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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곳간 구멍은 안중에 없다…‘1000만 개미표’ 혈안된 李·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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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앞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 세리머니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앞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 세리머니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000만 개미 투자자를 향한 여야 대통령선거 후보의 구애가 뜨겁다. ‘묻고 더블로’ 식의 경쟁이 주식 공약으로 옮겨갔다. 주식양도소득세는 물론 각종 부동산 세금까지 감세 공약도 넘쳐난다. 구멍 난 나라 곳간에 대한 언급은 양당 후보 모두 피해 가면서다.

지난달 27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페이스북에 ‘부자감세 반대’란 여섯 글자 공약을 게시했다. 같은 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주식양도세 폐지’ 일곱 글자 공약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윤 후보는 2023년 시행을 앞둔 소액주주 주식양도세(금융투자소득세) 신설 방안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진 주식을 사고팔아 수익이 나더라도 대주주만 양도세를 냈다. 2023년부턴 주식 보유액, 지분율 상관없이 주식으로 연 5000만원(비과세 한도) 넘게 돈을 벌면 누구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윤 후보 공약은 2020년부터 기획재정부가 추진해 개정 소득세법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내용을 뒤집겠다는 선언이다. 최근 주가 급락으로 ‘개미지옥’에 빠진 1000만 개인 투자자를 겨냥한 공약이다.

증시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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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재명 후보는 반기를 들었다. 소액주주는 물론 기존 대주주 대상 주식양도세까지 폐기하겠다는 건 부자 감세란 주장이다. 대신 이 후보는 동학개미를 겨냥한 다른 ‘카드’를 제시했다. 지난달 28일 페이스북에 ▶연기금 주식시장 안정 책임 ▶물적 분할 후 재상장 금지 ▶주식 공매도 형평성 확행 ▶주가 조작 시장 교란 엄벌이란 글을 올렸다.

주가가 추락하는 데도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고만 있는 국민연금, LG화학 소액주주를 울린 LG에너지솔루션 물적 분할 후 상장, 외국인ㆍ기관투자가에 유리한 공매도 제도, 끊이지 않는 주가 조작 논란 등. 개인 투자자 불만이 큰 분야에 대한 해결 방안을 이 후보는 윤 후보의 단문 공약을 차용한 방식으로 제시했다.

주식양도세 폐지 여부를 둘러싸고 두 후보는 의견 차이를 보였지만 다른 감세 공약에서 큰 차별점이 없다. 올해 추경을 둘러싸고 30조~50조원 증액 주장을 했던 것처럼 ‘묻지 마’ 감세 공약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증시 공약

증시 공약

그중에서도 ‘코인개미’를 겨냥한 두 후보의 가상자산(암호화폐) 공약은 판박이다. 이 후보는 가상자산 비과세 한도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확대, 가상자산 손실금 최대 5년 이월 공제, 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을 공약했다. 윤 후보도 가상자산 비과세 한도를 5000만원으로 올리고, 2023년 예정인 과세 시작 시점에 대해서도 “선(先)정비, 후(後)과세” 원칙을 내세우며 늦추겠다고 했다.

부동산 세금 공약도 1세대 1주택자 위주(이재명 후보)냐, 다주택자도 포함하느냐(윤석열 후보)의 차이일 뿐 큰 흐름은 감세다. 이 후보는 일시적 2주택자를 포함한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완화, 취득세 감면과 월세 세액공제 확대, 각종 보유세 부과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제도 전면 재검토 등을 내세웠다. 윤 후보는 종부세ㆍ재산세 통합, 다주택 양도세 중과세율 적용 최대 2년 유예, 취득세 인하 등을 공약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앞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달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앞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두 후보는 증시ㆍ코인ㆍ부동산 가릴 것 없이 자산시장과 관련한 감세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재정 손실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국가재정은 이미 비상이다. 지난해 60조원에 이르는 초과 국세 수입(세수)이 발생하긴 했지만, 추계를 잘못한 데 따른 장부상 여윳돈일 뿐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를 포함한 정부 총수입은 514조6000억원으로 정부 총지출 604조9000억원에 한참 못 미친다. 정부 수입이 2020년 대비 6.8% 늘어나는 사이 지출은 18.1%로 급증하면서다. 이로 인해 90조3000억원에 이르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적자를 봤다. 모자란 돈은 빚을 내 메웠다. 지난해 증가한 국가채무 규모만 118조7000억원에 이른다.

자료 제공=기획재정부

자료 제공=기획재정부

올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24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을 보면 올해 국가채무 증가분은 지난해와 맞먹는 110조4000억원이다. 정부 지출 증가율(11.4%)을 수입(7.6%)이 따라잡지 못하면서다. 여기에 양당 후보가 주장하는 30조원대 추경 증액안이 현실화된다면 나랏빚도 그만큼 추가된다.

여기서 더 나가 이 후보는 추경 증액이 여의치 않다면 “(당선 직후) 50조원 이상의 긴급 재정명령을 통해서 우리 국민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게 첫 번째 과제”라고 2일 밝혔다. 대선주자 입에선 ‘더 쓰자’는 주장만 나오고 있다.

악화할 대로 악화한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여야 후보의 무차별 지출 증액, 감세 공약에도 조세 당국인 기재부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대선후보의 공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만 말했다.

양당 후보의 ‘퍼주기’ 공약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는 오히려 외부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곧 있을 대선이 (한국) 중기 재정 전망의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다”며 “양대 후보가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을 위한 재정 지원을 공약하고 있는데, 이는 재정 적자 감축을 더디게 할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피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지속적인 상승은 중기적으로 신용등급에 압력을 가할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재정 뒷받침이 없는 무차별 감세 공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세 지출(감면)은 그 성격상 고소득자ㆍ대기업에 이익이 집중되고, 재정 적자 확대로 직결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데도 표를 의식한 감세 정책만 쏟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큰 실책 중 하나가 ‘덮어쓰기, 땜질’ 조세 정책인데 자칫 차기 정부도 이를 반복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경제난을 이유로 당장 표에 유리한 감세 정책만 펼칠 게 아니라 규제 완화 등 정공법을 택해야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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