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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쓰는 동생 간다" 협박과 싸운다…배드파더스 잡는 다크히어로

중앙일보

입력

“경찰 조사만 28번 넘게 받았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비양육자의 사진과 이름을 공개해 온 구본창(59)씨의 말이다. 지난 3년간 당한 고소는 28번이고 6번 기소됐다. “칼 잘 쓰는 동생을 보내겠다”는 식의 협박은 셀 수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그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100만원의 선고 유예를 받았다.

그 많은 조사와 협박에도 계속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양육비가 없어 아이들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걸 수없이 봤다. 아이들이 최소한 밥을 굶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답했다.

양육비를 받아야 할 사람들에겐 ‘영웅’, 신상이 공개되는 이들에겐 ‘악당’으로 평가받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가 문을 다시 연다. 지난 10월 활동을 중단한 지 4개월 만이다. 활동 재개를 준비 중인 구 대표를 10일 만났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가 10일 서울 관악구 한 스터디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가 10일 서울 관악구 한 스터디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문 여는 배드파더스… 이번엔 ‘양안사’로

2018년 7월 활동을 시작한 배드파더스는 지난해 10월 약 3년간 활동을 하고 문을 닫았다. 양육비 이행법 개정과 여성가족부의 미지급자 신상공개가 시작되자 “명분이 없다”며 스스로 활동 중단을 결정했다.

구 대표는 ‘양육비 이행법의 허점’과 ‘여가부 신상공개의 실효성 부재’를 활동 재개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양육비 이행법의 핵심은 감치명령을 받고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처벌하는 거다. 근데 상대방의 실거주지가 불분명할 경우 감치 소송이 무한정 늦어지는 등 제약이 많다. 여가부의 신상공개도 얼굴이 나오지 않아 미지급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운영됐던 배드파더스 사이트. [구본창 대표 제공]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운영됐던 배드파더스 사이트. [구본창 대표 제공]

배드파더스가 문을 닫은 4개월은 어땠을까. 그는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는 제보가 더 늘어났다. 심지어 해결됐던 사례도 우리가 문을 닫자 다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비양육자도 있었다”고 했다. 결국 그와 운영진은 다시 배드파더스 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사이트 이름은 ‘양육비 안 주는 사람들’로 변경해 활동할 예정이다. 그는 이에 대해 “배드파더스가 아빠만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는 비판이 있어, 그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바꿔 활동할 예정이다. 실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비양육자의 성비가 남녀 8 대 2 정도 되고, 우리 사이트에 여성이 비슷한 비율로 올라가 있었다”고 했다.

필리핀서 시작한 ‘코피노’ 지원 활동이 계기

구 대표는 26년간 서울 강서구에서 영어 강사와 학원장을 지낸 베테랑 강사였다. 이후 2010년 필리핀으로 ‘은퇴 이민’을 갔다. 여기서 우연히 만난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엄마의 사연이 지금 그의 활동이 계기가 됐다. 그는 “치료비가 없어 자녀를 잃은 엄마를 우연히 봤다. 살면서 들은 가장 슬픈 울음소리였다. 아이 아빠는 한국 사람이었는데, 주소를 알려달라는 말에 ‘그걸 믿니 18, Korea’라고 적었다고 한다”고 했다.

이후 그는 필리핀에서 코피노를 지원하는 단체를 설립하고 ‘코피노 아빠 찾기’ 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사이트를 보고 여성단체와 양육비 지원 단체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연락이 왔다. 그게 ‘배드파더스’의 출발점이 됐다고 한다.

배드파더스의 신상 공개에도 나름의 절차가 있다. 먼저 모든 법적 서류를 검토하고, 실제로 양육비를 주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모든 확인이 끝나면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사전 통보를 해 일주일의 시간을 준다. 이 기간에 밀린 양육비를 지급하거나 해결 의사를 보이면 신상 공개를 하지 않는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 관계자들이 2020년 11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게시물 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양육비해결총연합회 관계자들이 2020년 11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게시물 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해결한 양육비 문제 900건...‘사적 제재’ 비판도

배드파더스가 3년간 활동하며 해결한 양육비 문제는 3년간 약 900건에 달한다. 이 중 약 700건이 사전 통보를 통해 해결됐다고 한다. 그는 “양육비 미지급은 대부분 양육비가 비양육자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수년간 주지 않고 버티던 비양육자들이 사진을 사이트에 올리겠다고 하면 바로 양육비를 송금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양육비는 양육자들의 법적인 권리다. 당연히 요구해야 하고 받아야 한다.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배드파더스가 ‘사적 제재’라는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공권력이 아닌 민간에서 신상을 공개해 처벌을 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측면에서다. 이에 대해 구 대표는 “사적 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방어권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라고 믿고 세상에 알리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봐 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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