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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3·1절, 안중근 의사의 전쟁과 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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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며칠 후면 103주년 3·1절을 맞는 가운데, 우리는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약소국의 비애를 지켜보고 있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나라지만, 우크라이나의 자주 평화는 강대국 파워 게임 속에서 바람 앞 촛불 신세이다.

전쟁과 평화라는 인간 삶의 근본 문제 앞에서, 필자는 우리 역사를 돌아본다. 마침 며칠 앞으로 다가온 3·1절은 대한 독립운동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남기신 전쟁과 평화의 사상을 돌아보기 좋은 시점이다.

우크라이나 자주평화의 위기
독립영웅, 강대국 권력정치 비판
“국제법, 중립이 평화 못 지켜”
안 의사 통찰 다시 돌아봐야

물론 우리 사회 평범한 이웃들은 우선 본능적인 삶의 대응에 나서고 있을 것이다. 더 높이 치솟을게 뻔한 장바구니 물가가 첫 번째 걱정일 것이다. 천연가스, 에너지 시장의 위기, 곡물 시장의 위기를 정교하게 예측하지 않더라도 생활인의 감각은 다가오는 충격을 예감한다.

독립영웅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의 하얼빈 거사 이후, 뤼순 감옥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남겨놓았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뤼순 감옥에서 안 의사는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 『동양평화론』은 10여 쪽 안팎의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는 20세기 초 강대국 권력정치 속의 자주와 독립, 국가간 전쟁과 평화에 대한 빛나는 통찰이 가득하다.

우리의 기억은 독립투쟁에 몸을 던진 영웅으로서의 안중근 의사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는 그 고결한 정신의 첫째 이미지일 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동양평화론』, 뤼순 고등법원장과의 대화를 담은 『청취서』에는 국가들 간의 야만 상태로서의 20세기 제국주의, 서구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있다. 달리 말해, 안중근 사상의 두 번째 축은 “세계는 동서로 갈라지고 서로 경쟁하기를 밥 먹듯 하며… 날이면 날마다 무력만을 일삼는” 폭력과 무질서의 세계라는 현실주의 세계관이다.

안중근 사상의 각별함은 냉혹한 권력정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를 뛰어넘는 꿈을 꾼 데에 있다. 재판정에서 스스로를 대한독립 전쟁의 의병 참모중장(中將)으로 부르라고 의연히 요구했던 30세 청년은 전쟁이 없는 상태로서의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꿈꾸었던 이상주의자이기도 하였다. 평화의 꿈은 그저 막연하고 희미한 몽상이 아니었다. ‘동양평화회’, ‘공동은행’, ‘공동화폐’ ‘공동 군대’ 설립을 제시하는 실천적 비전이었다.

오늘의 우리는 안 의사가 목숨을 던져 구하려던 “인약(仁弱)의 나라”를 벗어난 지 오래다. 하지만 그의 전쟁과 평화관은 오늘날에도 무궁무진한 토론과 성찰의 바탕이 된다.

먼저 안 의사가 예리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인식했던 ‘폭력과 무질서의 세계’의 현대적 의미부터 돌아보자.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의 권력자들은 전통적인 사대교린 질서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고자 애처로운 혼란을 거듭했지만, 안 의사는 낡은 세계는 붕괴했다고 보았다.

이어서 서구의 열강들이 들여온 만국공법(국제법)의 시대가 열렸지만 “이른바 만국공법이니 엄정중립 등의 설은 최근 외교가의 교활한 술책이니 말할 것이 못된다.” 각 국가의 주권을 말하지만 그것은 “경쟁의 설(說)로서 동서양 육대주에 포연탄우가 그치는 날이 없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윽고 이웃 나라 일본은 “가장 가깝고 친했던 인약한 같은 종족인 한국을 억지로 탄압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요즘 말로 옮기자면, 경제사회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상호의존이 깊어지면, 이웃 나라들끼리 평화가 유지된다는 이른바 민주평화론은 허황된 이론인 셈이다.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지만, 신뢰 없는 겉치레 교류가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안중근 사상의 절정은 국가간 힘의 경쟁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평화를 구체적으로 꿈꾼 데에 있다. 『청취서』에서 안 의사는 “은행을 설립해 각 나라가 공유하는 화폐를 발행하면 반드시 신용을 얻게 되니 금융은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한·중·일 “세 나라의 능력 있는 자들을 모아 동양평화회를 조직하고 세계에 공표하자”고 제안한다. “중요한 지역마다 평화지회를 마련하는 동시에 은행 지점을 두자”는 것이다.

또한 “세 나라의 강건한 청년들을 모아서 군단을 편성”하고 청년들에게 “각각 두 나라 언어를 배우게 하면 형제나라라는 관념이 강고해질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안 의사가 제안했던 선진 제도들 대부분은 오늘날 유럽연합에서 채택되어 있다.

서울 남산 중턱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 서면, 100여 년 전 ‘풍진 시대’ 속에서 전쟁과 평화, 자주독립의 본질을 꿰뚫어 본 그의 뜨거운 꿈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인약’의 나라를 벗어나 세계 10대 무역대국에 오른 우리는 어떤 비전을 아시아와 세계에 내놓고 있는가?

우리는 그저 순수하게 달콤한 평화의 꿈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요즘 세계가 박수쳐주는 K의 모습에 취한 것은 아닐까? 혹은 그저 그때그때 불끄기에 급급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번 3·1절에는 『동양평화론』을 다시 읽자.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