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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돼지 날랐는데…" 백령도 돼지농장 눈물의 폐업 왜

중앙일보

입력

최씨는 인천 옹진군 백령면에서 770㎡ 규모의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최씨 제공

최씨는 인천 옹진군 백령면에서 770㎡ 규모의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최씨 제공

“자식 같은 애들이지만. 이젠…”
수화기 너머 보아스 농장 최영빈(61) 대표는 말끝을 흐렸다. 인천 백령도에서 유일하게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그는 최근 폐업을 선언했다. 백령도 내 도축장이 사라지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규제가 강화되면서 돼지를 기르는 게 버겁다 느껴서다. 현재 돼지 45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최씨는 “한 달에 60마리씩 돼지를 출하하고 있다. 여름쯤 농장을 닫을 것 같다”고 말했다.

40년여 된 백령도의 마지막 돼지농장

보아스 농장은 38년 전인 1984년 최씨의 강단에서 출발했다. 농업고교를 졸업한 뒤 농장을 짓고 육지에서 새끼 돼지 50여 마리를 들여왔다. 돼지가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 성경 속 인물을 따와 농장 이름으로 지었다고 했다. 도축한 돼지는 대부분 백령도 내 군부대로 보냈다. 외딴 섬이다 보니 구제역 등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 한다. 최씨는 “당시 백령도엔 소, 돼지, 흑염소 등을 키우는 농가가 500여곳 있었다”고 했다.

2018년 백령도 도축장이 문을 닫으면서 변화가 왔다. 옹진군은 노후한 도축장이 환경오염을 부르는 등 공익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대신 축산농가에 육지로 가는 도축운송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농가가 줄어든 만큼 그편이 비용 부담이 적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도축을 위해선 4시간 남짓 바닷길을 건너야 했다. 부담을 느낀 양돈농장이 하나둘 폐업했지만 최씨는 끝까지 남았다. “애정을 갖고 키워온 돼지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서해최북단 백령도의 마지막 남은 돼지농장인 보아스농장. 사진 최씨 제공

서해최북단 백령도의 마지막 남은 돼지농장인 보아스농장. 사진 최씨 제공

이듬해 다른 시련이 농장을 위협했다. ASF였다. 대처에 나선 농림축산식품부가 방역 권역을 지정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인천시를 경기남부 권역으로 분류했는데 인천에 속한 백령도는 경기 북부권역으로 묶으면서다. 백령도가 북한과 가까운 접경지역이라 보고 내린 판단이었다. 방역당국은 같은 권역 내에서만 돼지를 도축하도록 했다. 백령도 돼지를 도축하기 위해선 경기 포천과 연천의 도축장까지 가야 했다.

“바다 건넌 백령도 돼지를 포천까지 보내라니….” 최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백령도에서 육지로 가는 길은 인천항뿐이었다. ‘거기서 경기북부까지 이동하면 방역에 더 취약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도서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고 지자체와 농식품부가 받아들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ASF 중점방역관리지구 양돈농장 내 방역시설 모식도. 사진 방역당국 제공

ASF 중점방역관리지구 양돈농장 내 방역시설 모식도. 사진 방역당국 제공

하지만 방역시설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해 10월 방역 당국이 경기북부 권역 농장들이 인천의 한 도축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다. 최씨가 거래하던 그 도축장이었다. 물량이 과도하게 모이는 걸 막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최씨에겐 독이 됐다. 외부 울타리 등 8대 방역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이 도축장을 이용할 수 없다는 단서가 붙어서다. 백령도는 8대 방역시설이 의무가 아니었다. 비용이 부담스러웠던 최씨는 시설을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인천 도축장을 이용할 길이 막혔다.

“6월이면 마지막 돼지 떠난다”

 최씨는 보아스농장에서 돼지 450여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중 어미돼지(모돈)가 50마리다. 사진 최씨 제공

최씨는 보아스농장에서 돼지 450여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중 어미돼지(모돈)가 50마리다. 사진 최씨 제공

출하일을 미루며 버텼지만, 진전이 없었다. 농장 문을 닫기로 했다. 폐업 이행계획서를 낸 뒤에야 방역 당국은 방역검사를 거쳐 기존처럼 인천 도축장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매달 돼지 60마리씩 트럭에 태운 뒤 배에 실어 육지로 보냅니다. 마지막 애는 6월쯤 떠나겠네요.” 그는 폐업 이후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나고 자란 곳에서 돼지만 길렀는데 막막해요. 방역 권역을 그리 나누지 않았으면 달랐으려나….”

한편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백령도가 접경지역인 점 등을 고려해 북부권역으로 정했다”며 “권역 조정을 해야 하는지 등은 상황을 종합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 사례에 대해선 “해당 농장은 도서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한 곳인데 이후 관할 지자체와 농식품부 간 소통 혼선으로 벌어진 문제 같다”며 “만약 농장주가 폐업 의사를 철회한다면 해당 농장을 어떻게 방역 관리할 건지 등을 지자체와 논의해 방안을 찾아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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