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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막힌 파일럿의 꿈…군복 벗은 조종사 이곳 달려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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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전투기 조종사였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K를 몰았다. 소령 계급을 달고 한참 잘 나가던 그는 지난 2019년 초 군복을 벗었다. ‘민간 항공사의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꿈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현재 자신의 꿈을 잠시 보류 중이다. 코로나19 탓에 항공사들이 사실상 파일럿 채용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 일하며 파일럿 구인의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조종을 하지 않는 동안 비행 감각을 잊을 수 있어서다. 고민하던 그에게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항공훈련센터는 구원의 손길이 됐다. 그는 이곳에서 주기적으로 비행 시뮬레이터(이하 SIM)에 탑승해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A는 22일 "어려운 상황이지만, 비행을 계속하겠다는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공신력 있는 기관인 항공훈련센터에서 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항공훈련센터가 보유 중인 비행 시뮬레이터(SIM)내부. 실제 항공기와 동일한 비행 환경을 제공한다. 대당 가격은 10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사진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가 보유 중인 비행 시뮬레이터(SIM)내부. 실제 항공기와 동일한 비행 환경을 제공한다. 대당 가격은 10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사진 한국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가 운영 중인 항공훈련센터가 민간 항공사 파일럿 구직자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센터는 한국공항공사가 2016년부터 2단계에 걸쳐 구축한 파일럿 교육 전문 기관이다. 민항사 파일럿이 되길 꿈꾸는 이들은 이곳에서 필요한 비행시간(항공사 별로 300~1000시간)을 쌓거나, A처럼 비행 감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탓에 민항사들이 신규 채용을 중단한 상태에서 재보수 교육을 받을만한 곳도 사실은 마땅치 않다. 그래서 파일럿 지망생들은 필요한 비행시간을 쌓고도 입사 지원조차 할 수 없는 형편에 몰려있다.

사실상 24시간 항공훈련센터 운영 중 

항공훈련센터가 보유 중인 비행 시뮬레이터(SIM)내부. 실제 항공기와 동일한 비행 환경을 제공한다. 대당 가격은 10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사진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가 보유 중인 비행 시뮬레이터(SIM)내부. 실제 항공기와 동일한 비행 환경을 제공한다. 대당 가격은 100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사진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는 A 같은 이들을 위해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특별과정’을 운영 중이다. 이 과정에는 현재 250여명이 모여 항공사 취업 문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과정생 모두 민간 항공사 파일럿을 꿈꾼다. 이들 중 70%가량은 현재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이중 상당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버티고' 있다.

특별과정의 핵심은 SIM을 이용한 조종 체험이다. 이 기기는 실제 항공기 조종석과 동일한 환경을 제공한다. 장비 가격은 대당 100억원이 넘는다. 항공훈련센터는 현재 10대의 SIM을 보유 중이다. 그런데도, 몰려드는 조종 체험 수요를 다 채우지는 못하고 있다. 센터가 사실상 24시간 운영되는 이유다. 김규환 항공훈련센터장은 “비행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나아질 때까지 지금 같은 운영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공훈련센터가 보유 중인 비행 시뮬레이터(SIM). [사진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가 보유 중인 비행 시뮬레이터(SIM). [사진 한국공항공사]

교육비 중 절반 이상은 정부의 국고 지원과 한국공항공사의 부담으로 충당된다. 덕분에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8년 소폭 흑자를 냈던 항공훈련센터는 올해 12억원가량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황대하 한국공항공사 항공산업지원센터장은 "많은 자본이 드는 조종인력 양성분야는 민간에만 맡기긴 어렵다"며 "당장 손해를 보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공기관의 역할도 누군가는 해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항공훈련센터에서 이론 교육을 받고 있는 파일럿 지망생들.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에서 이론 교육을 받고 있는 파일럿 지망생들. [한국공항공사]

한편 민항기 조종사를 꿈꾸는 이들은 적어도 수천 명에서 최대 1만명 선에 달할 것이란 게 항공업계의 추산이다. 참고로 지난 2019년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 취득자는 1688명, 지난해는 1009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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