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m 홀인원 나흘뒤, 외할머니 보낸 그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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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2022년은 초입부터 희비가 교차했다. 최근 그는 모처럼의 홀인원으로 활짝 웃었다. 하지만 지난 15일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슬픔 속에 16일 귀국했다. [사진 KLPGA]

코로나19 출현 이전 세상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타 박성현(29)도 그중 하나다.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를 평정한 뒤 LPGA 투어에 진출한 그는 2017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올해의 선수상·신인상·상금왕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여자 PGA챔피언십을 비롯해 캐나다오픈, HSBC 위민스 월드챔피언십 등 굵직한 대회 정상에 올랐다. 2019년에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함께 광고 촬영이라는 소원도 이뤘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변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 박성현도 많이 달라졌다. 2020년 박성현은 코로나에 따른 셧다운 조치와 어깨 부상 등으로 7개 대회밖에 나가지 못했다. 상금 랭킹은 88위였다. 지난해에는 19개 대회에 나갔지만, 상금 랭킹은 123위까지 밀렸다. 2020년 이후 박성현은 톱10이 한 번도 없다. 2019년 여자골프 세계 1위였던 그는 16일 133위로 밀렸다.

박성현은 섬세한 선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부 접촉을 삼갔다. 팬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한 걸 빼면, 지난해 임진한 프로가 운영하는 유튜브에 출연한 게 공개 활동의 거의 전부다. 박성현은 지난해 중반 “어깨 부상은 거의 나았는데 재활하다가 나쁜 스윙 버릇이 생겼고 감을 찾지 못했다. 조만간 예전 감각이 돌아올 거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2022년은 웃으며 시작했다. 지난달 용품후원사 신제품 발표 행사에 나온 박성현은 화상 인터뷰에서 밝게 웃었다. 그는 “샷 거리가 10야드 정도 늘었고 방향도 좋아지고 있다. 만족하면서 연습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지난 12일 박성현이 홀인원 한 공을 꺼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좋은 소식은 또 있다. 지난 12일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홀인원 영상을 올렸다. 박성현은 “21살인가 22살 이후로 드디어 오늘 홀인원”이라고 썼다. 쇼맨십이 많지 않은 그지만, 홀을 향해 넙죽 절하고 컵 안의 공을 꺼내 보여줬다. 홀인원 한 홀의 전장이 210m나 됐고, 3번 우드를 사용했다. 몹시 어렵고, 희귀한 홀인원이다.

슬픈 소식도 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박성현은 16일 새벽 급히 귀국했다. 매니지먼트사는 “박성현 선수가 할머니와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 지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고 전했다. 가족의 죽음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고진영은 지난해 초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잠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전인지도 맞벌이 부모님 대신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떠나보낸 뒤 우울증을 앓았다. 박인비도 유난히 가까웠던 할아버지가 지난해 별세한 뒤 우승이 없다.

박성현은 다음 달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HSBC 위민스 월드챔피언십으로 2022시즌을 시작한다. 할머니를 여읜 슬픔은 가슴 안에 묻어둬야 한다. 그에게 유난히 모질었던 코로나19가 끝나가는 건 좋은 조짐이다. 팬들은 그가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