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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는 돈풍년, 대학은 돈가뭄…인재 언제 키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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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수요·공급 어긋난 교육시장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나라 교육산업은 불황을 모른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사교육비 조사에 의하면 2019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1조원 가까이 된다. 초중고 학생 4명 중 3명은 사교육을 받았다. 한국노동패널조사 자료를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62만원을 넘어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전년도보다 3% 가까이 증가했다. 심지어 원하는 일자리를 쉽사리 얻지 못하는 대학생들도 취업 사교육을 받고 있다.

‘단기 테스트’ 수능에 힘 쏟는 꼴
대학 입학률 최고, 취업률은 최저
학생선발·교과운영 대학에 넘겨
기업들에 필요한 인력 길러내야


일선 학교마다 예산 쓰기 경쟁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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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모들은 영유아교육에도 열심이다. 우리나라 3세 미만 아동의 영유아교육 참여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2배 이상 높다.

초중고는 돈이 넘쳐 난다. 배정된 예산을 다 쓰지 못하는 학교에서는 ‘예산 더 쓰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짤(짧은 동영상)’을 만들면 15만원, 팔씨름 우승 반에 10만원을 주고 있다. 내국세의 21%가 자동으로 투입되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덕에 학생 수는 주는데 예산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교육 종사자들도 호황의 혜택을 보고 있다. 수능 일타강사들이 백화점 VIP 고객 순위에서 연예인·운동선수들보다 앞선다.

초중고의 정규직 교원은 선망의 직업이다. 강력한 노조로 인해 처우, 직업의 안정성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노조의 압력으로 기간제 교원은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대상에서 빠졌다. 근무시간에서 행정업무에 소요되는 시간의 비율은 OECD 평균보다 낮으나 교사가 행정업무를 하지 않도록 법에 정해 달라고 노조는 요구하고 있다.

모든 교육기관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로 벚꽃 피는 순으로 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일부 수도권 대학은 교직원 급여를 삭감하고 있다. 10년 이상 동결된 등록금, 강사법 시행 등에 따른 재정난으로 교육투자 비용을 줄이는 등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으며, 대학들은 정부의 대학지원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

실업계 고교 홀대 위험 수준

급감하는 학령인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급감하는 학령인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고교생 16%가 다니는 실업계 고교도 홀대를 받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취업률이 급감하는 와중에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가 반복되면서 취업에 중요한 현장실습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습교육이 많은 직업교육은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로 교육의 질이 담보되고 있지 않으나 사회적 관심은 없고 정부도 실효성이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을 시장으로 이해하면 제품시장이며 생산요소 시장인 교육 시장과 생산(육성)된 제품(인적자원)이 활용되는 노동시장의 연계가 중요하다. 교육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제대로 된 인적자원을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면 개인은 실업, 기업은 구인난에 이어 과다한 교육훈련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국가도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다.

대학 진학자 등을 제외한 2021년 실업계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55%에 그친다. 전년보다 5%포인트 가까이 늘어났지만 10명 중 3명은 1년 이내 퇴사한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2020년 대졸자 취업률은 65%로 정부가 취업률 통계치를 작성한 이후 최저치다.

중소기업에서는 구인난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더 들여와야 한다고 아우성이고, 식당 등 소상공인은 아르바이트할 청년을 못 구해 가게를 접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청년 중 일자리가 없으나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고 있는 ‘니트(NEET)’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다.

획일화한 대학 구조조정

중위권 맴도는 교육분야 국가경쟁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위권 맴도는 교육분야 국가경쟁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인적자원의 수요자인 기업이 평가하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초중등 교육과 대학교육의 경쟁사회에 부합하는 정도는 국제경영연구원(IMD)의 평가에 참여한 63개국(2020년 기준) 중 각각 44위, 48위이다. 산업계의 요구에 부합하는 경영 교육은 48위, 기업요구에 부합하는 언어능력은 38위다.

사회 전체로 교육 시장과 노동 시장의 단절이 고착화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다. 학령인구 감소가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 예상됐는데, 대학설립 준칙주의의 도입으로 새로운 대학들이 지방을 중심으로 생겼다. 이제는 정부 주도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부적합한 획일화된 기준으로 대학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구조적으로 부족하게 돼 있는데 반값 등록금으로 대학 가는 것을 부추기고 있다.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얼마 안 되는 돈을 주면서 취업 준비를 지원하고 있다.

노동개혁 병행해야 ‘개천의 용’ 나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88년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연봉 200억원 가까운 수능 일타강사가 진단한 대로 ‘단기 테스트’인 수학능력시험에 모든 초중고 학생이 매몰돼 있다. 수시 비중도 줄어들고 자사고, 특목고가 없어진다고 하니 학부모와 학생은 수능 준비를 더욱 열심히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한다.

경쟁이 불가피한 교육 시장에서의 경쟁 구도는 시장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육 시장의 공급자인 학교가 학생선발, 교육 과정의 운영 등을 주도해야 한다.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권이 넓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데, 정부가 설립 목적이 있는 사학을 정치 이념이나 사회 여론에 따리 단죄하고 옥죄는 일부터 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경쟁의 선순환 구조가 생긴다.

대학 진학률 70%의 사회에서는 교육만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를 다시 열 수는 없다. 노동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블라인드 채용’ 등 단편적인 대안보다 열린 노동시장을 구축해 학력과는 무관하게 역량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아야 한다. 교육개혁을 통해 사회 불평등 해소 등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지난 60여년간의 실험과 경험으로 입증됐다. 글로벌 무한경쟁, 4차 산업혁명 전환기에 교육의 일차적인 목표는 경쟁력이 있는 인적자원의 양성이다. 불평등·소외 등 사회문제는 조세재정, 고용 노동정책으로 해결하는 대안이 열려있다.

학생은 주는데 교육교부금은 계속 늘어

2020년 기준 교육교부금은 54조6000억원이다. 회계 집행 우수학교를 선정해 예산 활용을 독려하고 있지만, 전국 교육청에서 불용으로 처리되는 예산이 연간 2조원 가까이 된다.

국가재정운용기획단은 현행 제도가 유지되면 교육교부금은 2030년 80조원, 2040년 106조2000억원, 2060년 164조5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한다. 학령인구는 2020년 546만 명에서, 2030년 426만 명, 2040년 402만 명, 2060년 302만 명으로 줄어든다. 현 제도가 유지되면 학령인구 1인당 교부금은 2020년 1000만원에서 2060년 5440만원으로 5.4배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교부금은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당 학생 수를 OECD 국가 평균으로 가정하면 2040년 60조3000억원, 2066년 80조9000억원으로, 주요 20개국(G20)의 상위수준으로 가정하면 2040년 65조8000억원, 2066년 88조3000억원으로 증가한다. G20 기준으로 보면 현 제도가 유지될 때 과다 지급되는 교육교부금은 2030년 26조8000억원, 2040년 40조4000억원, 2060년 76조1000억원이 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2022년 1000조원을 넘어서 2030년 1820조원, 2040년 2906조원, 2060년 5415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내국세에서 교육교부금의 비율은 20.79%인데, 2022년 지방소비세율 인상으로 교육교부금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여당에서는 이를 보전하기 위해 교부금 비율은 0.15% 포인트 인상해 20.94%로 올리자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정부의 반대로 현재 보류된 상태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학생 1인당 공교육비 지출은 OECD 평균 밑이다. 교육재정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교육 개혁의 필요성과 인재 육성 방안을 담은 '한국 교육의 진로'.

우리나라 교육 개혁의 필요성과 인재 육성 방안을 담은 '한국 교육의 진로'.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