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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빅테크의 고무줄 검열?...정용진 인스타·함익병 유튜브 왜 반복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스타그램 [사진 로이터]

인스타그램 [사진 로이터]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빅테크의 자의적인 게시물 삭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멸공' 게시물이 삭제된 이유도, 복구된 이유도 인스타그램은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빅테크의 검열인가 아닌가. 논란은 유튜브 등 다른 플랫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수십억 명이 쓰는 SNS, 사용자를 검열하고 있나.

무슨 일이야

인스타그램 측의 게시물 삭제 통보 사실을 알린 정 부회장의 게시물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측의 게시물 삭제 통보 사실을 알린 정 부회장의 게시물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5일 정용진 부회장은 자신이 멸공이란 단어가 들어간 게시물이 삭제 당했다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혔다. 그는 인스타그램의 삭제 통보 원문을 공개하며 "이게 왜 폭력 선동이냐,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인스타그램은 정 부회장에게 '폭력 및 선동에 관한 가이드라인 위반'을 이유로 삭제했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다음 날 인스타그램 측은 삭제됐던 멸공 게시물을 복구했다. 시스템 오류로 잘못 삭제됐다는 해명과 함께.

게시물 삭제, 기준이 뭐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4월 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SG 랜더스와 부산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관중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4월 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인천 SSG 랜더스와 부산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관중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멸공 삭제’는 소셜미디어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인스타그램의 공식 가이드라인의 '폭력' 항목은 높은 수준의 폭력을 행사하거나 옹호하는 등 직접 범죄와 관련한 내용을 삭제한다고 규정한다. 폭력의 예로 살인·납치 등을 들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특정 이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멸공'이 이 규정을 어겼다고 보긴 어렵다.

논란 이후 '멸공'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급증하면서 12일 현재 5000여개 이상 게시됐지만, 삭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정 표현에 대해 일관된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인스타그램 측 관계자는 "각 게시물의 삭제 이유는 공개할 수 없다"며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18년 6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페이스북의 게시물 삭제 조치에 항의하는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6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페이스북의 게시물 삭제 조치에 항의하는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슷한 논란은 앞서 페이스북에서도 불거졌다. 2018년 한 여성단체가 상의를 벗고 벌인 시위 사진을 페이스북이 '나체 이미지·성적 행위에 관한 페이스북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삭제하면서다. 당시 남성의 나체 사진은 삭제되지 않아, 페이스북이 게시물을 편향적으로 삭제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모호한 삭제가 잇따르는 배경엔 인공지능(AI)의 한계도 있다. 소셜미디어가 게시물 배열에 활용하는 AI 알고리즘이 음란물과 여성의 나체 시위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긴 사고들도 있다는 것.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빅테크 기업의 게시물 삭제 99% 이상은 인공지능에 의존한다"며 "게시물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삭제 조치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스스로 기술력의 한계를 인정한 적은 없다.

삭제·복구, 기준은 여론?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 관리자의 판단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유튜브 ‘의학채널비온뒤’ 측은 일부 영상이 유튜브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삭제됐다고 밝혔다. 삭제된 영상은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 씨가 코로나19 백신의 효과에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다. 함씨는 “언론탄압”을 주장해 논란이 됐다.

코로나19 관련 음모론을 담은 게시물을 게시 금지한다는 내용의 유튜브 가이드라인. [사진 유튜브]

코로나19 관련 음모론을 담은 게시물을 게시 금지한다는 내용의 유튜브 가이드라인. [사진 유튜브]

사건이 '검열 논란'으로 번지자 유튜브는 삭제 하루 만인 7일 해당 영상을 복구했다. 하지만 복구된 영상은 유튜브 게시물 운영 가이드라인에 명백히 어긋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튜브는 '코로나19 백신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주장'의 영상 게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 유튜브가 여론을 의식해 자의적으로 영상을 복구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튜브 측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의 효과를 부정하는 내용을 게시하는 건 금지하고 있는 게 맞다"면서도 "함 씨의 영상은 내부 직원들이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복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 포털은 어때? 

네이버가 자체 개발한 악성댓글 AI 필터링 기술 '클린봇' [사진 네이버]

네이버가 자체 개발한 악성댓글 AI 필터링 기술 '클린봇' [사진 네이버]

뉴스댓글과 커뮤니티 서비스를 운영하는 네이버·카카오(다음) 등 포털도 게시물 삭제나 댓글 조작 문제로 홍역을 치러왔다.
네이버는 민감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결정은 AI보다 사람이 직접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있지만, AI의 부정확성으로 생기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네이버 관계자는 "음란물 등 불법성이 짙은 게시물 외에는 신고를 받고, 최종적으로 직원이 직접 보고 판단한 후 삭제한다"고 말했다.

판단이 모호한 게시물은 삭제가 아니라 원하는 사용자만 볼 수 있게 하는 '클린봇' 시스템도 활용한다. 욕설이나 수위 높은 비난은 AI가 '가리기' 처리하는 방식이다. 원하는 사용자는 클린봇을 해제하고 읽을 수 있다.

'고무줄 잣대' 논란 피하려면

수십억 명에게 서비스하는 빅테크의 검열 논란은 해외에서도 뜨거운 주제다. 지난해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직후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 정지하자, 그와 앙숙인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도 나서 대변인을 통해 "기본권 제한이 법이아닌 특정 회사 조치에 의해 이뤄져선 안된다"고 밝혔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전 검열"이라고 비판했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빅테크가 여론을 살피며 일관성 없게 원칙을 적용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사안이나 여론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원칙에 따라 가이드라인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 교수는 "사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게 삭제 조치 등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빅테크 기업이 게시물 삭제 이유를 더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세욱 책임연구위원은 "게시물을 삭제당한 사용자가 빅테크 기업에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소셜미디어 운영 기업은 책임감을 갖고 게시물을 삭제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AI의 오류로 인한 사용자 피해를 빅테크 기업이 외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멸공' 게시물은 논란이 커지니 복구됐지만, 대다수 사용자들은 이의 제기도 제대로 못 한다"며 사용자가 게시물 삭제로 피해를 입었을 때 적극적으로 복구해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