공정하다는 착각 (The Tyranny of Merit)』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제기한 능력주의 비판이 훨씬 정교해졌더군요. 한국 독자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고 한국사회의 능력주의 때리기는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9년 9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울대생들의 집회. [뉴스1]

2019년 9월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울대생들의 집회. [뉴스1]

우리 모두 성과를 내고 싶어하고 성공을 바랍니다. 성과는 노력과 재능과 운(運)으로, 성공은 시장이 특정 성과에 부여하는 경제적 가치로 결정됩니다. 성과와 성공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 중에서 우리가 후천적으로 바꿀 수 있는 통제 가능한 것이 뭘까요? 아마도 노력 정도? 지능이나 재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죠. 그러면 ‘지능, 재능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는 과정’인 노력은 과연 후천적으로 통제 가능할까요? 샌델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노력을 위해 필요한 강한 의지, 고도로 집중할 수 있는 능력과 끈기마저도 물려받은 유전자와 주어진 환경의 조합이 이뤄낸 결과라고 말합니다. 거기다가 ‘운’은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죄 없는 사람들이 받는 ‘고지’처럼 랜덤입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샌델 교수 말이 모두 맞는다면 성과를 좌우하는 모든 요소가 소위 ‘운빨’이 되는 겁니다. 신분이나 능력이나 다 우연으로 타고나는 거니까 능력에 의한 차등이 세습신분에 의한 차등보다 더 공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죠. 게다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노력과 재능과 운의 멋진 콜라보로 탁월한 성과를 낸다 해도 마켓(시장)이 그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후하게 보상하지 않으면 경제적 성공을 이루기는 힘듭니다. 입시 일타강사들의 연봉은 보통 100억원이 넘는데 지난해 7월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하에 쌓인 2300톤이나 되는 생활 쓰레기를 치우는 데 드는 비용은 고작 3억 5000만원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운빨인데 승자로 하여금 어깨에 ‘뽕’과 막대한 부를, 패자의 마음속엔 ‘열패감’과 얇은 주머니만 남기는 능력주의는 애당초 공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죠. 게다가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기까지 하니까요.

대안이 명문대 제비뽑기? 

좋은 지적입니다. 그런데 능력주의를 대체할 현실적인 대안은 뭘까요? 승자가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요? 이를 위해 일정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지원자를 대상으로 제비를 뽑아서 명문대 입학자격을 부여하자고요?

지난해 3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강남구 LH공사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였다. 이들은 LH에 "땅 투기를 중단하고 대학 공공기숙사에 투자하라"고 주장했다. [뉴스1]

지난해 3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강남구 LH공사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였다. 이들은 LH에 "땅 투기를 중단하고 대학 공공기숙사에 투자하라"고 주장했다. [뉴스1]

유례없는 저성장시대, 노동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다락같이 오르는 부동산 가격 속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불안합니다. 커지는 불안감과 불확실성, 미래에 대한 비관 속에서 MZ세대에게는 예측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기성세대는 이들을 보고 공정에 민감한 세대라고 이름 붙여주었습니다. 이들은 시험 기반의 능력주의보다 더 정확하게 노력 대비 보상을 예측할 수 있는 제도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MZ세대가 부당한 부모 찬스를 혐오하며 현 정부의 사회통합을 위한 약자에 대한 배려 정책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입니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교환비율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대표되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무원칙한 정규직 전면 전환은 그야말로 무임승차이자 불공정의 극치이며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한마디로 상황이 너무 엄중해서 이들은 다른 이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죠.

과거시험으로 시작해서 대학입학시험, 기업공채시험, 각종 고시, 신춘문예 등단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시험을 통한 능력주의의 기원은 유구합니다. 능력주의 비판자들은 이를 시험을 통한 지대(rent) 추구라고 몰아붙이죠. 시험 한방으로 인생 모든 게 결정된다는 불합리한 시스템이란 건데 한국의 MZ세대가 이 문제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죠. 그런데도 능력주의나 성과주의를 한국의 MZ 세대가 공정성의 필요조건으로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요? 아마도 능력주의가 그 자체로 완벽하다기보다는 과거의 세습신분주의나 연공주의보다는 훨씬 나은 차선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예요.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거죠.

타고난 재능도 불공정한데 

선발과 채용·성과급 등이 노력·능력·실력·성과와 같은 엇비슷해 보이는 것들 가운데 과연 무엇에 근거해야 하는가를 경제·경영학자들은 오랫동안 연구해 왔어요. 샌델 교수나 그를 추종하는 분들은 이런 방대한 연구성과도 한번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저는 운 효과를 필터링하는 것은 대찬성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시스템을 공정하다고 느끼니까요. 하지만 공정을 내세워 타고난 지능이나 재능까지 필터링하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샌델 교수의 주장처럼 노력하겠다는 결심과 의지까지 타고난 것일 수 있지만 태도와 과정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 개인의 노력까지 시비를 걸 수는 없죠.

대치동 사교육 효과는 간접적인 부모 찬스 맞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학업성적에서 이 효과를 필터링하면 좋지요. 그런데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샌델 책에 추천사를 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님 같은 진보교육계에서 주장하듯 "학업성적에서 이 부분만 필터링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교육현장에서 아예 능력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금 젊은이들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할 수 없으니 아예 운동장을 해체하자는 격이니까요.

미국판 '김주영 선생님' 캘리포니아의 입시 컨설턴트 윌리엄 싱어(왼쪽)와 JTBC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입시컨설트 김주영 역할을 한 배우 김서형. [AP=연합뉴스]

미국판 '김주영 선생님' 캘리포니아의 입시 컨설턴트 윌리엄 싱어(왼쪽)와 JTBC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입시컨설트 김주영 역할을 한 배우 김서형. [AP=연합뉴스]

재미있는 건 말이죠. 2019년 3월 미국의 대형 대학입시 스캔들에 연루된 사람들은 소위 진보 특권층이었습니다. 능력주의를 비판하고 평등을 강조하는 한국의 진보지식인들 역시 자식을 한국 능력주의의 상징과 같은 특목고와 SKY에 보냅니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샌델 교수의 아들 애덤 샌델도 아버지가 밟은 길 그대로 능력주의의 전당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하버드에서 강의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부모찬스도 아니고 기계적인 평등도 아닌 노력과 능력에 비례한 차등분배입니다. 선발 및 채용 경쟁에서 시험기반의 능력주의를 선호하는 MZ세대의 공정성 인식은 진보교육계보다는 대치동 엄마에 가깝습니다. 능력주의가 지대추구라고요? 시험기반 능력주의가 통하는 건 대학입시와 직업선택, 즉 근로소득을 결정할 뿐입니다.

근로소득의 비중이 줄어든 지금 시험 한방으로 평생 편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파이어족과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MZ세대들은 이제 근로소득에 큰 관심이 없고 능력주의 논쟁도 그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국내 유력 정치인들은 샌델의 공정 이미지만 소비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이런 고민을 해온 우리 학자들과의 열띤 토론을 하면 어떨까 제안합니다.

[김종영의 인정불가]하버드, 정의, 그리고 능력에 대한 착각

공정한 성과와 보상에 대한 서울대 신재용 교수의 글에 대해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가 반박 글을 보내왔습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 신재용 교수 칼럼 하단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