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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기자 가족도 뒤진 공수처…휴대폰 압수수색까지 검토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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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4일 오전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4일 오전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이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본지 A기자의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공수처는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에서 공범이 될 수 없는 A기자의 착·발신 통화 내역 등을 조회하고 이를 통해 A기자 어머니의 신상 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 불법 사찰 논란을 부채질했는데, 이보다 더 심한 강제 수사까지 검토했다는 이야기다.

“언론자유 침해” 내부 반발에 압수수색 계획 접어

4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 수사3부(부장검사 최석규)는 지난해 5월 말 ‘공제 4호’ 번호로 이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을 입건해 수사하기 시작한 이후 A기자의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검토했다고 한다. 휴대전화를 압수해 취재 경위를 낱낱이 들여다보려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고 영장도 발부되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문제 제기가 일어 압수수색을 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검토한 건 아니다. 우선 공수처 수사와 별개로 진상조사를 펼치던 대검찰청 감찰부(부장 한동수 검사장)에 “조사 결과를 임의제출 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세 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매번 대검 감찰부는 협조를 거부했다.

그러는 사이 대검 감찰부는 이 고검장 수사팀 소속이 아닌 전국의 검사 22명을 유출 의심자로 특정했다. 이들이 이 고검장 기소 직후 형사사법시스템(킥스)에 공유된 공소장 내용을 열람했기 때문이다. 유출 의심자 중에는 이 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 B검사장도 포함됐다. 대검 감찰부는 B검사장의 공용 PC를 들여다본 결과, 이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열람·복사한 뒤 워드프로세서로 옮겨 편집·저장 등의 작업을 한 흔적으로 추정되는 임시파일(확장자 ‘tmp’)을 발견했다. 진상조사에 앞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 고검장 수사팀에서 공소장이 유출된 것으로 의심했지만, 예상과 다른 의외의 결과가 나왔고 대검 감찰부는 이 사실을 공수처에 공유하길 거부했다.

자료 제출 거부당한 공수처, ‘통신자료 조회’ 쉬운 길로

대검 감찰부가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면 공수처가 압수수색해 자료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관련 사건에서 수차례 대검 감찰부를 압수수색했던 것과 대조된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비공식적으로 B검사장의 공소장 유출 정황을 인지하고도 여권 실세인 이성윤 고검장과 박범계 장관 등의 눈치를 보며 압수수색을 미루는 게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공수처는 대검 감찰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를 해놓는 안 등을 검토했지만,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증거인멸의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대검 감찰부를 압수수색하는 대신 공수처는 과거 수사기관이 답습했던 ‘쉬운 길’을 택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8월 법원에서 통신 영장을 발부받아 A기자의 통신사실확인자료(착·발신 통화내역 등)를 파악한 뒤 공소장 내용이 보도됐던 지난해 5월 초 A기자와 전화통화 등을 한 상대방의 통신자료(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 등)를 열람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A기자의 가정주부인 어머니 등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도 통신자료를 조회당했다. 이후 공수처는 지난해 11월 말 두 차례에 걸쳐 대검 정보통신과 서버를 압수수색해 수원지검 수사팀 전·현직 검사 7명의 e메일, 전자결재 등 기록을 확보하기도 했다.

‘선진 수사 기관’을 자임한 공수처가 검찰,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과 다를 바 없는 수사 행태를 보인 것이다. 사건과 무관한 기자 가족에게도 무차별적으로 통신 조회를 했다는 점에서 검·경 보다도 과도하게 통신자료 조회를 남발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범죄와 관련 범죄만 수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판 성향의 기자를 감시할 목적으로 불법 사찰한 게 아니냐”라는 의혹도 불거진다. 기자는 고위공직자도 아니고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에서 성명 불상 검찰 관계자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와 관련해 공범도 될 수 없다.

공수처가 권력 비판 보도와 관련해 강제로 기자의 취재원을 캐려 한 셈이라는 점에선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했다”라는 목소리가 크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공수처 통신자료 조회 기자만 171명…총 314명

공수처의 불법 사찰 논란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이날(4일) 오후 6시 현재까지 공수처에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기자는 171명에 이른다. 아사히신문 등 외신 기자 4명이 포함됐다. 여기에 기자의 가족과 국민의힘의 의원 86명,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한국형사소송법학회 24명 등을 합하면 총 314명이 조회를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총 조회 건수는 424건이다. 공수처는 “과잉 수사였을 수는 있으나 적법한 수사였다”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5월 12일 당시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부장검사)은 이성윤 고검장에 대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를 중단하도록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 당일 공소장이 킥스에 업로드됐는데, 다음 날 오전부터 공소장 공소사실 내용 편집본을 촬영한 이미지 파일이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유포되면서 같은 날 오후 언론 보도로 이어졌다. 그러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같은 달 14일 대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고, 같은 달 말 공수처가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의 고발장을 근거로 수사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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