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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닉] 오버핏 패션 브랜드, 불황에도 성장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브랜드랑 썸타는 101가지 방법①-오버핏은 아름답다
비크닉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갑은 얇지만 사고 싶은 것은 넘치는 박영민 기자입니다. 브랜드랑 썸타는 101가지 방법에선 평범한 제가 브랜드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소비자의 취향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만들거나 바꾼 이야기도 들려드릴 거예요. 여러분이 뉴스레터를 여는 순간, 기다렸던 택배가 올 때처럼 설렜으면 좋겠습니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여러분은 옷을 어떤 기준으로 정리하나요?  

색깔별, 상∙하의 등 용도별, 혹은 계절별? 저는 오버핏과 레귤러핏으로 옷을 분류해요.

오버핏은 확찐자의 체형을 어느 정도 커버해줍니다. 편안한 착용감에다 예쁘기까지 하죠. 루즈한 어깨선 덕분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핏이 연출되거든요. 다양한 아이템과 매치하기도 수월하고요.

이 옷을 내가 입을 수 있을까?

사진=Juun.J

사진=Juun.J

저의 첫 오버핏은 준지(Juun.J)였어요. 남성 의류를 해체주의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하이 패션 브랜드예요. 준지의 과감한 오버핏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부터 앞섰어요. 미묘한 한 끗 차이로 '아빠 재킷'처럼 촌스러워 보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찾아낸 방법은 오버핏과 레귤러핏 믹스매치였어요. 상의는 오버핏으로 하되, 하의는 한 치수 작은 레귤러핏을 선택했죠. 몸매에 자신이 있지만(!) 일부러 크게 입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거든요. 준지는 하이패션이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해요.

준지 Juun.J


정욱준 디자이너가 2007년 설립한 글로벌 컨템포러리 패션 브랜드. 2012년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합류했다. '클래식의 재해석'을 콘셉트로 한 미니멀하고 정제된 스트릿 테일러링(Street Tailoring) 디자인이 특징이다. 뉴욕·런던·파리·밀라노·홍콩 등 30여개국 100여개 매장이 있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우영미’와 함께 파리의상조합의 정회원이다. 카니예 웨스트·리한나 등 유명 글로벌 스타가 준지의 열렬한 팬이다. 최근 스포츠 브랜드 리복, 기능성 소재 고어텍스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MZ세대 남성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스우파 언니들이 입었던 그 옷, NERDY

사진=NERDY

사진=NERDY

스트리트 브랜드 널디(NERDY)의 성공도 오버핏의 인기를 증명합니다. 왜, 있잖아요. Mnet 댄스 서바이벌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 댄서들이 입어서 유행을 탄 펑퍼짐한 그 옷이요. 널디를 보유 중인 ㈜에이피알의 지난해 반기보고서를 살펴보면, 2017년 5월 브랜드 론칭 3개월 만에 매출 15억원을 찍더니,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진 2020년 연매출 544억원을 넘어섰어요. 론칭 5년 만인 지난해 추정 매출은 약 1000억원에 달해요.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패션 업계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팬데믹 2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어요. 지난해 시장 규모가 3년 만에 상승세로 전환하긴 했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긴 어려운 상황이죠.

패션 불황에도 성장을 지속한 비결은?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의복 종류의 파괴를 통해 기존 패션의 경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자사몰 데이터를 통해 꾸준히 고객의 니즈를 연구한 성과"라고 했어요. 빅데이터를 통해 소비자 취향을 철저히 파악하고 고객이 원하는 옷을 발굴한 게 곧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고 성공으로 이어진 거죠.

널디 NERDY


사회적 잣대에 물들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당당히 표현하는 뉴욕 스트릿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다. ‘머리는 좋으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너드(NERD)’에게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다.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와 열정을 당당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널디가 지향하는 목표. 온라인에서 시작, 오프라인 매장 진입 1년 만에 30개로 매장을 확장하며 MZ세대의 패션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오버핏, 원 마일 웨어로 딱

국내 1위 패션 상거래 사이트 무신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남성 셔츠 부문 판매 1~5위 중 3개가 오버핏이었어요. 한양대학교 의류학과 연구팀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오버핏 유행의 원인이라고 봤어요. 네이버 데이터랩을 통해 검색어 트렌드를 비교한 결과,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인 2020년 상반기부터 원 마일 웨어 관련 키워드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거죠. 재택 근무가 늘면서 집 반경 1마일(1.6km) 내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일상복이 사랑받은 거죠.

원 마일 웨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카테고리가 바로 오버핏입니다. 연구팀은 "블랙, 회색과 같은 단정한 무채색, 따뜻하고 포근한 소재, 레깅스를 제외하고는 상하의 모두 박시한 오버사이즈 핏이 주요 디테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어요.

내 몸을 사랑한다, 고로 편한 옷을 입는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가 확산한 것도 오버핏 유행의 배경입니다. 편한 옷을 추구하는 트렌드와 함께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취향이 어우러진 결과죠. 딱 붙는 레깅스 열풍도, 헐렁한 오버핏 인기도 모두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몸 긍정주의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겠죠.

#오버핏은 콩글리시

사실 오버핏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말이에요. 외국에서는 오버핏을 루즈핏(Loose Fit), 박시(Boxy)라고 합니다. 참고로 국립국어원에 문의했더니 아직은 오버핏에 대한 외래어 표기법 규정은 없대요. 대신, 오버핏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한 치수 위 옷'으로 순화해 사용해달라네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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