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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윤식의 이코노믹스

미국 빅테크·글로벌 OTT에 위협받는 미디어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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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방송산업 지각변동

정윤식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정윤식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미국의 4차 산업혁명 전략은 빅테크 기업인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와 넷플릭스로부터 출발한다.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OTT’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및 플랫폼을 앞세워 서비스 산업의 혁신을 도모하는 한편, 인공지능(AI) 중심의 제조업 혁신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구글의 4차 산업혁명 시나리오는 유튜브 및 검색시장 등 콘텐트 시장을 선점한 후 유통·금융 분야로 진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자동차(제조업) 분야에 목표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은 넷플릭스에 이은 세계 2위 글로벌 OTT 서비스로 가입자 1억5000만명의 ‘아마존 프라임(prime)’과 함께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및 클라우드 서비스, 식료품·물류, 결제 및 신용대출, 하드웨어 제작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최근 세계 최초로 3조 달러 시가총액을 돌파한 애플 또한 하드웨어 경쟁력과 함께 ‘애플 플러스(+)’와 같은 글로벌 OTT 시장에 진출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제 유튜브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는 단순한 방송서비스로 볼 것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전초전으로 주목해야 한다.

GAFA 약진, 4차 산업혁명의 첨병
유튜브·넷플릭스가 한국 안방 차지
KBS, 기간방송에서 ‘로컬’ 전락
미디어 산업 잠식 대응책 세워야

빅테크가 미디어 시장 초토화

정윤식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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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와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서비스는 출범한 지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 방송시장 판도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구글의 자회사인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은 세계 디지털 광고 시장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광고를 중심으로 하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인 신문이나 지상파방송, 유료방송의 재원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고 그 존속과 발전을 위협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OTT 서비스의 시청료가 유료방송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케이블TV·위성방송·IPTV 가입자들은 OTT 서비스로 대폭 전환하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OTT는 한국 방송시장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가? 유튜브는 누구나 방송국을 개설할 수 있는 1인 방송 시대를 개막하고 있으며,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징어 게임’ ‘지옥’ 등 K-콘텐트는 한류의 재부상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 제1 방송 사업자는 이제 유튜브이며 2위 사업자는 넷플릭스다. KBS는 국가 기간방송(대표방송)이 아니라 ‘국가 지방방송’이 되고 있다.

유튜브는 국내에서 상당한 광고수입을 가져갈 것으로 예측되지만 그 광고 수입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으로 몇조 원의 수입을 올렸고, 한국의 우수한 감독·PD·작가·배우들은 글로벌 OTT라는 새로운 일터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애플 플러스 등 글로벌  OTT 서비스는 전 세계 미디어 시장을 초토화하고 있다.

미국, 플랫폼 규제법 5개 제출

글로벌 OTT를 출발점으로 전 세계적 차원에서 시장을 확대해 왔던 빅테크 기업과 플랫폼 서비스는 국내외적으로 규제 열풍에 휩쓸리고 있다.

미국은 바이든 민주당 정부 출범 이후 빅테크 규제론자들을 각료와 백악관 참모로 임명했다. 하원은 5개 플랫폼 반독점 법안을 제출해 2021년 6월 11일 법사위원회를 통과시켰다. 법안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자.

빅테크 기업 시가총액 순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빅테크 기업 시가총액 순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우선, ▶GAFA는 플랫폼 사업만 하고 자사의 재화 및 용역사업을 하지 못하며 ▶GAFA는 자사의 상업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인수 합병을 못 하게 하며 ▶빅테크 기업이 플랫폼 내에서 특혜를 제공(자사 우대)하거나 경쟁사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다. 또 ▶빅테크 기업인 GAFA의 개인정보와 데이터 독점을 막고 ▶플랫폼 간 정보 이동을 위해 데이터 표준을 준수하게 한다.

세계 10대 기업으로 성장해왔던 빅테크 기업의 상승 국면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에서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빅테크 기업이 중산층 복원, 일자리 창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인수합병으로 스타트업 등 제조업 육성에도 방해가 되었으며, 기술혁신보다는 부(富)의 독점에 기여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페이스북 등은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고 일부 빅테크 기업의 인권 및 프라이버시 보호, 언론의 자유에 대한 침해 등도 규제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럽·중국도 플랫폼 견제 나서

유럽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묘사될 정도로 미국 빅테크 기업에 의해 경제 및 산업, 문화 및 언론 영역이 크게 잠식되고 있으므로 GAFA의 과도한 서비스 팽창정책에 대한 산업 및 문화 보호 차원에서 강력한 법적 대응책이 마련되고 있다. 유럽은 최근 OECD 차원에서 ‘디지털세’ 도입을 주도해 왔고, 2020년 12월 15일에는 ‘유럽연합(EU) 디지털 시장법’과 ‘디지털 서비스법’ 초안을 제안했다.

‘디지털 시장법’은 GAFA에 별도의 의무를 부과하고 플랫폼 행위를 사전규제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법’은 온라인상의 불법 콘텐트를 삭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디지털 시장 저작권 지침’은 유럽 언론간행물의 발행자·저작자, 음반 및 영화제작자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 일반정보 보호법’은 플랫폼 기업의 고객정보 보호, 정보 주체의 권리 강화, 기업의 개인정보에 대한 남용을 방지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이해 이른바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을 제창하면서 부동산·사교육·가상화폐·게임산업과 함께 알리바바·텐센트 등 자국의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 등 외국 투자자의 투자 중단과 자금 회수라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빅테크 산업 규제 배경에는 사회의 양극화와 빈부 격차, 경제력 집중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윤식

고려대를 졸업하고 1975년부터 2021년 8월까지 강원대 신문방송과 교수로 재직했다. 세계인명사전(Marquis Who‘s Who)에 10년 연속 등재되었고 KBS 이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공영방송』『방송정책』『정보사회의 국제커뮤니케이션 질서』 등이 있다.

새 정부, 글로벌 OTT 대응 나서야

한국 국회에서는 세계 최초로 ‘구글 인 앱 결제 방지법’을 통과시켰고 여야 공동발의로 ‘넷플릭스 망 이용계약 의무화법’을 발의하는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반경쟁적 행위에 대처하고 있다. 또 국회에서는 국내 빅테크 기업의 일부 반경쟁적 행위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한편 국내 플랫폼 규제에 대한 여러 입법안이 제출돼 있다. 더 나아가 몇 가지 정책제언을 하고자 한다.

우선, 산업적 파급효과가 큰 글로벌 OTT에 대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2018년 제정된 EU의 ‘시청각서비스 지침’에서는 넷플릭스 등 OTT의 경우 10편 중 3편은 유럽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쿼터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 유튜브의 경우 청소년·아동 보호 차원에서 내용규제와 광고규제도 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하는 글로벌 OTT 사업자에게 쿼터제를 실시한다면 국내 콘텐트 시장의 재원은 풍성해질 것이다. 영국 BBC는 넷플릭스와 1년 동안 12편의 프로그램을 공동제작하며, 독일·이탈리아 공영방송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일대기’를 공동제작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방송 제작비 확보, 독창적인 콘텐트, 글로벌 시장 진출이 방송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GAFA 등 거대 빅테크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와 EU 국가의 규제 트렌드 및 정책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국내 토종 OTT 기업(웨이브, Tving, 왓챠 등)이나 플랫폼 기업(네이버, 카카오 등)에 대해서는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육성,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레거시 미디어 및 전통산업, 중소기업과도 공존해야 한다. 국내 플랫폼 정책 방향은 미국 5개 법안의 입법 방향과 취지를 벤치마킹하되, 국내 상황에 맞게 변형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디어 및 플랫폼 관련법은 현행 방송법이나 경쟁법의 차원을 넘어서서 4차 산업혁명 대응 차원에서 대안과 비전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부의 집중문제와 인권 및 언론의 자유 등의 가치관도 동시에 공유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미디어 및 플랫폼 관련 부처의 통합이 추진되어야 하며 아울러 ‘미디어 재정’ ‘미디어 합병’ ‘글로벌 미디어 및 플랫폼’ 전략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정윤식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