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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평정 도전 유도 남매 "어흥, 호랑이 힘아 솟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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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비상을 꿈꾸는 호랑이 띠 유도 기대주 박은송(오른쪽)과 전승범. 정시종 기자

새해를 맞아 비상을 꿈꾸는 호랑이 띠 유도 기대주 박은송(오른쪽)과 전승범. 정시종 기자

 유도 여자 57㎏급 박은송(24·동해시청)과 남자 60㎏급 전승범(24·포항시청)은 학창 시절 '괴물'로 통했다. 고교 3학년 때 전국 대회 8관왕을 차지하면서다. 1년 동안 한 번도 지지 않고 32연승(한 대회 평균 4경기)을 기록했다. 둘은 큰 기대를 모으며 용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국가대표의 벽은 높았다. 대학 4년 내내 국가대표 문을 두드렸지만, 좀처럼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2022년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통해 나란히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입촌했다. 새해 태극 도복을 입고 금빛 메치기를 꿈꾸는 98년생 범띠 박은송과 전승범을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여자 57㎏급 차세대 에이스 박은송 #제2의 최민호 남자 60㎏급 전승범 #고교 8관왕 출신 유도 천재 #단신 극복하고 우뚝 선 공통점

박은송은 "고3 때 나간 전국대회를 싹쓸이했는데, 시상식마다 남자부엔 승범이가 있더라. '나도 독하지만, 저 친구도 참 독하게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태극마크까지 달게 돼 기분이 묘하다"고 말했다. 전승범은 "올해가 호랑이의 해라서 그런지, 힘이 솟는 것 같다. 이 기세로 출전 대회마다 친구와 함께 정상에 서겠다"고 입을 모았다.

박은송(왼쪽)과 전승범은 고교 시절 전국대회 8관왕을 차지한 유도 천재다. 두 사람은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동반 출전이 목표다. 정시종 기자

박은송(왼쪽)과 전승범은 고교 시절 전국대회 8관왕을 차지한 유도 천재다. 두 사람은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동반 출전이 목표다. 정시종 기자

박은송은 실업팀에 지난해부터 무서운 상승세다. 4년에 걸쳐 부족했던 근력을 끌어올리면서다. 그는 키 1m58㎝로 같은 체급 선수들보다 평균 6~7㎝ 작다. 단신 선수는 팔 길이도 짧아 도복 잡기 싸움이 불리하다. 학창 시절 또래와 맞대결에선 타고난 스피드로 약점을 극복했다. 그러나 성인 무대에서 만난 노련한 선배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현재 박은송의 소속팀 감독이자, 지난해까지 여자 대표팀 사령탑을 지낸 배상일 감독은 "힘을 키우는 것이 짧은 리치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박은송은 대학 4년 내내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졸업을 앞둔 지난해 초 그는 데드리프트 130㎏을 들었다. 보통 선수들보다 무려 20㎏ 더 든다.

근력이 붙으면서 작은 키는 최고의 무기가 됐다. 무게 중심이 낮은 그가 순간적으로 상대 품을 파고들어 업어치기를 시도하면 상대는 매트에 뒹굴었다. 대부분 무릎을 꿇으면 웅크린 자세로 엎어치기를 하는데, 박은송은 서서 상체 힘만으로 상대를 던진다. 일명 '뽑아서 업어치기'로 힘이 월등한 유럽 선수들이 구사하는 기술이다. 청주 출신인 그는 7세 때부터 관장이었던 외할아버지 유도장에서 놀며 일찌감치 기술을 습득했다.

박은송은 "꼬마 때부터 지고는 못 살았다. 2등만 해도 밤새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 키 때문에 유도를 못 한단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며 이를 악문 계기를 전했다. 마침 여자 57㎏급은 세대교체 시기다. 지난해 도쿄 올림픽 때까지 국내 랭킹 1위를 다퉜던 김지수(세계 랭킹 17위), 김잔디(48위)가 은퇴했다. 큰 어려움 없이 국가대표 1진의 꿈을 이뤘다. 박은송은 "유도는 단 한 번의 기회를 포착해 넘기는 종목이다. 내 유도 인생의 기회도 꽉 잡겠다"고 말했다.

박은송(왼쪽)은 "힘들 때 서로 응원해줄 친구가 대표팀에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전승범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시종 기자

박은송(왼쪽)은 "힘들 때 서로 응원해줄 친구가 대표팀에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전승범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시종 기자

친남매도 아닌데 박은송과 전승범은 똑 닮았다. 전승범도 친구처럼 단신 선수로 성공한 사례다. 그 역시 키 1m62㎝로 경쟁자보다 6~7㎝ 작은 편이다. 그는 데드리프트 190㎏을 든다. 보통 대표 선수는 170㎏ 수준이다. 초등학교 때까지 육상부로 활약해서 스피드에선 어떤 상대를 만나도 밀리지 않는다. 주 특기가 업어치기인 것도 박은송과 같다. 전승범은 제2의 최민호를 꿈꾼다. 한국 60㎏급 레전드 최민호(은퇴)는 두 차례 올림픽(2004년 동·2008년 금) 메달을 따냈다. 그는 단신(1m63㎝)으로 데드리프트 230㎏을 드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화려한 기술로 세계를 호령했다. 전승범은 최민호 계보를 이어 경량급 최강자에 도전한다.

박은송과 달리, 국가대표 2진인 전승범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60㎏급은 전통적으로 강자가 많다. 2014년부터 8년째 최강자로 군림하는 김원진(4위)을 비롯해 이하림(41위), 최인혁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박은송은 "승범이는 용인대 유도 17학번의 '희망'이자, '에이스'로 불리는 친구다. 나보다 더 잘해낼 것"이라고 응원했다. 전승범은 "은송이 응원을 받으니, 꼭 1진이 돼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며 웃었다. 전승범과 박은송의 새해 첫 목표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이다. 아시안게임은 올림픽과 달리, 세계 랭킹 제한이 없다. 국내 선발전과 최근 국제 대회 성적이 중요하다.

둘은 아직 국제 대회 경험이 없다. 남녀 대표팀은 다음 달 유럽 전지훈련(포르투갈·프랑스)을 떠난다. 이 기간 두 차례 국제 대회도 참가한다. 본격적인 포인트, 경험 쌓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승범은 "요즘 세대는 외국 선수라고 해서, 큰 무대라고 해서 긴장하지 않는다. 첫 국제 대회에서 맹수처럼 달려드는 모습 보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박은송은 "친구와 함께 세계 유도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 호랑이 힘아 솟아라"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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