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대통령 잘못 뽑으면 나라 힘들다? 김정은 정도면 OK"

중앙일보

입력 2022.01.29 00:10

업데이트 2022.02.04 10:12

본지 연재 회고록 『예스터데이』 펴낸 조영남

화수. 그림 그리는 가수 조영남씨가 지난해 중앙SUNDAY에 연재했던 회고록을 책으로 펴냈다. 연재 제목과 같은 『예스터데이』다. 다음달 또 한 번의 개인전 준비로 그의 청담동 자택은 어지러웠다. 기타를 잡은 포즈를 요청했더니 대뜸 최신곡 ‘삼팔광땡’을 불러 젖혔다. 팬서비스다. 양광이 따스하게 드는 이른 오후였다. 김경빈 기자

화수. 그림 그리는 가수 조영남씨가 지난해 중앙SUNDAY에 연재했던 회고록을 책으로 펴냈다. 연재 제목과 같은 『예스터데이』다. 다음달 또 한 번의 개인전 준비로 그의 청담동 자택은 어지러웠다. 기타를 잡은 포즈를 요청했더니 대뜸 최신곡 ‘삼팔광땡’을 불러 젖혔다. 팬서비스다. 양광이 따스하게 드는 이른 오후였다. 김경빈 기자

누군가의 인생을 이렇게 속속들이 들여다 본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이렇게 열띤 반응을 보였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지난해 2월 27일부터 12월 25일까지 중앙SUNDAY에 매주 한 면, 총 43회 연재됐던 조영남 회고록 말이다. 가수·화가·작가·방송인. 평범한 삶의 진폭을 훌쩍 뛰어넘는 그의 인생과 예술 이야기, 세상과 사람 이야기에 우리는 싫든 좋든 동의하든 하지 않든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매회 평균 수십만 회, 가장 많을 때는 200만 회 넘게(마광수를 다룬 지난해 7월 3일자)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그의 글을 읽었다.

그의 연재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연재 제목을 그대로 쓴 『예스터데이』(문학세계사), ‘조영남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부제다. 그를 만났다. 소회를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가급적 입말을 살려 전한다.

예스터데이

예스터데이

“내가 대한민국 스캔들의 아이콘 돼”

지난 1년 동안 연재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실은 늘 감탄하곤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바쁜 와중에 쉽지 않았을 텐데요.
“눈이 침침해지고 더 늙고 그랬지.”
예상과는 180도 반대로 너무 준비성이 철저해 놀랐습니다.
“모두 다 하는 소리지만, 진짜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작은 일도 동시에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 중국의 손문이 그런 얘기를 했어. 그 얘기를 굉장히 믿어.”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큰 걸 보다 보면 디테일이 보이게 돼 있어. 디테일을 잘 걸러내는 사람들이 글도 잘 쓰고.”
글이야 선생님 글도 좋죠.
“잘 쓴다는 얘기가 있는데. 나는 쓰지 말아야 할 게 많잖아. 그걸 걸러야 잘 쓴다는 얘기를 듣는 거지.”
중앙SUNDAY 연재에는 없었던 윤여정 선생님에 대한 글이 책에는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하도 집어넣자고 해서.”
지난해 윤여정 선생님이 아카데미상 받았을 때 발언(바람 핀 남자에 대한 통쾌한 복수)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는데, 정작 윤여정 선생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내 전 남편답구나 그랬겠지.”
요즘에는 방송에 출연해 하는 얘기마다 가십성 뉴스가 됩니다. 중앙SUNDAY 연재에 이미 나왔던 얘기들인데도요.
“조영남보다 심했던 여배우의 스캔들, 이런 식의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도 있더라고. 내가 대한민국 스캔들의 아이콘이 된 거야.”
최근 신곡에서 스스로 인생을 ‘삼팔광땡’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만족스럽다는 뜻인데요.
“생각해보니 나는 버킷 리스트가 없더라고.”
하고 싶은 걸 다 해서?
“다 했지. 손목시계에 관심이 있으니까 스위스 가서 며칠 시계 구경하는 거? 그런데 그걸 버킷 리스트라고 하면 너무 조잡하잖아.”
버킷 리스트가 없는 삶의 비결은 뭡니까.
“운이 좋아. 재수가 좋은 거지. 내가 한때 재수교 교주였거든. 사람은 재수가 좋아야 된다. 실력이 아무리 있어도 재수 좋은 놈한테는 못 당한다. 교주한테 돈 바치고 재수 좋게 해달라고 기도해라. 전푼협 회장도 지냈어. 전국푼수연합회. 푼수를 떨어야 재미있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살면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까.
“우리 조물주가, 조물주가 우리 할아버지야, 같은 조씨잖아, 인간을 만들 때 슬픈 반 불행 반, 가난 반 부자 반, 쓸쓸함 반 안 쓸쓸함 반, 고독 반 번잡함 반, 기쁨 반 슬픈 반, 공평하게 반씩 줬어.”
같은 한 사람 안에 모두?
“그렇지. 그런데 선생님들이 그걸 교육을 안 시켜.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으니까 슬픔을 견뎌야 한다는 걸 가르쳐줘야 되는데 맨날 야망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그런 것만 들입다 가르치고 반대쪽을 안 가르쳐.”
괴로울 때면 어차피 인생의 절반은 괴로운 거라는 생각을 해라?
“그렇지. 내가 미술 대작 사건 재판 5년을 견딘 건 50년 동안 호화스럽게 대접받으며 살았잖아, 그러니까 지금 스트레스받는 걸로 짜증 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지.”
실제로 그랬다면 거의 마음 수행자 수준이네요.
“공부는 왜 해. 그런 거 하려고 공부하는 거 아니야. 우리 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됐어.”
연재 원고가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글을 쉽게 쓰는 편입니까.
“허. 1년 동안 매번 그거와의 전쟁이었어. 시작하고 엔딩.”
시작부터 힘든 거군요.
“엔딩은 더 힘들고.”
엔딩은 왜 중요합니까.
“끝을 어떻게 맺느냐. 그건 읽는 사람한테 대한 배려지. 마지막에서 쫙 웃어야 다음에 또 읽어야겠다. 이렇게 될 거 아냐. 근데 그렇게 되기가 얼마나 힘들어. 당신도 글 써봤으니 알겠지만.”
1년, 2년 뭉텅이로 시간이 주어지면 어떻게든 재미있는 일을 찾아내지 허투루 낭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가 좋은 DNA를 받았어.”
몰입을 잘하는 편인가요.
“어떤 상황에서든 최고가 무엇인가, 제일 재미있는 게 뭔가, 그걸 찾아 가만히 있지 못 하는 게 버릇이고 DNA야.”
그런다고 유난을 떨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할 텐데요.
“그러니까 티를 내지 말아야 돼.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 노래를 열심히 한다 그런 걸 티 내면 꼰대가 된다고.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져. 또 티를 안 내야 사람들이 내게 접근하기 쉽지. 나 바빠, 맨날 이래 봐. 누가 내게 전화하겠어.”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안 바쁜 척 해요?
“내가 일찍이 택시 운전사한테서 좋은 교훈을 받았어. 기사가 날 알아보더라고. 바쁘시죠, 그래서 바쁜 거 하나도 없어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그러더라고. 그거 이상하죠. 제가 보기에 바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고 하고 바빠 보이는 사람들은 안 바쁘다고 해요. 아 이거구나. 그다음부터는 바쁘다는 소리를 안 해. 그 교훈을 실천에 옮겨.”
인맥이 엄청나다고 느껴집니다. 따로 비결이 있나요.
“내가 인맥 관리하는 사람 같아? 살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러니까 생각을 우주적으로 하게 되더라고.”
우주적으로 생각하면 뭐가 보입니까.
“지금 우리가 엄청나게 잘살고 있다는 거야. 몇 마일만 가면 이북이잖아.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이렇게 산다는 게 어이없을 정도야. 그걸 우리만 몰라. 안타깝게. 방탄소년단부터 봉준호, 미나리….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IMF가 왔어도 잘 지냈고. 나는 우리가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말해. 일본도 중국도 백남준 같은 예언자가 안 나오잖아. 중국에 아이웨이웨이 같은 저항 작가가 있지만 세월 지나면 없어져. 이봉창·안중근·윤봉길, 이런 사람들도 중국·일본에는 없어. 우수하다고 하면 오해를 살 수 있겠고. 정의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괴상한 민족이야. 세상에 월드컵에서 독일을 2대 0으로 이기잖아.”

내달 코로나 종식 기원 개인전 열어

운 좋게 한번 이긴 거죠.
“괴상망측한 현상이 있다니까, 우리한테.”
평소 정치 얘기는 안 한다고 했는데, 첫 연재에서 ‘추미애, 윤석열의 법적 대혈전’이 흥미롭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재밌는 사건 아냐.”
요즘 대선은 더 재미있지 않나요.
“너무 재밌어. 스마트폰이 나오는 바람에 대선이 그냥 엉망진창이야.”
소식이 바로바로 퍼지니까?
“그렇지.”
역대급으로 수준 낮은 대선 아닌가요.
“그렇게 보이지? 근데 그렇지가 않아. 재미있는 시대가 됐어. 뭐 되기가 정말 힘든 시대야.”
현재 유력 후보들보다 젊은 정치인 중에 나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아유 아저씨. 이 시대는 옛날같이 장비나 유비, 이런 게 안 나오는 시대라니까.”
나라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데 대통령 잘못 뽑으면 더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노노노.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김정은이 정도는 될 거 아니야 어쨌든. 그럼 됐지.”
어차피 정치가 뭘 해줄 게 없는 시대다?
“친하게 지내는 고위직 한 분이 옛날에는 나는 새도 자기 앞에 떨어졌는데 요새는 비둘기도 참새도 본척만척한다고 하더라고. 얼마나 세상이 달라진 거야. 선진국으로 가는 거지.”
올해 특별한 계획 같은 게 있습니까.
“계획 없이 살아왔어.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계획을 어떻게 세워. 연구하는 건 있어. 어떻게 멋있게 쓰다 죽느냐. 연재에도 썼지만 남자들이 두 가지 유형이야. 돈 벌다가 죽는 부류와 돈 왕창 벌어놓고 죽는 부류. 벌어 놓은 반이라도 쓰고 가는 경우를 한 번도 못 봤어. 우리 엄마 아버지 죽는 걸 내가 봤거든. 근데 정말 편안하게 가셨어. 엄마가 특히. 구차하게 유언 그런 거 없이. 그래서 그냥 엄마 아버지처럼 죽으면 된다 하는 결론이 났어. 근데 죽을 때 옆에 누가 있느냐 그건 미지수지.”

마지막 순간의 한 사람은 누굴 말하는 걸까. 미래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화가 조영남의 시계는 돌아간다. 미술전 말이다. 수요가 있다고 했다. 당장 다음달 6일부터 27일까지 수원의 중부일보 1층에서 개인전을 연다. 150평 공간에 100점을 건다. ‘찬란한 그날까지’전이다. 코로나 종식을 기약하는 의미다. 판매수익을 전액 기부한다고 한다. 오미크론은 극성이지만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열망 또한 식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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