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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쌓이는 정부부채, 신정부의 재정정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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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가 적자재정을 계속하고 부채를 쌓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지금 국가가 빚으로 잔치를 하면 언젠가는 누가 갚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한국의 정부부채는 미래 상환능력, 즉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인가?

현 정부에서 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정부부채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 기준으로 한국의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18년의 40%에서 2021년 51%로 가파르게 올랐고 2026년에는 67%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로 정부부채가 급증했고 선거를 앞두고 정부 지출을 늘리는 공약이 많아지고 있다.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늘 수 있는 상황이다. 대선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기본 소득, 사병 월급 인상, 노인 기초연금 인상 등 상당한 재원이 드는 공약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정부부채의 GDP 비율 아직 낮고
재정의 적극적 운용 필요하지만
경제성장률 높이고 재정 개혁해서
재정의 중장기 지속가능성 높여야

정부부채가 늘고 있어도 아직 상환능력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한국보다 재정지출을 훨씬 많이 늘렸고 정부부채의 GDP 비율이 높아졌다. 선진국 35개 국가의 정부부채의 GDP 비율은 2021년에 평균 83%였다. 한국은 아직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발행한 국공채에 지급하는 이자율도 낮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부채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운용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로 장기간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기초 생활을 지원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지출도 확대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이 감소하고 생산성은 정체하여 성장률이 계속 낮아질 전망이다.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성장률을 높여야 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 인프라를 확충하고 신산업을 지원해야 한다. 민간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세금을 줄여 근로의욕과 투자·기술 혁신 유인을 높이는 것도 정부의 재정적 역할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 적자재정이 되도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정부부채의 GDP 비율이 오히려 낮아져 부채상환능력을 높일 수 있다. GDP 성장률이 국공채 이자율보다 높으면, 정부부채의 GDP 비율은 재정적자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는 한 낮아진다.

재정정책으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기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적이고 비생산적인 지출은 경계해야 한다.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 과정을 엄밀하게 하여 재정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도록 해야 한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월 미국경제학회 토론회에서 재정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선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고 했다. 정부가 인프라 확충,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사업과 기술혁신을 지원하되 사업이 효과적으로 수행되도록 해서 재원 낭비와 물가 상승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5월 출범하는 새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운용해도 임기 중에 정부부채가 당장 위험한 수준으로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 상태로도 부채 증가 속도가 빨라 중장기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서 2040년에 정부부채가 GDP의 100%를 넘을 것으로 추계했다. 2039년부터 국민연금기금 수지가 적자가 되고 정부부채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2060년에는 재정수지 적자가 GDP의 10%를 넘고 정부부채의 GDP 비율이 159%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래에 심각한 경제위기나 안보위기가 발생하여 대규모 재정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정부부채가 폭발적으로 더 늘 수 있다. 국내외 투자자가 정부의 부채상환능력을 우려해서 국공채 구매를 꺼리게 되면 이자율이 오르고 채무 부담이 커진다. 일본처럼 중앙은행이 국채를 계속 살 수 있지만, 통화량 증가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이나 자산 거품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미국, 일본, 유로 국가와 달리 한국은 국제통화를 갖고 있지 않고 외환·금융 시장이 외화 유출입에 취약하다.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외환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IMF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부채비율이 단기간에 급증해도 한국이 괜찮을지는 국제금융시장이 판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정의 중장기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 세대가 빚잔치를 계속하면 미래 세대는 쌓인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거나, 더 적은 연금을 받거나, 물가 상승을 겪어야 한다. 지금부터 세제 개혁, 연금 개혁, 재정 지출의 효율을 높이는 중장기 대책을 만들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세입을 확충하고 연금급여와 연금보험료율을 조정하며 대규모 재정지출의 경제적 타당성을 엄밀히 검증해야 한다.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보았듯이 재정의 역할은 위기에서 특히 중요하다. 새 정부는 효율적으로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여 경제 발전에 기여하면서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지도자의 의지와 정부, 국회, 학계·연구소의 전문가 역량을 모아 빈틈없는 재정 관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