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선

문 대통령 지지율이 여당엔 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들이 법원의 잇단 유죄 판결로 ‘범죄자’ 신세가 되고 있다. 측근 중 측근으로 꼽히면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드루킹 댓글 공작 가담 혐의로 징역 2년이 최종 확정돼 옥살이하고 있다. 2017년 문 대통령 방미 때 김 전 지사와 함께 대통령을 수행한 더불어민주당 중진 안민석 의원(오산·5선)은 “문 대통령 내외는 마치 피붙이처럼 김 전 지사를 편하게 대하더라”고 SNS에서 증언했다.

그런 최측근이 자신의 대통령 당선과 연루된 댓글 공작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면, 그것도 친문 성향인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면 문 대통령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지난여름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하며 사과를 요구했음에도 대통령의 입은 굳게 닫혔다. “입장이 없다는 게 입장”이란 청와대 참모(박수현 국민소통 수석)의 말이 가관이다.

대통령 측근들 잇따른 유죄 물의
악재 침묵한 덕인지 지지율 40%
차별화 힘든 여당 대선후보 곤혹

문 대통령의 또 다른 최측근인 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법원에서 ‘사기범’ 철퇴를 맞았다. 친문 조직인 한국미래발전연구원(미래연) 실장 시절 회계 직원 김하니씨를 백원우 당시 국회의원실에 허위 인턴으로 등록하게 해 급여를 받게 한 혐의다. 미래연에서 일하면서 월급은 백 의원실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받아야 했던 김씨는 마음고생 끝에 검찰에 자수했다.

김씨는 “윤 실장 지시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수천만 원대 미래연 자금을 운용하기도 했다”며 관련 자료를 챙겨 제출했다. ‘스모킹건’ 급이란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도 검찰은 1년 반 가까이 수사를 끌다 공소시효 만료 직전인 지난해 11월 차명 계좌 혐의(횡령)는 빼고 사기 혐의만 적용해 벌금 300만원 형에 약식기소했다. 솜방망이 기소의 전형이란 비아냥이 나왔다.

법원(서울남부지법 이성용 부장판사)도 죄질이 구형량보다 나쁘다고 판단해 벌금을 70% 가까이 올려 500만원형에 처했다. 그런데 법원에 의해 ‘사기범’으로 낙인찍힌 윤 의원은 지금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정무실장을 맡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불공정’과 ‘범죄 의혹’을 맹공하고 있다. “사기범으로 결정 났는데 선대위 자리를 지킬 건가”고 윤건영 의원실에 물었더니 “법원의 정식 통고를 받지 못해 답을 할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민주당은 딸 KT 특혜 채용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국민의힘 김성태 전 의원이 윤석열 선대위 직능총괄본부장에 임명되자 “범죄자의 선대위 최고위직 임명을 즉각 철회하라”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김 전 의원이 이틀 만에 물러나자 민주당은 “윤석열은 범죄자 중용을 사과하라”라고도 요구했다. 그래놓고 민주당은 윤 의원의 ‘사기범’ 결정엔 눈을 감고 선대위 요직에 기용 중이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이제 얘깃거리도 되지 않지만, 윤 의원 경우는 특별하다. 문 대통령이 아끼는 실세 중 실세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실세 측근’엔 탁현민 의전비서관도 빼놓을 수 없다. “고1 때 여중생과 성관계” “임신한 선생님도 섹시했다” 등 저열한 성 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 책을 쓴 그를 문 대통령은 ‘묻지마’식으로 중용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졌지만 문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에서 탁현민 경질을 건의하겠다고 소신을 밝힌 문재인 정부 첫 여성가족부 장관(정현백)은 ‘대깨문’들에게 몰매를 맞은 끝에 1년여 만에 쫓기듯 물러났다.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게, 자신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란 거다. 그러나 지난 5년간 문재인 정권 안팎에서 벌어진 권력형 성범죄·성추문은 숫자나 규모 면에서 역대급이다. 마치 금연협회장이 골초를 비서진으로 데리고 있는 형국에 비유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말인데도 40%를 넘나든다. 이 수치가 곤혹스러운 이들이 이재명 선대위 사람들이다. 같은 여당이라도 대통령의 실정은 비판하면서 차별화를 해야 표가 확장되는데, 대통령 지지율이 대선 후보보다 높거나 같게 나오니 그럴 수가 없다는 거다.

이 후보가 부동산 등 일부 정책 실패를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거듭하고 있지만 ‘이재명=정권교체’ 등식이 작동할 기미가 별로 없어 보인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정책 실패부터 여권 내부의 추문 등 악재엔 입을 닫고, 방역 현장 방문 등 ‘폼나는 일’에만 얼굴을 내미는 문 대통령의 처신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선대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본인에겐 꿀이겠지만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에겐 독”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곱씹어볼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