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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범의 문화탐색

미술평론가 김윤수를 기억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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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지금이야 숨 한 번 안 돌리고도 두 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강의할 수 있지만, 대학원을 갓 마친 그때는 한 시간 강의하는 것도 버거웠다. 학위증에 찍힌 도장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나를 불러 강단에 세운 분은 바로 미술평론가 고(故) 김윤수 선생이었다. 1990년대 초 당시 영남대에 재직 중이던 선생은 한참 후배인 나를 특강에 초청했다.

그런데 나는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 시간 정도 만에 강단에서 내려왔다. 생전 처음 해보는 강의라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고 할 말도 별로 없었다. 강의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 일은 내 인생에서 후무(後無)한 일이다.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뒤로도 한 번 더 나를 불러주셨다. 비록 특강 두 번이었지만, 그렇게 후배 평론가를 데뷔(?)시켜주신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지난달 말 3주기 기념전
리얼리즘 미학 대부 역할
한국미술의 세계화 가속
오늘날 리얼리즘은 무엇?

지난달 말 미술평론가 김윤수 3주기를 맞아 민족미술인협회 주최로 서울 인사아트 프라자에서 열린 ‘현실주의 미학 정신’ 전시. [사진 최범]

지난달 말 미술평론가 김윤수 3주기를 맞아 민족미술인협회 주최로 서울 인사아트 프라자에서 열린 ‘현실주의 미학 정신’ 전시. [사진 최범]

김윤수 선생은 2018년 11월 작고한 원로 미술평론가다. 197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해직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창작과비평사 대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굵직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김윤수가 리얼리즘을 주장하고 10년 뒤에 민중미술이 등장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한국 리얼리즘 미학의 대부이자 민중미술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할 수 있다.

문학에 백낙청이 있다면 미술에는 김윤수가 있었다. 지난달 말 김윤수 선생 3주기를 맞아 열린 ‘현실주의 미학 정신’전은 후배인 민족미술인협회 작가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나도 전시장을 찾아 30년 전 선생과의 추억을 되새겼다.

리얼리즘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등장한 예술 사조다. 프랑스혁명 이후 대두한 근대사회는 왕정과 공화정, 보수와 진보,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좌충우돌했다. 이런 시대에 리얼리즘은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예술을 관념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동시대의 현실과 모순을 직시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혁명의 예술’이고자 한 리얼리즘은 나중에 등장한 ‘예술의 혁명’인 모더니즘과 함께 현대예술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리얼리즘도 ‘비판적 리얼리즘’ ‘사회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 다양한 계열로 분화돼 갔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문학에서의 ‘순수/참여 논쟁’ 이후 1970년대에 들어오면 문학과 미술에서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이라는 구도가 정립된다. 미술에서의 모더니즘은 이른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추상미술 화풍을 가리키며 리얼리즘은 민중미술을 중심으로 하는 형상미술 계열이 해당한다. 이러한 구도는 오랫동안 한국 미술의 미학적·정치적 지형을 가늠하는 지표로 작용했다.

‘현실주의 미학 정신’에 출품된 박재동 화백의 김윤수 선생 초상. [사진 최범]

‘현실주의 미학 정신’에 출품된 박재동 화백의 김윤수 선생 초상. [사진 최범]

리얼리즘 진영은 모더니즘이 한국 사회의 현실을 외면한 채 서구 미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권력과 타협한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앞장선 이가 바로 김윤수 선생이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갈등은 1980년대에 오면 매우 첨예해졌다. 물론 리얼리즘은 현실 참여, 모더니즘은 현실 외면이라는 단순 도식이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안 한국 현대미술이 이런 지형으로 이해되고 또 그렇게 존재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 하는 구도 자체가 낡은 것이 되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이를 휘저어놓기도 했고, 또 한국 미술이 본격적으로 상업화·제도화하면서 리얼리즘이든 모더니즘이든 모두 체제 안으로 흡수됐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꼽을 정도로 많은 비엔날레가 열리고 너나없이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부르짖는 마당에,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 하는 구분은 분명 철 지난 가락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현실과 과제는 있는 법이 아닌가. 현실은 변하지만 예술이 현실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리얼리즘 정신 자체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김윤수 선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작고 1년 전인 2017년이었다. 그때 선생은 ‘탄핵미술인회의’라는 이름으로 모인 민중미술계 인사들의 촛불시위에 노구를 이끌고 참여했었다. 지금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나는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 시대의 현실이고 리얼리즘인가요, 혹시 현재의 리얼리즘은 지나간 현실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