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 게임 규제 위주 공약, 성장 엔진 꺼트릴 우려”

중앙선데이

입력 2022.01.22 00:21

업데이트 2022.01.2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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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호 24면

국내 게임산업 긴급 진단

20일 서울 상암동 e스포츠 명예의전당에서 열린 ‘K-게임 미래포럼’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재신 중앙대 교수, 박형준 성균관대 교수,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 강태욱 태평양 변호사, 황성기 한양대 교수. 정준희 기자

20일 서울 상암동 e스포츠 명예의전당에서 열린 ‘K-게임 미래포럼’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재신 중앙대 교수, 박형준 성균관대 교수,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 강태욱 태평양 변호사, 황성기 한양대 교수. 정준희 기자

게임 전문가들이 대선 후보들이 2030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게임 공약에 대해 우려했다. 국내 게임산업의 어려운 현실은 보지 않고 ‘이대남(20대 남자)’ 게이머를 겨냥해 게임업체를 규제하는 인기영합성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는 중앙일보S가 20일 서울 상암동 e스포츠 명예의전당에서 K-게임이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2022 K-게임 미래포럼’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은 “진흥보다 규제에 쏠린 후보들의 공약은 미래 핵심 콘텐트산업인 게임의 성장 엔진을 꺼트릴 수 있다”며 “차기 정부가 게임 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하루빨리 개선하고, 게임개발사들이 신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포럼에는 황성기 한양대 교수·박형준 성균관대 교수·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이 패널로 참가했으며, 이재신 중앙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15년 전 ‘바다이야기’ 유령이 발목 잡아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의장인 황성기 교수는 대선 후보들의 게임사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공약과 관련해 “확률 정보를 공개하는 문제에 대해 자율 규제가 나름 유의미하게 작동하고 있다”며 “후보들의 기본적인 공약이 법적 규제인데, 이는 잘못됐다”고 진단했다.

황 교수는 “현재의 높은 자율 규제 수준과 좀 더 낮은 수준의 정부 규제가 있다면, 낮은 수준의 규제만 준수하면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자율 규제는 법적 규제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다”고 강조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비용을 지불하면 가치 있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어 게이머의 선호도가 높지만 과도한 과금을 요구하는 시스템 때문에 빈축을 샀다. 일부 게임사의 확률 조작 사태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용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후보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확률 공개를 법적으로 강제하겠다는 공약을 앞다퉈 내놓았다.

황 교수는 확률 모니터링을 위해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처럼 이용자위원회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구상에도 공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방송산업은 공공재인 주파수를 이용한 공익산업이기 때문에 이를 위임·위탁한 방송사업자를 감시할 시청자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라며 “반면 게임산업은 희소자원이나 공공재를 활용한 산업이 아닌 문화산업이자 부가가치산업이라는 본질에서 차이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갈라파고스 규제’(세계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규제)가 K-게임의 날개를 꺾는 장애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11월 게임전시회 ‘지스타 2021’ 체험 부스에서 참관객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게임전시회 ‘지스타 2021’ 체험 부스에서 참관객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중앙포토]

강태욱 변호사는 “국내 게임사들은 해외에서는 요구하지 않는 과잉 규제를 준수하다 글로벌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게임이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해도 규제해야 할 산업이 아니라 하나의 정상적인 놀이문화이자 예술콘텐트 산업이라는 점을 고려한 (정부의) 인식 전환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대표적인 규제로 개인정보의 최소 수집을 요구하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있는데도 청소년에 대한 본인인증을 반드시 요구하는 ‘청소년 본인 인증제’를 꼽았다. 하나의 게임에서 법 위반이 발견됐는데도 게임사의 전체 게임에 영업정지가 내려질 수 있는 제도 역시 게임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전봇대로 지목했다.

한국의 암울한 시장 환경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명 돈 버는 게임인 P2E(플레이투언) 게임이 우리나라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이유라고도 했다. 강 변호사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시장 규모에도 15년 전 ‘바다이야기’ 사태의 유령이 여전히 국내 아케이드 산업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는 일본 파친코 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든 오락기 이름으로, 도박 수준의 사행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게임 속 재화를 환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게임산업진흥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게임산업을 바라보는 비판적 인식이 만연하고, 정부의 지원은 위축되면서 중소 개발사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황성익 회장은 “현재 중소 게임개발사는 5년 사업하면 5억원, 10년 사업을 하면 10억원의 빚을지는 상황”이라며 “국내법의 역차별 요소와 종합적인 지원이 있을 때 글로벌 진출도 가능하다”고 힘줘 말했다. 대선 후보들의 규제뿐인 게임 공약에는 중소 게임개발사의 지원책도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황 회장은 “현재 대기업과 중소 게임사의 인력·자본·역량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의 게임 공약에는 중소 게임개발사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독립영화 제작을 뒷받침하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인디영화 제작사업’을 우수 벤치마킹 사례로 제시했다.

과잉규제 탓 글로벌 경쟁력도 약화

황 회장은 메타버스(확장 가상세계)와P2E 게임 등 국내 기준이 모호해 시장 형성조차 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은 지금이라도 당장 육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게임사가 어디까지 개발할 수 있는지 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게임산업진흥법은 게임의 새로운 시도를 사행성으로 몰고 간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현금화할 수 있는데 왜 게임 캐릭터를 현금화하면 도박으로 몰고 가나”고 일갈했다.

대형 개발사의 선전에 국내 게임산업은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 같지만 최근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전 세계에 한류를 전파하고 있는 다른 콘텐트산업과 비교해 점차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박형준 교수는 “글로벌 앱마켓의 게임 상위 10위 안에 한국 콘텐트는 하나도 없다”며 “게임산업 수출은 증가율이 감소세로 전환하며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 역시 메타버스와 P2E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으로 봤다. 박 교수는 “게임산업은 과거 P2W(플레이투윈, 이기기 위한 게임) 모델에서 P2E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NFT(대체불가토큰) 적용 게임 서비스가 법적으로 불가하다. 과열된 시장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이재명·윤석열 ‘게임 아이템 확률 투명하게 공개’ 한목소리

대선 후보들이 게임 정책에 힘을 주고 있다. 오는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중요한 투표층으로 떠오른 2030세대가 게임에 관심이 많아서다. 후보들은 게임 전문 유튜브 채널에 나와 게임에 대한 생각을 말하거나 게임 공약을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게이머들이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는 확률형 아이템의 규제를 외쳤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20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두 차례에 걸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게임 공약을 발표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골자로 한 25번째 소확행 공약을 제시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정확한 구성 확률과 기댓값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을 할 때 필요한 무기나 보호장구 등의 아이템에 확률을 적용한 것을 말한다. 좋은 아이템은 나올 확률이 낮아 획득하기가 쉽지 않다. 유료로 판매되는 확률형 아이템은 그만큼 많은 돈을 써야 하는데, 과도하게 과금을 유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에는 확률 조작 의혹이 불거져 게이머들이 분노했다. 이에 이 후보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안을 내놓으면서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는 일부 업체의 태도가 아쉽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또 과도한 지출을 유발하는 다중 뽑기인 ‘컴플리트 가챠’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확률의 조작이나 잘못된 지시 행위를 적발하면 게임업체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게임 이용자 권익을 강화하기 위해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의 기능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역시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지금까지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 불투명한 정보로 유저들의 불신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는 ‘불공정 해소’라는 인식으로 확률형 아이템 관련 정보를 게임업체가 완전히 공개하도록 의무화해 이용자들이 직접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처럼 별도로 이용자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아직 공식적으로 게임 공약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 전문 유튜브 채널에 나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불합리한 시장 환경을 개선한다는 데 다른 후보들과 궤를 같이했다.

안 후보는 “확률형 게임 아이템은 ‘사기행위’라고 생각한다”며 “확률에 대해서 밝히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개입해서 조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처벌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보들은 요즘 뜨고 있는 NFT(대체불가토큰) 게임과 일명 돈 버는 게임인 P2E(플레이투언) 게임 등 가상자산(가상화폐)을 연계해 게임으로 수익을 내는 새로운 형태의 게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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