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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특례시’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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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흥식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장

김흥식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장

‘우여곡절’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경기도 수원·고양·용인시, 경남 창원시가 특례시가 되기까지 과정이 그랬다. 2020년 12월 9일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마침내 지난달 13일 4개 특례시가 공식 출범했다. 출범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행정 전문가가 보기에도 가슴 벅찬 일이다.

특례시 출범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2013년 100만 대도시 단체장들은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자치분권 모델 연구 용역’을 시작으로 특례시 실현을 위해 줄곧 노력했다. 토론회와 강연회도 여러 차례 열었고, 단체장들이 국회의장·정부 관계자 등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특례시의 당위성을 알렸다. 하지만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된 특례시 관련 법안이 폐기되는 아픔도 겪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어서 여정이 험난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21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단체장들은 다시 입법을 위해 뛰었다.

10년 만에 지방자치법 개정 성사
행정 혁신의 모범 사례 만들어야

필자는 지난 2012년 3월 아주대 수원발전연구센터장으로 일할 때 ‘지역 주권 시대를 여는 지방분권형 개헌 정책토론회’ 토론자로 참석했다. 그때 “광역과 기초로 구분된 행정체계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행정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토론회를 계기로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의 새로운 자치분권 모델 연구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00만 이상 대도시는 광역시급의 행정수요가 있어도 기초지자체의 지위와 권한에 묶여 힘을 발휘하지 못해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해야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조차도 대부분 “새로운 행정체계를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견이었다. 제도권의 반응도 싸늘했다.

수원시의 경우 2018년 시정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더 큰 수원기획단’을 만들었다. 필자가 단장을 맡아 특례시의 당위성, 설득 논리를 전문가들과 함께 개발했다. 전문가들과 때로는 격렬하게 논쟁하고, 그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시민사회와 토론하며 특례시의 당위성을 알렸다. 많은 사람이 불합리한 행정체계의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고, 특례시가 지방자치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례시 출범이 자치분권 발전을 위해 큰 획을 그으면서 지방자치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됐다.

특례시 추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지자체도 있었다. 특례시는 100만 이상 대도시에만 ‘특별한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다. 특례시 출범을 계기로 지방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게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받으며 지역 특색을 반영한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수원의 경우 시민들은 ‘특례시민’에 걸맞게 스스로 자치분권 역량을 키워왔다. ‘수원특례시 참여본부’를 만들어 ‘수원특례시 시민헌장’ 초안 작성에 힘을 보탰다. 지난해 6월부터 3개월 동안 진행한 시민헌장 키워드 공모에는 1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2900여 개의 단어를 제안했다. 민주주의와 자치분권의 역사를 만들어갈 특례시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담은 시민헌장은 시민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안이 마련됐고, 시의회에 공식 제안해 시청 정원에 설치했다.

특례시의 존재 이유는 시민 행복이다. 시민이 행복하려면 도시 규모에 걸맞은 권한이 필요하고, 재정도 확충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꼭 필요한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민에게 더 큰 혜택을 돌려드려야 한다.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의 협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특례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민 스스로 자치분권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권한에 걸맞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견제와 감시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시민은 시민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시의원은 시의원대로 각자 맡은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특례시 출범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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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식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