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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윤의 퍼스펙티브

코로나 늑장방역 누구 책임인가, 분명히 밝혀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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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되풀이되는 뒷북 대응

김윤의 퍼스펙티브

김윤의 퍼스펙티브

한겨울 추위에 길게 늘어선 선별검사소의 대기 줄, 문자도 없고 전화해도 받지 않는 보건소, 어렵게 찾아가니 아직 준비가 안 돼 코로나 검사를 할 수 없다는 동네 병·의원, 하루가 멀다고 바뀌는 정부의 방역 지침. 준비되지 않은 정부의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방역이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정부의 허술한 오미크론 방역 탓에 국민은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는 준비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됐을 때 많은 전문가가 1월 말이면 오미크론 변이가 우리나라에서도 우세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파력이 매우 높지만 중증도는 낮기 때문에 새로운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초기부터 있었다.

오미크론 대응할 시간 있었는데도 국민 혼란과 고통 가중
지난 2년 반복돼온 정부의 허술한 대책 두고만 볼 것인가
정부가 의사결정 과정 밝히지 않아 책임 소재도 불투명
국회·언론은 뭐하고 있었나 … 정부에 정보 공개 압박해야

겉만 다를 뿐 실제 내용은 같아

지난해 12월 중순 단계적 일상 회복을 중단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늘어난 탓도 있었지만 다가오는 오미크론 변이에 대비해 새로운 대응 체계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오미크론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월 하순까지 정부에 약 5주 동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초안이나마 오미크론 대응 계획을 내놓은 것은 오미크론 유행이 시작되기 직전인 1월 20일이었다.

전형적인 뒷북 대응이었다. 계획은 허술했고 바뀐 계획에 따라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환자를 관리할 동네 병·의원은 머뭇거렸고 그사이 국민은 또다시 보건소로 몰렸다. 선별검사소에는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긴 대기 줄이 만들어졌고, 하루가 멀다고 바뀌는 정부 지침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로 보건소 전화는 끊임없이 울려댔다.

찬찬히 지난 2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을 되돌아보면 허술한 뒷북 대응으로 국민이 혼란과 고통을 겪은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겉모습은 달라도 속 내용은 같은 일이 지난 2년 동안 여러 차례 되풀이됐다. 재작년 겨울 3차 유행 때 전문가들은 민간 병원 병상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부는 그 같은 “극단적인 계획을 검토할 상황”이 아니라며 머뭇거렸다. 입원 대기 환자가 수백 명을 넘어서고 집과 요양병원에서 병상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하자 정부는 뒤늦게 대학병원 중환자 병상을 동원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 사이 코로나19 환자 치명률은 5배 가까이 뛰었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환자는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단계적 일상 회복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시작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면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정부는 환자를 치료할 병상과 인력을 늘리지 않고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용감하게 전환했다. 준비 없이 시간을 허송하다가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전환하지 않기 어려운 시기가 되니 근거 없는 낙관론에 기대 용감한 전환을 감행한 것 같다. 준비되지 않은 단계적 일상 회복은 시작된 지 한 달 반 만에 노인들의 돌파 감염으로 인한 중증 환자 증가로 인해 멈춰 서고 말았다. 3차 유행에서와 같이 수많은 코로나19 환자가 입원하지 못하고 일부는 그로 인해 사망하는 일이 반복됐다.

블랙박스에 갇힌 정부 정책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먼저 우리는 누가 왜 이 같은 결정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전환하기 전에 병상과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많은 사람의 주장을 누가 어떤 이유로 묵살했는지 알지 못한다. 정부 내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누가 이 같은 결정에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정부가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블랙박스처럼 불투명해지면 국민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책임도 희미해진다. 그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비판하기 어렵고, 누가 그 같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으니 비판의 대상도 모호해진다. 대중의 비판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은 정책 결정자는 국민보다 자신과 조직을 위한 결정을 내릴 위험성이 높아진다.

되풀이되는 정부의 허술한 뒷북 대응에 국회와 언론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정부 내에서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가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할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국회가 방역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K방역의 성공을 주장하는 것도, 반대로 정부의 방역을 실패로 몰아가는 것도 모두 국민의 혼란과 고통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론 역시 자극적인 소재에 끌려 정작 되풀이되는 정부의 허술한 방역 대응의 원인을 밝히는데 천착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이 정부는 투명하지 않은 정책 결정 과정의 뒤에 몸을 숨기고 국민에게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피하고 있다.

정보 투명성이 방역 성공 결정

정부의 투명성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방역의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정부를 신뢰해야 국민이 정부의 방역 지침을 잘 따르게 되고, 국민이 서로를 신뢰하게 되고, 그 결과 방역이 확진자 수를 줄이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새로운 변이가 출현할 수도 있고 작은 규모의 유행이 당분간 계속될 수도 있다. 몇 년 후에 새로운 감염병이 다시 우리를 찾아올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언론은 왜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는지 밝히고, 국회는 법과 예산 고치고 정부를 채근해 국민의 혼란과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허술한 뒷북 대응으로 인해 국민의 혼란과 고통이 되풀이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코로나19 방역의 성공 열쇠는 신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국가별로 확진자 수와 치명률은 천차만별이다.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적인 나라의 공통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새로운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공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최근 전 세계 177개 국가를 대상으로 나라별 확진자 수에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가를 밝힌 연구가 발표되었다.

국가별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차이 나는 요인

국가별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차이 나는 요인

예상과 달리 감염병 대응 체계 수준, 의료체계 대응 역량, 건강보험의 보장성 모두 국가별 확진자 수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인당 국민소득(4.2%)과 고지대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5.4%)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었지만, 그 영향은 크지 않았다. 확진자 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다른 사회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16.5%, 정부에 대한 신뢰가 7.4%로, 신뢰가 미치는 요인이 23.9%에 달했다. 정부와 다른 사회구성원을 신뢰하면 방역 지침에 따라 마스크를 잘 쓰고, 이동량을 줄이는 등 거리두기 지침을 잘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성공적인 방역을 위해서는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