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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는 불씨만 던진 셈"…불심 뿔나게한 文정부 사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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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불교계를 향해 ‘봉이 김선달’이란 표현을 써 격한 반발을 부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달 초 전국 사찰을 돌며 재차 사과했다. 그러나 불교계가 ‘정청래 제명·탈당’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으면서 갈등의 골은 메워지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호남·영남·충청지역 조계종 소속 사찰 10여곳을 방문했다. 정 의원이 문화재 관람료 부당 징수 사례로 언급한 경남 합천 해인사 등 조계종 주요 교구(종교 행정단위) 본사(本寺)들이었다. 민주당 선대위 인사는 “정 의원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직접 사과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5일 국정감사에서 사찰이 징수하는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에,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빗대며 불교계의 격한 반발을 불렀다. 정 의원은 이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찾아가거나, 페이스북·공문으로 사과 글을 띄우면서 다섯 차례 사과를 했다.

천막농성과 남북정상회담

그러나 불교계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조계종은 21일 조계사 앞에서 승려 5000여명이 참석하는 ‘종교편향 규탄 승려대회’를 연다. “정 의원이 스스로 탈당하거나, 민주당이 그를 제명하라”(조계종 인사)는 강경한 입장도 여전하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이 평양 옥류관에서 오찬을 가진 후 방북에 동행한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가장 왼쪽이 불교계를 대표해 방북한 원택스님.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이 평양 옥류관에서 오찬을 가진 후 방북에 동행한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가장 왼쪽이 불교계를 대표해 방북한 원택스님.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민주당에선 성난 불심(佛心)이 단순히 정 의원 발언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들어 발생한 일련의 사건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선대위 실장급 의원은 1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 불교계와의 마찰이 문제의 본질에 가까울 수 있다. 정 의원은 켜켜이 쌓인 불만에 불씨를 던진 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선 ‘자승스님 퇴출 농성’을 시작점으로 꼽는다. 2017년 8월 명진스님은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자승스님을 겨냥해 “조계종에서 퇴출시키라”는 주장을 펴며 조계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당시 명진스님은 조계종에서 제명돼 자승스님 등 조계종 지도부와 첨예하게 갈등을 빚던 차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현 민주당 의원)이 심야에 명진스님의 단식 농성장을 찾아 그를 위로했다. 그러자 조계종 지도부에선 “청와대가 왜 명진을 편드느냐”는 불편한 시각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조계종 본산 조계사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왼쪽). 조계종 종단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정청래 제명'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뉴스1

서울 종로구 조계종 본산 조계사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왼쪽). 조계종 종단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정청래 제명'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뉴스1

불심을 자극한 두 번째 사건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벌어졌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할 당시 조계종에선 대북 창구이던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원택스님이 대표로 참석했다. 하지만 당시 4대 종단(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 중 유일하게 천주교만이 평양 현지에서 북측 천주교단과 단독 회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조계종에선 “청와대가 천주교만 배려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후 천주교 신자인 문 대통령이 2018년 10월과 지난해 10월 두 차례에 걸쳐 로마 교황청을 방문해 미사를 드리는 장면이 TV에서 중계되자 불교계에선 “종교편향” 주장이 일었다. 최근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천주교·개신교와 함께 ‘캐럴 활성화 캠페인’(지난해 12월 1~25일)을 기획했다가 불교계 반발 때문에 접은 일도 있다.

지난해 7월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전북 김제 금산사에 마련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대종사의 빈소를 찾아 합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전북 김제 금산사에 마련된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대종사의 빈소를 찾아 합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불교계 반발이 3·9 대선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전전긍긍하면서 대비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에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경남 양산 통도사를 방문했고 이 후보 배우자 김혜경 씨도 지난해 11월부터 꾸준히 전국 주요 사찰을 돌고 있다. 청와대에선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6일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을 만나 불심을 달랬다.

민주당 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국감 발언을 이유로 정 의원을 제명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도부 의견이 있다”며 “현재로선 선거 악영향을 우려해 지도부가 불교계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진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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