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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중대재해처벌법 안착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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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연 선문대 명예교수·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

이연 선문대 명예교수·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됐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무리한 공기 단축으로 인한 부실 공사와 안전의식 부족 등으로 인해 엄청난 인적·물적·정신적 피해를 보았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가 대표적이다. 2021년 6월에는 광주광역시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와 경기도 이천 쿠팡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 평택 냉동창고 화재,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공사 중 붕괴 사고,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붕괴·매몰 사고 등이 잇따랐다. 산업 현장을 보면 ‘산재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엔 처벌보다 계도 위주 운용
철저한 재난안전 교육 병행해야

중대재해처벌법은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안타깝게 숨진 고 김용균씨 사고를 계기로 여론의 급물살을 타며 제정됐다. 이 법은 부칙을 빼면 모두 16개 조항으로 단출하게 구성돼 있다. 중대재해 개념을 보면 중대 산업재해와 중대 시민재해로 양분하고 있다. 전자는 근로자의 업무상 질병 또는 사망에 관한 재해다. 후자는 특정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인한 재해를 말한다.

주목할 점은 사고 발생 시 사업장 대표자나 공공기관장을 무겁게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중대재해를 예방한다는 정당한 목적을 위한 것이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소유주가 대표인 경우가 99%나 된다. 이 때문에 법을 경직되게 집행할 경우 많은 중소기업이 사업장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법에 따르면 대학 총장이나 학교법인 이사장, 신문·방송 등 언론사 대표의 경우에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중대 시민재해가 공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인한 재해를 포함하는 만큼 코레일과 버스업체 대표 등 대중교통수단의 책임자도 처벌 대상이 된다.

이 법의 본래 취지는 재난 발생을 방지해 재난이나 산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3법’처럼 징벌적 처벌 폭탄으로는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본래 입법 취지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법 적용 과정에서 몇 가지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이다. 첫째, 언론을 통한 대국민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가나 기관장뿐만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로 규정된 5000만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 홍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KTX·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우리 모든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재난 발생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사업 주체를 대상으로 사전에 철저한 재난 안전 교육을 하고, 또한 신 법규에 맞으면서도 안전이 보장되는 ‘재난 안전 대응 매뉴얼’을 작성해 숙지시켜야 한다.

셋째, 시행 초기에는 연착륙을 위해 처벌보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계도 위주의 운용이 필요하다. 벌써 일부 건설사들은 처벌을 의식해 설 연휴 전부터 공사를 중단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넷째, 대형 재난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통해 감리와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고, 부실한 시스템을 점검해 체계화·선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고 발생 초기에 초동 대응 부실로 재난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 최근 소방관들의 잇따른 순직 같은 구조자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이나 로봇 탐지 등 첨단기술 개발과 보급도 시급하다. 재난 발생 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임무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져야 할 대선 후보자들의 재난 안전에 대한 뚜렷한 정책이 보이지 않아서 심히 우려스럽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연 선문대 명예교수·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