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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모 임산부’의 성탄편지 “100일된 딸, 기적이자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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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올해도 우울한 성탄절이었지만 그래도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

국내 ‘에크모 임산부 1호’ 확진자 김미나(39·인천시 중구)씨의 코로나19 생존기는 기적과 같다.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이 서울대병원 의료진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온 김씨는 지난 21일 의료진에게 감사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김씨는 자신을 ‘기적의 아이콘’이라 했고, 의료진은 김씨를 ‘희망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김씨는 지인에게서 코로나19에 감염돼 지난 6월 2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임신 7개월이어서 즉각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그날 저녁 경기도 평택의 박애병원으로 이송됐다. 입원 직후 부모·여동생·아들(3)이 줄줄이 확진 판정을 받고 박애병원(아버지는 다른 병원)으로 실려 왔다. 모두 폐렴 증세가 있어 산소 치료를 받았다.

강한 모성애, 밝은 성격이 치유 원동력

임신 7개월에 코로나19에 감염돼 서울대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에크모 치료를 받고 기적처럼 회생한 김미나씨가 7월 초 17일 만에 에크모를 뗀 뒤 의료진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 김미나씨]

임신 7개월에 코로나19에 감염돼 서울대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에크모 치료를 받고 기적처럼 회생한 김미나씨가 7월 초 17일 만에 에크모를 뗀 뒤 의료진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 김미나씨]

김씨는 일주일 만에 폐렴이 급속히 악화했다. 큰 병원 두 곳이 받기를 거부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병명은 코로나19 급성호흡부전. 바로 인공호흡기 치료가 시작됐다. 이 상태에서 프룬 포지션(prone position) 치료를 받았다. 바로 누으면 중력으로 인해 폐가 눌리는데, 이를 줄여보려고 16시간 거꾸로 누워 있어야 한다. 의료진은 김씨의 배가 눌리지 않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처음 시도하는 치료라서 외국 영상을 보고 공부하면서 진행했다. 김씨는 세 차례 프룬 포지션 치료를 받으며 한 번도 힘든 표시를 안 하고 견뎠다. 이은준 수간호사는 “김씨는 우리 병원에서 인공호흡기·프룬 포지션 치료를 받은 첫 임신부 확진자”라며 “두 명의 생명이라 두 배의 부담을 느꼈다. 다행히 환자가 잘 견딘 덕분에 악화 속도를 늦췄다”고 말한다.

그런 노력도 허사였다. 바이러스는 김씨를 더 파고들었다. 일주일 후 6월 16일 최후의 방법으로 에크모 치료가 시작됐다. 에크모는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혈액을 밖으로 빼 산소를 공급해 인체에 주입하는 장치다. 오래 하면 상당한 후유증이 남는다. 김씨는 국내 첫 임신부 에크모 확진자가 됐다. 세계 세 번째 시도였다.

김씨가 9월 딸을 출산한 후 남편·아들과 기뻐하는 모습. [사진 김미나씨]

김씨가 9월 딸을 출산한 후 남편·아들과 기뻐하는 모습. [사진 김미나씨]

의료진은 에크모 치료 시작 후 김씨의 남편(45)에게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남편은 아내의 생존기를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다. 남편은 “에크모 치료를 시작한 지 보름 지났는데 차도가 없다. 회복 확률이 낮아 보였고 하루하루 지옥 같은 날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이상민 중환자실장을 비롯한 의료진은 혹여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까봐 치료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 그런 정성이 통했을까. 환자는 17일 만인 7월 2일 기적적으로 깨어났고 에크모를 뗐다. 의료진은 “회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의료진은 그날 조촐한 ‘파티’를 했다. 좀 비싼 도시락을 먹는 게 파티였다. 이 수간호사는 “에크모를 달고 수면 상태로 오래 있으면 섬망(착각과 망상을 일으키며 헛소리하는 행위)이 생기는데, 김씨는 웃으면서 의식을 되찾았다. 강한 정신력에 밝은 성격, 강한 모성애가 원동력인 것 같다”고 말한다.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내과계 중환자실로 옮겼다. 의료진은 그 전에 김씨의 손톱·발톱을 깎은 뒤 머리를 손질하고 땋았다. 물론 코로나19 음성이었다. 김씨는 “손발톱을 깎아준 걸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씨는 일반 중환자실에서 9일간 치료받고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겼고, 자가호흡 훈련을 한 뒤 7월 26일 인공호흡기를 뗐다. 이상민 실장은 일반병동으로 왕진 가서 환자를 보살폈다. 김씨는 7월 29일 병원 문을 나섰다. 확진 약 두 달 만이었다. 중환자실에서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9월 17일 서울대병원에서 3.4㎏의 건강한 딸(주이)을 순산했다. 코로나 중환자실 의료진 5명이 김씨 병실을 찾아 케이크와 쿠키 선물을 건넸다. 지금까지 아이도, 엄마도 건강에 이상이 없다.

“누구든 걸릴 수 있어, 원망·포기 말아야”

김씨는 감사편지와 함께 딸 사진을 의료진에게 보냈다. 옆은 아들 주원. [사진 김미나씨]

김씨는 감사편지와 함께 딸 사진을 의료진에게 보냈다. 옆은 아들 주원. [사진 김미나씨]

김씨는 감사 편지에서 “연일 증가하는 코로나 중환자들을 보면서 고생하는 선생님들이 떠올라 마음 한쪽이 무겁고 걱정이 앞선다”며 “코로나 중환자실·산부인과·내과계중환자실·재활의학과·일반병동 등의 수많은 의료진에게 감사드린다. 평생 간직하며 (의료진의) 사랑을 나누며 살겠다”며 “메리 크리스마스!”를 기원했다. 성탄절에 100일을 맞은 주이의 사진을 올렸다.

이은준 수간호사는 “도전적 치료를 한 환자인데, 회복해서 너무 자랑스럽다. 성탄 편지를 보내서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이동혁 간호사는 지난 24일 오후 격리구역 근무 시작 직전에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씨의 회복이 기적 같았다. 잘 회복해서 감사하다. 다 같이 열심히 했고 환자가 잘 따라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3일 부산의 임신 7개월 임신부 확진자(에크모 치료)의 남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김씨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용기를 줬다고 한다. 김씨는 “우리 가족이 코로나19로 힘든 이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저도 사람인지라 왜 하필 나였을까, 우리 가족이냐고 원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누구도 탓할 일 아니다. 누구든 걸릴 수 있다. 치료 잘 받자’고 용기를 줬어요. 최고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건강하게 치료받고 일상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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