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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때 사기꾼은…" 베테랑 검사 레이더에 걸린 그들 수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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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90년 검사로 임용돼 올해로 33년째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베테랑 검사가 책을 냈다. 주제는 '사기', 소재는 '예방법'이다. 오랜 수사 경험 끝에 사기 사건에 일정한 패턴이 있단 사실을 깨닫게 됐다는 그는 "검사가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일하면서 지식을 얻게 됐다면 그건 공공재(公共財)"라며 책을 쓰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을 맡고 있는 임채원 검사(63·사법연수원 19기)가 주인공이다.

임채원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 본인 제공

임채원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 본인 제공

임채원 검사가 최근 펴낸 책  『임 검사의 사기예방 솔루션』(박영사)은 33년동안 각종 사기범과 그 피해자들을 만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접한 정보를 낱낱이 소개한다. 책엔 보이스피싱부터 수익형 호텔분양까지 세분화된 사기 유형별 패턴과 그 패턴에 부합하는 무수한 실제 사건이 나열돼있다. 사건마다 사기꾼이 파고든 전략, 피해자가 내보인 허점 등이 상세히 서술돼있기 때문에 독자는 "이럴 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란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책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데엔 임 검사 본인의 솔직한 경험담도 담았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의 한 검찰청에서 부장검사로 근무하던 때, 10년간 알고 지냈던 학교 선배에게 두 차례에 걸쳐 690만원을 빌려주고 끝내 받지 못한 사연을 책에 숨김없이 드러냈다.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검사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언제든 내게 일어나도 이상할 일 없는 게 사기라는 걸 독자들은 직관적으로 깨닫게 된다.

본인이 쌓은 경험과 지식을 공공재로 써달라는 그는 독자들에게 "○○공화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불고기를 먹고, □□커피를 마시세요!"라는 알쏭달쏭한 퀴즈 한 줄을 던지면서 사기 예방의 첫걸음을 뗀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퀴즈의 답이 뭔가?
○○은 '사기', △△은 '오삼', □□은 '드립' 이다. 사기공화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오삼불고기를 먹고 드립 커피를 마시라는 얘긴데, 오삼(5·3)은 사기예방을 위한 다섯 가지 사전조치(5)와 세 가지 사후조치(3)를 의미한다. 드립은 원두커피를 드립 추출하는 것처럼,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여과지를 통해 사기꾼의 말에서 허위·과장된 찌꺼기를 잘 걸러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전부 내 책에 소개하고 있는 사기 예방 솔루션이다.
임채원 검사의 사기예방 솔루션. 박영사

임채원 검사의 사기예방 솔루션. 박영사

임 검사가 책에 소개한 다섯 가지 사전조치는 ▶재고(再顧)하고 확인하라 ▶첫 만남의 나쁜 느낌을 믿어라 ▶세상에 공짜는 없다 ▶증거를 담아라 ▶반대문서를 받아라 등이다.

투자에 쓰겠다며 돈을 받아간 뒤 개인 채무 변제에 썼을 경우 투자 용처가 명기된 증빙 문서가 있으면 사기 혐의 입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 가지 사후조치는 ▶받을 가능성이 없으면 빨리 포기하라 ▶사기가 확실하면 빨리 고소하라 ▶외상합의는 절대 하지 말라 등이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
5년 전에 아는 사람의 권유로 '사기당하지 않고 사는 법'이란 주제의 무료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사기 예방 강연 영상 수십 건이 나온다. 평소에도 지인들에게 무료 법률 상담을 자주 해주면서 사기 예방이나 대처 노하우를 전달해왔다. 강연을 듣거나 무료 법률 상담을 받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책으로 써달라고 자꾸 그러길래 처음엔 거절하다가 끝내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국가 예산을 월급으로 받고 수사기관에서 상사들에게 교육·훈련을 받아가며 얻게 된 지식인만큼 그 노하우가 나만의 것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게 그 이유다. 계속 같은 패턴의 사기 사건이 반복되는 대한민국에서, 검사가 그런 지식을 알게 됐다면 국민에게 알려주는 게 의무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피해자들에게 안타까웠던 점이 있나?
증거 준비가 너무 안 돼 있고 사기꾼에게 쉽사리 사로잡힌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사기꾼의 특징은 인간관계와 돈 관계를 교묘히 섞어 구별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야금야금 돈을 빌리고 갚는 일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큰돈을 빌린다. 피해자가 "차용증이라도 써달라"고 하면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이깟 돈으로 차용증을 쓰자고 하냐"며 서운한 티를 낸다. 그럼 피해자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마련이고 그 순간 사기꾼의 최면에 걸려드는 거다. 나중에 피해를 호소하며 수사기관을 찾아와도 아무런 증거가 없으면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 문서를 받아내는 것, 하다못해 카톡 한 줄이라도 증거를 남겨놓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수사와 피해 회복에 있어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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