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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빼고, LNG 넣고' K택소노미 공개…산업계-환경단체 양쪽서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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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LNG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정부가 인정하는 친환경 경제활동의 원칙과 기준을 담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결국 원자력 발전이 제외됐다. 반면 액화천연가스(LNG)는 포함되면서 산업계와 환경단체 양쪽에서 비판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30일 발표한 K-택소노미는 특정 사업의 친환경 여부를 판별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탄소중립이나 수십조원에 달하는 녹색 자금 투자와 직결되기 때문에 각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K-택소노미는 2년 간 사회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결정됐다. '그린워싱'(녹색위장행위)을 걸러내고 실질적인 친환경 사업에 투자 자금이 유입되도록 촉진한다는 목표다. 특히 금융권·산업계에서 중요하다. 녹색 금융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에서 발행된 녹색 채권 규모만 봐도 지난해 말보다 약 13배 늘어난 12조5000억원(30일 기준)에 달한다.

녹색 부문만 64개…감축 설비 갖춘 철강 포함

K-택소노미 최종안은 6대 환경 목표를 달성하는 녹색부문(64개)과 탄소중립 과도기에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전환부문(5개)으로 크게 나뉜다. 녹색부문에선 수소환원제철·비탄산염 시멘트 등 탄소중립에 필요한 핵심 기술들이 포함됐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많지만 탄소중립 기술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철강·시멘트·유기화학 업종도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됐다. 다만 이 산업들은 같은 계열에서 가장 좋은 감축 설비를 갖췄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녹색부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녹색부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또한 정부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생산 활동(발전 분야)과 전기차 등 무공해차량(수송분야) 등을 녹색 개념에 넣었다. 여기에 더해 탄소중립연료나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처럼 중장기 연구개발(R&D)이 필요한 기술까지 폭넓게 분류체계에 들어갔다.

환경단체 반대에도…LNG, 블루수소 포함

이번 체계의 골격은 앞서 공개된 초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논란이 된 LNG 관련 사업을 한시적으로 녹색으로 분류한 반면, 원자력 발전은 친환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는 LNG 포함을 두고, 산업계·학계에선 원전 미포함을 두고 정부를 공격하는 모양새다.

LNG 기반 에너지 생산, 블루수소 제조는 전환부문 내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받았다. 전환부문은 탄소중립으로 가는 중간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경제활동을 따로 분류한 체계다. 이 때문에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LNG 생산은 2030~2035년 사이, 블루수소 제조는 2030년까지 각각 K-택소노미에 한시 포함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왼쪽부터), 기후솔루션 윤세종 변호사,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관련 기자회견을 연 모습.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왼쪽부터), 기후솔루션 윤세종 변호사,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관련 기자회견을 연 모습. 연합뉴스

환경단체는 생산·운송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LNG를 녹색경제활동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기후솔루션 소속 윤세종 변호사는 "LNG는 석탄의 70%에 가까운 온실가스가 나오는 에너지원이다. 녹색으로 인정한다면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시설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LNG 사업과 블루수소 제조사업이 녹색 투자금을 지나치게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굳이 포함하겠다면 녹색 채권과 전환 채권을 따로 만들어 금융시장에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LNG 사업장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kWh당 340g CO2 EQ(온실가스배출량 단위) 이내면서 향후 추가 감축 계획을 제시해야 하는 등 높은 기준을 마련했다. 블루수소도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그레이수소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을 60% 이상 감축한 것만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가이드라인엔 전환 부문은 한시적이며 진정한 녹색분류 체계 활동으로 볼 수 없다는 점도 명시했다"고 덧붙였다.

경북 경주시 해변에서 보이는 원전 모습. 왼쪽부터 월성 1호기, 신월성 1호기, 신월성 2호기. 중앙포토

경북 경주시 해변에서 보이는 원전 모습. 왼쪽부터 월성 1호기, 신월성 1호기, 신월성 2호기. 중앙포토

원전 미포함에 "수출 타격"…정부선 여지 남겨

LNG와 더불어 가장 논란이 컸던 원자력 발전은 K-택소노미에 포함하지 않았다. 다만 조현수 과장은 "향후 유럽연합(EU)의 발표가 있으면 그 구체적 내용과 사유에 대해서는 면밀히 검토하겠다. 녹색분류체계가 늘 고정돼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전을 당장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다음에 추가로 인정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산업계와 학계에선 원전이 초저탄소 전력원이라는 점을 들어 녹색경제활동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방사능 위험이 있지만 점유 면적이 작고 원료 수급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경우 방사능 위험성이 적어 녹색분류체계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원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국제 분위기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자칫 하면 원전 기술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러시아는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고 있다. 중국은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미국도 청정에너지 기준에 포함하는 것을 고려하는 중이다. EU는 원전의 포함 여부를 두고 국가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녹색분류체계 개정을 내년 초로 미룬 상황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EU까지 녹색 에너지로 분류하면 선진국 가운데 한국만 탈원전을 하는 상황이 된다. 건설에 10년이 걸리는 원자력 발전소는 이자가 얼마인지에 따라 수출에 타격이 큰 산업"이라고 했다. 반면 기후솔루션 측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하더라도 폐기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이번에 확정된 K-택소노미를 내년부터 일부 금융상품에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이후 일부 개정을 거쳐 2023년엔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에 본격 적용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여신·투자 등 다른 금융상품으로 확대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보 공개에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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