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제야 깨달았다" …'김종인 매직' 결별한 '윤석열 매직'통할까

중앙일보

입력

등 떠밀린 선택이 아니어서 고립무원(孤立無援ㆍ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외로이 서 있음)이라 일컬을 순 없다. 하지만 결국 택한 건 홀로서기로, 단기필마(單騎匹馬ㆍ혼자서 한 필의 말을 탐)로 대선이란 전장을 뚫어야 한다.

대선을 62일 앞두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선대위 해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후보 직할 체제 강화'라거나 '실무 중심형' 등 수식어가 붙었지만, 핵심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의 결별이다. 박근혜ㆍ문재인 두 대통령의 당선에 적잖은 역할을 하면서 ‘킹 메이커’라 여겨지던 '김종인 매직'과의 결별이기도 하다.

윤 후보는 5일 기자회견에서 “조언과 총괄선대위원장으로역할 한 김종인 위원장께 정말 감사의 말씀 드린다. 앞으로도 좋은 조언을 계속해 주시기를 부탁드렸다”고 말했지만, 회견 직후 김종인 ‘전’ 위원장은 “그 정도의 정치적 판단 능력이면 더이상 나하고 뜻을 같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 같은 대선은 내가 경험해본 적이없다”라고도 하는 등 직전까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의 사령관이던 그가 불쾌감 표시를 넘어 비판의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 및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해산 및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윤 후보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김 위원장과의 끈을 끊어낸 것은 위기감 때문이다. 윤 후보 측 관계자는 “지지율이 줄줄이 떨어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듯 내부에 위기와 긴장감이 팽배했지만 마땅한 활로가 없었다”며 “김 위원장 합류 이후 기대만큼의 효과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결국엔 초심으로 돌아가 후보가 직접 뛰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초심이란 6월 29일 이른바 ‘정치 선언’을 할 때로 돌아가 남은 기간 전력 질주하겠다는 의미다. 당시 윤 후보는 정권교체 여론을 등에 업고 2030과 중도층 할 것 없이 많은 기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검사 윤석열의 공정’이란 브랜드를 세웠는데, 이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모두 다, 오롯이 후보인 제 책임”이라면서 말문을 연 윤 후보의 기자회견에도 이런 의지가 담겨 있었다. 윤 후보는 경력 위조 의혹에 휩싸인 부인 김건희씨 등 처가 문제를 두고 “제 가족과 관련된 문제로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제가 일관되게 가졌던 그 원칙과 잣대는 저와 제 가족, 제 주변에도 모두 똑같이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제 깨달았다”며 2030 세대에 대한 얘기도 길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청년층이 세상을 가장 넓게 본다”, “청년의 의견을 듣고 거기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겠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윤 후보 지지그룹을 세대별로 따질 때 2030세대의 낙폭이 가장 크다. 이날 발표된 2030 세대 대상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윤 후보는 18.4%로 이재명(33.4%) 후보에겐 두 배 가까이 밀렸고, 안철수(19.1%) 국민의당 후보에게도 뒤졌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 지난 3~4일 18세~39세 1024명 조사)

박원호(정치외교학부) 서울대 교수는 “2030 세대는 당파적 성향이 약하고 현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그들의 지지가 빠지면 윤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여기엔 여전히 껄끄러운 이준석 대표와의 관계가 주요 원인이라는 게 자체 분석이다. 윤 후보는 회견에서 "저나 이 대표나 국민과 당원이 정권교체에 나서라고 뽑아줬다. 이 대표께서 당 대표로서의 역할을 잘 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의 극단적인 대립을 피하기 위한 '휴전 제안'의 뉘앙스다.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는 “김종인ㆍ이준석을 업고 중도와 2030을 중심으로, 외연 확장 전략을 펴겠다는 당초 계획엔 일단 빨간불이 켜진 것”이라며 “스스로 약점을 보완해가며 윤석열식의 정면돌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5일 외부일정을 마치고 당사로 들어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김경록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5일 외부일정을 마치고 당사로 들어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김경록 기자

그간 “자신 없어 회피한다”는 비판을 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TV 토론 문제에도 전향적으로 나섰다. 윤 후보는 회견에서 “3회의 법정토론으로는 부족하다. 캠프 실무진들에게 추가 토론에 대한 협의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회견과 별개로 SNS에는 “3회론 턱없이 부족하다”라고도 썼다. TV토론은 후보가 온전히 혼자서 치러내야 하는 전장으로, 수세적으로 비치던 태도를 확 바꿔 공세적으로 치고 나가겠다는 선언이다.

윤 후보의 홀로서기 선언을 보는 당 안팎의 시각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출신 고위 인사는 “지지층의 위기감을 일깨워 보수 결집 효과를 일으켜 지금의 답답한 국면을 전환하는 계기로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벼랑 끝 카드를 급하게 던졌다. 후보가 선대본부 업무를 일일이 챙길 수는 없다”며 “지금부터라도 이런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거론되는 게 이른바 ‘보완재론’으로, 경선 과정에서 경쟁했던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청년층에 강점이, 유 전 의원은 중도 확장력이 있다. 둘 다 윤 후보의 약점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 모든 분의 힘을 합쳐서 우리가 같은 생각으로, 단일대오로 선거를 치러야 하므로 필요한 모든 일은 제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윤 후보의 최측근으로 이른바 '핵관(핵심관계자)'으로 불리던 권성동 사무총장 겸 선대위 종합지원총괄본부장, 윤한홍 사무부총장 겸 선대위 종합상황실 총괄부실장도 당직과 선대위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 뜻을 밝혔다. 실무형 캠프의 선대본부장은 4선인 권영세 의원이 맡았고, 당 사무총장도 겸직한다.

'김종인 매직' 과 결별한 '윤석열 매직'이 통할지 관심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