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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넘버2' 보내 축하했더니…중국은 한복과 메달 빼앗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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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뉴스1) 박지혜 기자 = 대한민국 선수단이 4일 중국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입장하고 있다. 2022.2.4/뉴스1

(베이징=뉴스1) 박지혜 기자 = 대한민국 선수단이 4일 중국 베이징 국립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입장하고 있다. 2022.2.4/뉴스1

베이징 겨울 올림픽은 논란을 먹고 자랐다.

시작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정부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는 항의 조치)’ 선언이었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침해가 이유였다.

지난 4일 개막식에선 ‘한복 논란’이 불거졌다. 조선족 여성이 입고 등장한 한복이 한국의 고유 문화가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의 전통 의복처럼 인식될 소지가 있었다.

지난 7일엔 올림픽 정신의 핵심인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에서 한국 황대헌·이준서 선수가 석연찮은 실격 처분을 받으면서다.

"우리 문화가 확산하는 과정" 궤변 

지난 4일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시내의 올림픽 메인 미디어센터를 찾은 박병석 국회의장. [연합뉴스]

지난 4일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시내의 올림픽 메인 미디어센터를 찾은 박병석 국회의장. [연합뉴스]

이런 베이징 올림픽을 둘러싼 논란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한·중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은 애초에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베이징 올림픽에 참석하는 등 최고 수준으로 성의를 표시했다.

한복 논란도 마찬가지다. 정부 대표 자격으로 방중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중국의 ‘문화공정’ 논란에 대해 “우리 문화가 확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문화 왜곡 시도로 보는 국민적 분노가 큰데, 정부 대표는 이는 그저 ‘한국 문화 확산’이라는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냈다.

계속된 갈등, 미온적 대처, 치솟은 '반중 정서'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선 56개 소수민족 대표 중 하나로 조선족 여성이 한복을 입은 채 등장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선 56개 소수민족 대표 중 하나로 조선족 여성이 한복을 입은 채 등장했다. [연합뉴스]

국민 정서와 괴리된 정부의 대처가 계속되는 동안 국내의 반중 정서 뿌리는 더 깊게 박혔다. 

시작은 중국이 2016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해 부당한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이었지만, 최근 중국이 잇따라 김치ㆍ한복ㆍ태권도를 둘러싼 ‘억지 원조’ 주장을 벌이며 반중 정서는 급속히 퍼졌다. 이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해 위험 수위까지 치닫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한·중 간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소극적이었던 정부 대응이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치나 한복 논란 때만 하더라도 정부는 중국 정부가 계획한 것이 아닌 SNS 등 민간에서 벌어진 ‘소동’에 정부가 개입하긴 어렵다는 식이었다. 

화춘잉 전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화춘잉 전 중국 외교부 대변인.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하지만 중국의 문화 왜곡이 민관을 아울러 조직적으로 이뤄지곤 했다는 점에서 이런 해명은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중국은 2020년 말 절임 채소 음식인 파오차이 제조법을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등재했는데, 당시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가 “중국이 김치 산업의 6개 국제 표준을 제정했다”고 보도하며 식(食)문화 왜곡에 앞장섰다. 나아가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에선 파오차이라 부르고, 한반도와 중국의 조선족은 김치라고 부른다”고 말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런 지적에 대해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중국의 문화 왜곡 등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오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문화 관련 논쟁 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중국 측에 고유한 문화에 대한 존중과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한 이해 증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 회피형 대중 외교, '반중' 부추긴다 

2020년 방탄소년단(BTS)이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Korea society 유튜브 영상 캡처]

2020년 방탄소년단(BTS)이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Korea society 유튜브 영상 캡처]

하지만 사례는 또 있다.

2020년 10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한국전쟁에 대해 “(한·미)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중국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 군인의 희생을 무시했다는 억지 주장이었다.

당시에도 자극적 보도로 이를 부추긴 건 환구시보였고, 한국 정부는 침묵을 지켰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선 오히려 BTS의 발언을 ‘중국의 민족적 자부심이나 역사적 상처를 건드린 일’로 평가하며 공연히 외교문제화하지 않는 게 맞다고 했다.

이런 식의 대응은 오히려 중국의 적반하장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지난해 7월엔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가 중앙일보에 “한ㆍ중 관계는 한ㆍ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고한 한ㆍ미 동맹의 기본 위에서 대중 외교를 펼쳐야 수평적 대중 관계가 가능하다”며 사드 배치를 “우리의 주권적 영역”으로 규정하자 반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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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대사의 공개 반박이 자칫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한국 외교부는 “주재국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외국 공관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양국 관계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직후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주한 중국대사로서의) 책무를 다한 것”이라고 맞섰다. 외교부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었음에도 외교부는 추가적 공식 대응을 자제했다.

이번 한복 논란과 관련해서도 환구시보는 "선동과 국민감정에 호소하는 한국 일부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했다.

정부가 신중하게 대응하면, 중국은 이런 여지를 놓치지 않고 더 강하게 받아치고, 여론은 분노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中 인식은…신뢰도 꼴찌, 경계심 1위 

결국 국민적 반중 정서는 중국의 원인 제공과 정부의 저자세 대응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중앙일보·서울대아시아연구소 공동기획 ‘민심으로 읽은 새 정부 외교과제’(1월 18~20일 연속보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90.8%가 ‘중국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19~29세(응답자 총 170명)의 경우 “중국을 매우 신뢰한다”는 응답은 한 명도 없었다.

또 한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를 묻는 질문에서도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일본(76.7%)과 북한(71.0%)을 제쳤다. 국가별 호감도에서는 100점 만점에(점수가 높을수록 호감, 50점 미만은 비호감) 35.8점으로, 대표적 비호감 국가 중 하나로 꼽혔다. (일본 33.6점, 북한 33.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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