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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반짝 호황 '땡처리' 눈물…"매물 포화" 거래 뚝 끊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폐업철거를 할 만큼 다 한 상태라, 이번달엔 잡혀있는 일이 없어요.” 
서울·인천·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철거 전문업체에서 18년간 근무해온 윤모(50대·남)씨는 최근 일감이 줄었다고 했다. 코로나 불황으로 호황을 누릴 것 같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고 한다. 윤씨는 “폐업 철거를 할 만큼 다 한 상태다. 이후에 입주하는 사람이 없으니 일이 더 없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철거나 폐업 관련 업체들이 반짝 호황을 누리기는 했다. 윤씨는 “처음 코로나가 터진 해에는 전년 대비 30% 매출이 올랐었다. 작년 전반기까지 유지되다가 지금은 코로나 이전보다 더 줄었다”고 했다. 그는 “폐기물 처리비용도 오르고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올해 좋아질 거란 기대는 안 한다”고 덧붙였다.

불황 속 호황 업체 “바쁘지 않다” “공황상태” 

지난해 1월 1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폐업한 가게 창문에 ‘장사하고 싶다’는 종이가 붙어 있는 모습. 뉴스1

지난해 1월 1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폐업한 가게 창문에 ‘장사하고 싶다’는 종이가 붙어 있는 모습.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바빴던 ‘불황 속 호황’ 업체들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폐업가게 철거나 재고 물품 정리,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코로나 초창기에는 이익을 봤다가 불황에 빠졌다. 폐업과 창업의 ‘선순환’이 깨지면서 불황이 도미노처럼 이어졌다는 게 상인들의 하소연이다.

재고품을 한꺼번에 매입해 판매하는 소위 ‘땡처리’ 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5년 경력의 땡처리 전문업체 대표 김대한(50)씨는 “코로나 초창기에는 폐업하는 가게가 말도 못하게 나왔다. 전년 대비 2배가량 소나기 내리듯 쏟아져 매출도 올랐었다”고 말했다. 그는 “1~2월이 바쁜데 올해는 이상하게 바쁘지 않다. 땡처리 물품이 창고에 쌓여있다. 소상공인들도 공황상태”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의 폐업 지원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였으나 코로나가 장기화하며 주춤한 형국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국민의 힘 김상훈 의원에 제출한 ‘최근 5년간 희망리턴패키지 사업 현황’에 따르면 소상공인이 점포철거 지원이나 사업정리 컨설팅 등 폐업지원을 받은 사례는 2019년 1만3303건, 코로나의 영향을 받은 2020년에는 2만5410건으로 급증했으나 지난해에는 11월 초 기준 1만9714건으로 집계됐다.

폐업 지속하자 쌓이는 중고물품…거래도 뚝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 일부 상점은 천막으로 덮여있었고, 거리를 걷는 사람도 1~2명에 불과했다. 판매를 준비하는 상인들 외에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함민정 기자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 일부 상점은 천막으로 덮여있었고, 거리를 걷는 사람도 1~2명에 불과했다. 판매를 준비하는 상인들 외에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함민정 기자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서 한 상인이 중고 밥솥을 수세미로 닦고 있다. 함민정 기자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서 한 상인이 중고 밥솥을 수세미로 닦고 있다. 함민정 기자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 거리에서 중고 밥솥을 수세미로 닦고 있던 임모(60대·여)씨는 “폐업한 곳에서 들어오는 중고 물품이 많지 않다. 식당이 잘 돼야 우리도 잘 될 텐데 영업시간 제한을 두는 방역지침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폐업한 가게에서 온 밥솥은 세척해 다시 팔린다고 한다. 30여년간 이곳에서 중고 주방기구를 판매해 왔다는 그는 “요즘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국내 최대 중고 주방기기 시장인 황학동 주방가구 거리는 1980년대부터 폐업한 가게에서 나온 물품들을 수리하고 세척해 중고로 재판매하는 것이 활성화된 장소였다. 수많은 상인은 20~30년간 같은 자리에서 일을 해왔다고 한다. 활기를 띠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폐업이 늘어 중고 매물이 포화상태 수준으로 쌓여간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30년간 이 거리에서 중고 업소용 냉장고와 오븐 등 중고 주방기기를 판매해왔다는 이흥수 실장은 “인건비를 감당하는 게 가장 어렵다. 한때 세척·수리·판매 담당 직원이 20~30명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4~5명”이라며 “매출도 과거보다 25%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15년간 중고 주방기구 등을 판매해 온 김모(46)씨도 “오늘 물건 나간 것 한 개도 없다. 가끔 식당 폐업 철거와 정리를 돕고 있다”고 했다.

“폐업 물품 내놔요” 당근마켓 문의는 ‘꾸준’

최근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 올라온 폐업 정리 주방기기들. 당근마켓 앱 캡처

최근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 올라온 폐업 정리 주방기기들. 당근마켓 앱 캡처

한편 코로나 이후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는 ‘폐업정리 붕어빵 기계 가격 내림’ ‘가게 정리로 육수 냉장고 팝니다’ 등 폐업 물품을 중고 매입처에 팔지 않고 직접 판매한다는 글이 꾸준히 올라왔다. 한 이용자가 처분 방법에 대한 문의글을 올리자 “코로나 여파로 중고 매입 가게에 물량이 증가하고, 수요가 없다 보니 직접 문의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폐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많아지며 생긴 현상”이라며 “중고 도매시장이 포화상태이다 보니 당근마켓 같은 곳을 활용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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