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 아들에게 매질을 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작가가 뭘 잘 모르고 쓴 것 같다. 실제 삶에서는 부모들이 술에 취했을 때 자식을 때리고, 술에서 깨어나면 자식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할링카의 머릿속에선 "이 아이는 학대받았어"라던 사회복지사의 말이 지워지지 않는다. 유일한 위안은 로우 이모다. 로우 이모는 할링카의 팔뚝에 남은 시퍼런 멍자국을 보곤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러나 로우 이모와 함께 살 수는 없었다. 처음엔 이모의 직업이 분명치 않다는 이유로, 그 다음엔 남편이 없다는 이유로 법적 후견인이 될 자격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 할링카는 '기적이 일어날 것을 절대로 바라지 마라. 기적이란 기대하지 않을 때, 그제야 일어난다'고 비밀일기에 적었다.
이토록 조숙하고 냉소적인데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할링카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끼는 레나테를 달래기 위해 초콜릿을 주고, 비밀공간까지 데리고 가면서다. 비록 엄마가 감옥에 있긴 하지만 사랑받은 기억이 있는 레나테는 자신을 도와준 할링카에게 사랑을 표현할 줄도 알았다. 감추기만 했던 상처와 부끄러운 기억을 서로에게 털어놓는 법도 가르쳐준다. 처음엔 비밀공간을 알려준 걸 후회하던 할링카도 차츰차츰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방금 전에 행복에게 의자를 내준 것 같다'고.
여러 종류의 다른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를 할퀴며 살아가는 보육원. 상처받은 자아를 끌어안느라 단단한 껍질 속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사춘기 소녀들…. 그러나 마음에 둘러둔 높은 성은 작은 사랑과 관심으로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상처받은 아이에게도 행복은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내어줄 때에야 비로소 찾아 온다는 작지만 큰 깨달음을 얻어가는 사춘기 소녀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저자는 이 작품으로 독일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