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합훈련 없애야 종전선언 논의한다는데...美 "훈련 예정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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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대화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 가운데 미국은 연합훈련 일정 변경은 없다는 점을 일찌감치 확인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종전선언 추진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이 연기될 수 있느냐'는 질의에 "연합훈련은 논의된 대로 진행되며 훈련 일정엔 변화가 없다"고 일축했다. [A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종전선언 진전을 위해 올해 한·미 연합훈련이 연기될 가능성을 묻는 질의에 “올해 훈련은 (지난해)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논의된 대로 진행되며, 훈련 일정엔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달 2일 한·미 국방장관은 제53차 SCM을 열고올해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연합지휘소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또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우리 군이 주도하는 미래연합사령부 완전운용능력(FOC) 평가를 시행하기로 합의하는 등 연합 방위태세가 한·미 동맹의 핵심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커비 대변인은 이날 연합훈련 시작 시점과 야외 실기동 훈련 진행 여부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연합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란 점을 강조하며 “한·미 동맹은 최고의 준비태세를 유지해 한국을 위협이나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연합 태세의 합법적·방어적 성격을 강조하는 동시에 연합 훈련을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규정한 북한의 반발을 일축한 셈이다.

"재미없는 전주곡" 경고에도 美 '원칙론' 고수

종전선언은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슈 중 하나로, 지난해 8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연합훈련이 남북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공개 경고를 날렸다. [연합뉴스]

연합훈련은 북한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슈 중 하나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8월 1일 “(연합훈련 실시는) 북남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고, 북한 대외용 주간지 통일신보 역시 같은 달 8일 “외세와의 합동군사연습은 조선 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고 전쟁 위험을 몰아오는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보도했다.

연합훈련은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주력과제인 종전선언 진전 여부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북한이 종전선언 논의의 선결 조건으로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0월 28일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 직후 박지원 국정원장의 보고 내용을 토대로 "종전선언 논의를 하려면 만나야 하는데, 만남을 위한 선결 조건을 북한이 제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연합훈련 중단, 광물 수출 및 석유 수입 허용 등"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처럼 노골적인 북한의 조건 제시에도 미국은 대북 원칙론을 유지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화 재개용 인센티브'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과의 조건없는 대화를 추구하면서도 별도의 유인책은 제공하지 않고, 북한 역시 선결 조건을 앞세우며 대화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북·미 간 대치 국면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文 임기 말 깊어지는 '연합훈련' 딜레마

일각에선 미국이 원칙론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남북관계 복원에 매몰된 채 재차 연합훈련 연기론 등을 공론화할 경우 문재인 정부 임기 말 한·미 간 의견차가 부각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3일 신년사에사도 "정부는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까지 남북관계 정상화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길을 모색하겠다"며 북한과의 대화에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 통일부와 국정원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및 남북 대화 진전 등을 명분으로 연합훈련 연기론을 공론화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협의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하반기 연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제7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과 서욱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실제 지난해 여름 연합훈련을 앞두고서도 정부 고위 인사들은 공개적으로 연합훈련 연기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실상 미국과 각을 세웠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 7월 30일 “개인적으로는 물론 당국자로서도 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라며 훈련 연기론을 공론화했고, 그로부터 약 1주일 뒤엔 박지원 국정원장이 “대화와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선 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국회 정보위에서 밝혔다.

당시 문 대통령은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는 원론적 지시만 내렸고, 지난해 하반기 연합훈련은 8월 16일부터 주말을 제외한 9일 일정으로 예정대로 진행됐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