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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패스도 결국 중단…논란·갈등에 방역 고삐 속속 해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8일 오후 서울의 한 식당 입구에 식당 관계자가 오는 3월 1일부터 시행되는 방역패스 적용 일시 중단 관련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 뉴스1.

28일 오후 서울의 한 식당 입구에 식당 관계자가 오는 3월 1일부터 시행되는 방역패스 적용 일시 중단 관련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 뉴스1.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시행 4개월 만에 중단된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특성을 고려한 방역체계 개편, 연령별·지역별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해 식당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11종의 방역패스 적용을 일시 중단한다”고 말했다.

시행 120일만에 사실상 폐지

이로써 다음 달 1일부터 방역패스 확인을 위해 QR코드를 찍지 않아도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방역 당국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방역패스 제도를 더는 시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일시 중단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이다. 당초 4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청소년 방역패스 시행도 없던 일이 됐다. 보건소의 음성확인서 발급은 전면 중단된다.

나흘 만에 바뀐 방역패스 결정…'사회적 논란' 의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8일 방역패스 중단 결정을 발표하며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①방역 정책의 일관성 ②보건소 업무 부담 가중 ③방역패스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다.

먼저 방역 체계가 '확진자 규모 억제'보다 '고위험군 집중 관리' 중심으로 바뀌면서 방역패스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봤다. 예방 접종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단계에서 한정된 자원을 위중증·사망을 줄이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대본에 따르면, 현재 보건소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평균 25만 건가량의 신속항원검사 중 55.5%가 방역패스용 음성확인서 발급을 위해 이뤄진다. 박향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28일 브리핑에서 "한정된 보건소 자원을 고위험군의 검사와 확진자 관리에 집중하기 위해서 (방역패스) 음성확인서 발급을 중단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방역패스 중단으로 기존 음성확인서 발급 업무 등에 투입되었던 보건소 인력들은 고위험군에 대한 신속한 검사 그리고 재택치료 관리에 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4개월간 시행됐던 핵심 방역 조치를 갑작스럽게 중단시킨 데는 방역패스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어느 정도 (유행이) 안정화되면 방역패스를 전반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면서도 "전국적 중단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정반대의 발표를 내놓았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28일 "언론·정치권 등에서 계속 방역패스 필요성에 대한 논란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며 "이 논란들로 인해 (방역패스 정책의) 사회적 연대가 약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복지부·질병관리청에선 막판까지 방역패스 중단에 반대했다. 정점까지는 기존 조치를 유지하자고 주장했지만 결국 밀렸다"라고 결정 과정을 전했다.

함께사는사교육연합과 학생학부모인권연대 관계자들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인천·경기지역 청소년 대상 방역패스 해제 촉구 행정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함께사는사교육연합과 학생학부모인권연대 관계자들이 9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인천·경기지역 청소년 대상 방역패스 해제 촉구 행정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높은 백신접종률에도 당초 정부가 방역패스를 들고 나온 주요 근거는 미접종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용대상(청소년 등)과 적용시설(백화점·마트·독서실 등)을 늘려가려는 정부와 "백신 접종을 강제한다"며 반발하는 이들 간에 행정 소송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졌다. 이어 전국 법원에서 지역별로 방역패스 효력 정지 결정이 잇따라 나오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지난 23일 기준 진행중인 방역패스 관련 소송은 총 18건이다. 지난달 서울을 시작으로, 인천, 청주, 대전 부산 등에서 잇따라 효력 정지 결정이 나왔다.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60세 미만의 식당·카페 방역패스 효력 정지 결정이 나온 바 있다. 이때마다 정부는 즉시항고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여야 대선후보들까지 폐지 여론에 힘을 실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방역패스는 어느 정도 조절이 되는 유행에서야 의미가 있다. 이런(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문제만 야기한다"고 말했다.

정점 앞두고 방역 해제…"브레이크 고장 났는데 엑셀 밟는 꼴"

방역패스와 함께 다음달부터는 밀접접촉자 자가격리·의무 검사 등 K-방역의 대표적인 조치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언젠가는 없어질 조치지만 유행 규모 정점 전에, 그것도 악화일로일 때 한꺼번에 풀어버리는데 대해 방역 전문가들의 우려도 나온다. 확진자 폭증이 위중증, 사망자 증가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만큼 피해를 줄이려면 유행 규모를 완만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28일 질병관리청은 향후 확진자 규모를 '다음 달 초부터 중순까지, 하루 최대 18만 명~35만 명대'로 폭넓게 예측했다.

정재훈 가천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2년간 유지해 온 방역을 (정점까지) 1~2주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꺼번에 풀어버렸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다음 달 1일부터) 동거인 자가격리 의무까지 완화된다면 백신 접종, 사회적 거리 두기 외에는 거의 (방역에) 영향 주는 조치들이 남지 않게 된다"면서 "개별 조치들이 하나씩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지만, 전체로 모이면 위험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중환자 수의 정점은 (전체 확진자 규모 정점보다) 늦게 찾아와서 더 길게 이어진다"면서 "(남아 있는) 중환자 병상, 먹는 치료제, 백신 접종 중환자 예방 효과 등이 잘 작동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는 선별적으로 유지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그동안 문제가 됐던 것은 기본권, 즉 의식주 중 '식'에 해당하는 식당, 카페 등 필수 시설"이라면서 "유흥시설과 고위험시설에 대한 방역패스는 그대로 뒀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 어느 나라도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폭증하는데 방역 조치를 완화하지 않는다"며 "브레이크 고장 났는데 엑셀 밟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114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김 교수는 오미크론의 중증화율이 낮아도 정점을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절대적인 확진자 규모를 줄여야 위중증·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및 사망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19 위중증 환자 및 사망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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