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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딛고 또 일 냈다···韓, 조단위 이집트 사업 수주 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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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국 원자력 발전 업계가 또 일을 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사업 참여를 위한 단독 협상에 나선다. 원전 수출에서 조단위가 넘는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2008년 UAE 바라카 원전 이후 처음이다.

UAE 이후 최대 사업 수주 임박

이집트 엘다바 원전 개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집트 엘다바 원전 개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일 한수원은 이집트 엘다바 원전의 2차 건설사업 부문 계약 체결을 위한 단독 협상 대상자가 됐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내년 2월까지 가격 등 세부 조건 협상을 마무리한 뒤, 4월 말쯤 정식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아직 실제 계약을 체결하진 않았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사업 수주가 유력하다.

이집트 엘다바 원전은 2017년 러시아 JSC ASE사가 이집트 원자력청(NPPA)에 전체 사업을 따냈다. 러시아 JSC ASE사는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인 로사톰의 자회사다. 1200㎿급 러시아 원전인 VVER-1200 노형 4개를 짓는데, 총 300억 달러(약 35조원)가 들어간다. 올해 건설을 시작해 2028년 1호기 상업운전이 목표다. 한수원이 단독 협상에 들어간 것은 이 중 터빈 건물 등 2차 계통 사업이다. 전체 사업의 약 5~10% 정도 규모다. 한수원은 비밀유지를 이유로 정확한 계약금액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최소 조단위 규모의 계약으로 추산된다.

사막 건설 경험에…“러시아가 요청”

사진은 2018년 3월 건설이 완료된 바라카 원전 1호기(오른쪽) 모습. 왼쪽은 2호기. 연합뉴스

사진은 2018년 3월 건설이 완료된 바라카 원전 1호기(오른쪽) 모습. 왼쪽은 2호기. 연합뉴스

원전은 사업 기간이 길고 규모가 커서 전체 사업을 수주해도 일부 사업은 다른 국가나 업체와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UAE 바라카 원전 사업을 미국의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사와 함께했다.

다만 이번 사업 참여는 한국의 원전 수출 경쟁국인 러시아가 먼저 요청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러시아는 2019년부터 자국 업체가 아닌 한수원을 파트너로 정하고 협상을 진행해 왔다. 한국이 UAE 바라카에 원전을 건설하면서 유일하게 사막 원전 건설 경험이 있다는 점을 높게 샀다는 후문이다. 이집트 엘다바 원전도 사막에서 건설해야 한다. 특히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원전 최대 수출국이다. 한수원은 이번 사업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른 러시아 해외 원전 수출도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탈원전에 고사 위기 업계 ‘숨통’

이집트 엘다바 원전 사업에 참여하면, 탈원전으로 고사 직전인 업계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현재는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신한울 3·4호기를 비롯한 신규 원전 건설이 모두 중단돼 있다. 한수원은 “계약에 성공하면 현대건설과 두산중공업이 시공을 맡고 국내 업체가 기자재 공급에 참여한다”고 했다.

다만 이번 원전 수출은 주로 부속 건물 시공과 터빈 등 일부 기자재에 한정해 있다. 한국이 자랑하는 한국형 원전의 주기기 등 1차 계통 분야는 러시아가 맡는다. 사업 규모도 전체 원전 수주와 비교하면 작은 편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정부 탈원전 정책에 원전 업계 인력이나 기술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인데, 그나마 수출로 일거리가 생긴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수출이 건물 시공 등 일부에 그쳐, 주기기 제작 등 핵심 분야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원전만 친환경 제외, 수출엔 먹구름

이 때문에 원전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원전 건설을 재개하거나, UAE 바라카 원전처럼 한국이 주도하는 원전 수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최근 환경부가 ‘한국형 녹색 분류 체계(K-택소노미)’에서 원전을 빼면서 수출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소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원전 사업은 기술력 못지않게 자금 조달이 중요하다. 자금 조달 비용이 많이 들면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진다. 녹색 분류 체계에 빠지면 수십조원이 넘는 친환경 관련 자금은 물론 연기금 등 국내 주요 기금 투자도 받을 수 없다. 경쟁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원전을 이미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고, EU와 미국이 원전을 녹색 분류 체계에 넣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번 이집트 엘다바 원전은 한국이 주사업자인 JSC ASE로부터 수행한 업무 내에서 돈을 받기 때문에 자금 조달 부담은 없다.

주한규 서울대 핵공학과 교수는 “터키 등 자금력이 부족한 일부 국가는 원전을 업체가 자체 자금으로 짓고, 이후 전기를 판 수익으로 대금을 갚는 방식을 선호한다”면서 “원래도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자금력이 달리는데, 녹색 분류 체계에서 나홀로 빠지면서 사실상 수출이 어렵게 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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